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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단풍들었네...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무등산 중머리 재-장불재에 다녀오다

등록|2008.11.13 11:54 수정|2008.11.14 14:50

▲ 증심사 등산로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고 있는 등산객들. ⓒ 오승준



며칠 전 무등산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무등산관리사무소 직원의 연락을 받고 9일 (일요일) 오전 무등산을 찾았다. 쉬는 날이면 가끔씩 친구들과 동네 뒷산이나 가까운 무등산을 오르곤 하는데, 이번에는 서로의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서 올라갔다.

때로는 혼자 하는 산행도 의미가 있을 성 싶다. 정해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색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초상들을 보다 넓은 안목에서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증심사에서 새인봉으로 올라 가는 길. ⓒ 오승준



10:00 정각 증심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형형색색 옷을 입은 등산객들이 강을 이루고 있었다. 지원동에서 무등산 중머리재를 향하는 무등산 산길의 왼쪽에 있는 증심사 등산로는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 산행을 시작하기 전 산행에 대한 준비물을 나눠주고, 산행에 대한 일정을 안내해 주는 사람, 먼저 온 사람들끼리 정담을 나누는 밝은 표정 등 등산의 출발부터 산행의 열기가 뜨겁다.

그러나 주차장 풍경이 예전 같지 않다. 증심사 집단시설지구 조성사업 진행으로 기존의 주차장이 폐쇄되고, 임시 주차장이 별도로 조성 되었으나, 주차공간이 협소하여 주차전쟁이 극심, 주변이 무질서하고 산만하기 때문이다.

▲ 새인봉에서 중머리 재로 넘어 가는 길. ⓒ 오승준



오늘의 등산코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증심사-새인봉-중머리 재-장불재-중머리 재-토기등-증심사 구간. 이 코스는 경사가 심해 초보자에게는 힘이 드는 코스나, 등산 코스 중 가장 짧은 구간이고, 또한 대중교통 이용이 쉽고, 먹을거리도 풍성하게 만날 수 있어 등산객들은 이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참고로 무등산의 주요 등산로는 ▲공원관리사무소 -> 꼬막재 -> 공원경계 -> 규봉암 -> 공원경계 -> 장불재 -> 중머리재 -> 증심사 (12.6km), ▲산장 -> 늦재 -> 토끼등 -> 봉화대 -> 중머리재 (4.9km), ▲증심사 -> 봉화대 -> 너덜겅약수터 -> 바람재 (3.2km), ▲ 증심사 -> 약사사 -> 새인봉 -> 중머리재(3.5km), ▲늦재 -> 동화사터 -> 중봉 -> 장불재 (4.0km), ▲장불재 -> 입석대(출입통제 2007. 7월부터) -> 서석대(무등산 정상-출입통제 2007.7월부터) (0.9km)가 있다.

가게에서 산 생수 한 병, 김밥 1인분, 집에서 가져 온 감 2개와 두유 2개, 카메라와 수첩, 볼펜을 들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상가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이들은 오고가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김밥, 찰옥수수, 김치, 동동주 등 먹음직스러운 먹거리와 등산 장비 판매 등을 위한 홍보와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등산로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결실의 계절인 가을철을 맞이하여 야생동물들의 먹이인 도토리, 밤 등 야생 열매를 무단 채취하는 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는 공원관리사무소의 안내 ,플래카드가 먼저 길 안내를 한다.

▲ 무등산 등산의 중심지 중머리 재. ⓒ 오승준




광주광역시 북구와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과의 경계에 놓여있는 높이 1187m 무등산. 백제 때에는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에는 서석산(瑞石山)이라고 불렸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 면적은 30.23㎢이다. 유적으로는 증심사(證心寺)·원효사(元曉寺) 등의 사찰과 석조여래좌상(보물 600)을 소장하고 있는 약사암(藥師庵:)·천문사(天門寺)·미력사(彌力寺) 등의 암자가 있다. 정상 가까이에는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경치가 뛰어나다.

무등산에 대해 육당 최남선 선생은 "금강산에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비길 경승이 없으며, 특히 서석대는 마치 해금강 한쪽을 산 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고 찬탄한 바 있다.

