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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권하는 MB, 저축 장려 오바마 타임머신 거꾸로 돌리는 '꺼삐딴 리'

[이명박 vs 오바마 ③ - 금융정책] 세계적 금융위기 대처에 큰 시각차

등록|2008.11.10 19:05 수정|2008.11.10 19:05
오바마 당선 직후, "오바마와 이명박 정부의 비전은 닮은꼴"이라고 한 청와대 발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최고의 코미디'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걷는 정책과 부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이 과연 같을까? '통합의 리더십'과 '고소영 리더십'이 닮은 것일까? 냉전 되돌리기와 대화 무드를 조성하는 대북정책이 같은 방향일까? 이런 물음들에 대해 <오마이뉴스>가 답변을 찾아나섰다. '이명박 vs 오바마' 기획 연재는 개인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정책에 대한 비교다. 또한 그 무엇보다 '사실 관계'를 냉정히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보자는 '건설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편집자말]
"직접투자는 못하지만 간접투자 상품(펀드)이라도 사겠다."

지난 9월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언론은 일제히 이 발언을 타이틀로 기사를 내보냈다. 대통령이 앞장서 펀드에 가입하겠다니,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우리 주식시장은 걱정하지 말라'는 강한 자신감 아니겠는가.

혹시라도 대통령의 발언을 믿고 주식을 산 투자자가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날 1425포인트로 마감한 종합주가지수는 불과 한 달여 만에 장중 최저가 892포인트(10월 27일)까지 날개도 없이 추락했다. 순진한 투자자는 단기간 마이너스 37.4%라는 엄청난 손실에 청심환이라도 사먹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당선 전 주가지수 3천 포인트, 5천 포인트도 장담하던 대통령이니 겨우 이 정도의 엇박자에 놀라서는 대한민국에서 살기 힘들다.

재산은 모두 사회 헌납하겠다고 공약했고 월급은 전액 기부하기로 한 대통령이 무슨 돈으로 펀드에 가입하느냐고 갸우뚱하는 사람, 당장이라도 펀드에 가입할 듯하더니 왜 아무 소식이 없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 등 온갖 뒷말이 무성했지만 잠시 잊어주기로 하고 바다 건너로 눈을 돌려보자.

▲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 그는 대선 기간 미국경제의 미래를 위한 투자, 미국민의 은퇴 후 생활 설계의 주요 수단으로 연금, 기금과 함께 저축을 강조했다. ⓒ 버락오바마닷컴


펀드 권하는 MB, 저축 장려하는 오바마

"경제 변화와 위기의 이 시기에 우리는 이전보다 더 미국경제에 대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우리는 재정 책임성을 유지하여 미국 어린이의 미래를 빚더미에 저당 잡히게 해서는 안 된다. (중략) 그리고 우리는 개인의 저축을 장려하여 미국 경제를 계속 강하게, 미국인의 은퇴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오바마 당선인이 후보 시절 대선전에 임하면서 발표한 <2008 미 민주당 대선 강령>의 일부분이다. 강령은 미국경제의 미래를 위한 투자, 미국민의 은퇴 후 생활 설계의 주요 수단으로 연금, 기금과 함께 저축을 강조하고 있다.

펀드 권하는 MB와 저축 장려하는 오바마의 차이는 무엇일까? 얼핏 두 사람의 재테크 성향 차이로 보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현재의 세계적 금융 위기를 보는 시각과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 즉 향후 금융정책의 본질적인 차별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증시에 애정을 보인다 한들 펀드의 원조는 미국이다.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 비중은 42.3%(06년 기준)로 한국 20.9%, 일본 10.3%에 비해 월등히 높다. 주식에 이어 두 번째로 비중이 높은 연금 및 보험(31.4%) 자산 가운데 상당부분이 기관 펀드로 운영되는 것을 고려하면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 중 자본시장(증시) 관련 투자상품 비중은 60% 정도에 이른다.

결국 그간 미국은 일반 가정 대부분이 압도적인 비율로 자산을 주식이나 펀드로 보유해 왔으며 이렇게 투자된 돈은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를 끌어올리고 또 각종 뮤추얼펀드와 헤지펀드 등으로 해외에 투자되어 금융소득을 창출해 왔다. 미국인의 은퇴 설계는 캘퍼스(캘리포니아주 공무원 연금) 등 대규모 기관 펀드들이 책임을 지는 듯했다.

신자유주의의 기수 레이건 이후 점차 미국은 사회 전반적으로 실물경제보다 금융 수익에 의존하는 사회로 변화해 갔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미국 전체 기업 수익의 10%에 불과하던 금융 부문 수익이 2000년에 이르면 40퍼센트로 증가한다. 메인스트리트의 실물경제보다 자본 소득 창출에 모든 힘을 쏟는 월스트리트 제국이 되면서 게임의 룰은 어느덧 돈놓고 돈먹기의 투기로 변했고 금융 투기를 주도한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헤지펀드들은 정부의 규제와 감시를 떠나 금융 정글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이러한 자본의 과잉 공급과 금융의 탈규제화 그리고 투자은행들이 개발해낸 온갖 투기성 파생상품은 마침내 제살을 깎아먹는 단계로 접어들어 서브프라임 사태로 터진 것이다. 또한 금융 세계화를 통해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 금융상품은 유럽과 아시아 남미 등 세계 도처의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으며 한국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 뉴욕증시가 미 하원이 금융위기 타개를 위한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법안을 부결시킨데 따른 충격파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사상 최대의 하락폭을 기록한 지난 9월 29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한 딜러가 머리를 감싸고 쉬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자본시장 중심 경제 시스템에 대한 재검토

오바마 당선인의 금융정책은 이러한 구조적 위기의 진원인 금융시장 특히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로 모아진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부터 증권거래위원회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인 금융규제 시스템을 만들고 그간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파생상품과 헤지펀드, 모기지브로커 등에 대한 연방 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히 '시장 자율에만 맡겨 두었더니 문제가 발생하므로 규제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앞에서 보았듯이 가계의 건전한 저축과 연기금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은 자본시장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손질하려는 의지를 내포하는 것이다.

오바마의 이같은 금융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실물경제의 회복과 중산층 중심의 내수경기 부양이 동반되어야 한다. 지금껏 금융으로 먹고살던 시스템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당선된 지 사흘 만인 지난 7일 경제참모회의에서 발표한 '경제회생을 위한 4대 정책과제'는 이를 잘 보여준다. ▲ 실업보험 확대와 경기부양책을 통한 중산층 구제 ▲ 금융위기 진정, 특히 금융위기의 자동차산업 등 실물 부문 확산 차단 ▲ 납세자 보호, 주택 보유자 지원 등을 골자로 금융구제책 재점검 ▲ 청정에너지, 보건의료, 교육, 중산층 세금감면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 경제 성장동력 확보 등이 