봄에는 서석대, 입석대 주위에 흐드러지게 피는 철쭉과 진달래, 여름에는 규봉암 시무지기 폭포, 가을에는 장불재, 중봉 일대의 억새꽃이 장관이며, 겨울에 피는 서석대, 입석대의 설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특히 높이 20m가 넘는 40여 개 남짓한 돌기둥이 사각, 육각, 원주 모양으로 높이 솟아 있어 마치 그리스신전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입석대, 그 위쪽 산 정상 부근에 거대한 돌병풍처럼 솟은 바위절벽 서석대, 우거진 녹음 사이사이에 높이 솟아 있는 돌기둥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규봉암 등 3대 절경은 무등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 중머리 재에서 바라 본 단풍1. ⓒ 오승준




증심사 다리와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바닥에 누워 대지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의재 미술관 앞을 지나 약사암 옆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새인봉으로 향했다. 그러나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서 자동차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데, 얌체 자동차들이 등산로 깊숙히 들어와 당당하게 차를 주차하고 있었다.

산 아래까지는 아직 단풍이 내려오지 않았다. 간간히 붉은 애기단풍과 샛노란 단풍, 절반은 바닥에 누워 있고, 절반만 나무에 매달려 있는 노란 은행 잎만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래도 등산객들은 설레는 동심의 눈빛으로 진한 가을빛 추억들을 카메라 앵글에 부지런히 담고 있었다.

얼마 전에 정비를 완료했다는 새인봉의 목재 계단, 안전로프, 자연형 돌 바닥, 주요 경관 지점의 생태 해설판과 이정표 등 안내표지판 등이 산행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 무등산 중머리 재 주변 단풍2. ⓒ 오승준




새인봉 가는 길은 생각보다 경사가 심했다. 모처럼 산행길에 나선 나도 다리가 팍팍하고 숨이 찼다. 그러나 가다 쉬고 쉬다 가는 등산객들의 여유로운 마음 따라 가면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 귀동냥 하니, 마음도 가볍고, 가슴도 넉넉해진다.

얼마 남지 않는 수능시험에 대한 한결같은 부모의 마음,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국내 경기의 위기에 대한 걱정, 서민들의 고달픈 삶과 자살 이야기, 정치에 대한 불신과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등산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산 매니아의 이야기 등등. 사람사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 가정이 있다는 것, 일할 직장이 있다는 것, 건강하게 산다는 것 모두가 큰 축복, 무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새인봉은 무등산 증심사 남쪽에 있는 높이 25∼30미터, 폭 100미터의 바위로 광주 일원의 클라이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등반 대상지이다.

투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울긋불긋한 원색의 행렬인 오색 빛 찬란한 단풍은 새인봉 고개 너머에 오롯이 자리잡고 있었다. 부끄럼 많은 처녀의 속살처럼 연분홍 진분홍으로 불타고있었다. 아니,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불내고 있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 중머리 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등산객들. ⓒ 오승준



“오메, 단풍들었네..."
“억새도 장관이네.”
“오늘 뭔 일 날 것 같네.”

단풍은 온통 무등산 중머리 재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자연의 깊은 속살이요, 황홀한 자태 그 자체인 붉은 물감을 온산에 뿌려 놓은 듯 한 단풍과 말갈기같은 하얀 억새의 물결 앞에 사람들은 넋을 잃고 소리없는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마침 순찰나온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 임희진 소장 등 직원들과 마주쳤다.

▲ 중머리 재에서 장불재로 넘어가는 곳곳에 널려있는 너덜. ⓒ 오승준




임희진 소장은 “올해 무등산 단풍은 다른 해보다 훨씬 아름답게 물들고 있다”며 “특히 금년도에는 가을 가뭄으로 타 지역의 단풍들이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고사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무등산의 단풍은 형형색색 너무나 예쁜 빛깔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등산 단풍 색깔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은 무등산이 물이 많고 습도가 제대로 유지되는 등 숲속 환경이 월등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 된다”며 “현재 원효사 지역과 공원관리사무소에서 바라 본 원효계곡 일원, 공원관리사무소~늦재~바람재~토끼 등 일주도로 단풍 길, 늦재~관리도로 동화사 터 길, 봉황대 증심사 지구 일대가 단풍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져온 음식을 일행들과 나눠 먹는 사람, 단풍과 갈대를 배경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 늦게 올라오는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뜨근뜨근한 커피를 파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들이 순수의 모정으로 연출되면서 중머리 재는 온통 이야기 꽃 넘치는 시골 5일장을 방불케 한다.

카메라 앵글에 단풍과 억새의 아름다움 한껏 담아 가지고, 오늘 산행의 정점 장불재로 향했다. 장불재(900m 고지)로 가는 길은 거칠은 돌 바위 길이다. 주변 곳곳에 집채만한 바위 너덜도 눈에 많이 띈다. 리기다 소나무림과 편백림, 삼나무림, 현사시나무림, 산벚나무, 왕대림 등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가을 단풍이 이미 지나간 장불재에서 쉼을 얻고 있는 등산객들. ⓒ 오승준



장불재에 도착하니, 주변이 산만하다. 각종 공사 잔재물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서색대, 입석대 탐방로 정비 사업 때문이란다. 이곳에서는 눈앞이 서석대, 입석대이다. 서석대와 입석대 주변은 이미 단풍이 다 져서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겨울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차다. 옷을 두껍게 입어도 춥다.

장불재에 서서 깊은 숨 몰아쉬니, 억새들이 키 재기 하며 말 등같은 백마산 능선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취해 덩실 덩실 춤을 춘다.

장불재에 오르면, 광주시 전역이 다 보인다. 동남으로는 화순이 내려다 보이는데 가까이에 동복호가 위치해 있다. 북으로는 담양이 보이는데 광주호를 중심으로 소쇄원, 식영정 등 가사문학의 터가 자리해 있다.

예전에는 중머리재까지만 산행하는 등산객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대부분 장불재, 서석대, 입석대, 천왕봉까지 산행을 한다. 그러나 최근 무등산 서석대와 입석대의 주상절리대가 천연기념물이 되면서 보호하기 위하여 공원관리소에서 시설을 정비하고 있어 서석대와 입석대에 이르는 길이 통제되어 있다. 대신, 신선바위와 누에봉쪽은 개방되어 있다.

사람 키만한 억새밭에서 바람을 피해 점심 식사를 했다. 꿀맛이다. 가지고 간 김밥, 감, 생수 등이 어찌나 맛있던지...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산행 온 등산객들은 갈대 밭에서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고, 정담도 나누며, 잠시나마 피안의 세계인 이곳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청취를 마음껏 훔치며, 넉넉한 쉼의 시간을 가졌다.

▲ 장불재에서 바라본 서석대와 그 주변 풍경. ⓒ 오승준



나도 자유롭고 여유로운 사색의 마음으로 30여분 동안 장불재 주변의 풍광을 깊게 호흡한며, 평화롭고 건강한 망중한의 시간을 보냈다.

13:00 경 장불재의 초겨울의 낭만과 중머리 재의 늦은 가을 풍경을 뒤로 하고, 길에 떨어진 낙엽을 무수히 밟으면서 토끼등을 거쳐 산을 내려왔다. 길가에  함초롬히 피어 있는 보랏빛 쑥부쟁이들과 탐스럽게 핀 구절초 향기, 갈대의 하얀 춤사위, 단풍의 빨간 입술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벌거벗은 몸으로 희망의 봄을 기다리며, 매서운 추위와 맞서 싸우고,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죽음의 나락에 묻히면서도 웃으면서 차가운 대지를 따뜻하게 안아 주며, 생명의 씨앗으로 부활하는 나무와 꽃의 위대한 생명 외경을 가슴에 안으며, 14:00경 증심사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식당마다 등산객의 발걸음과 웃음소리가 넘쳤다, 보기가 좋았다.

증심사 주차장을 나와 충장사, 풍암정, 원효계곡의 단풍을 주마간산격으로 둘러 본 후 귀가했다. 잠시나마 나를, 인생을, 자연의 이치를 순백의 마음으로 되돌아 본 아름다운 시간여행이었다.

▲ 증심사 등산로 입구 가게 위 지붕의 가을 풍경. ⓒ 오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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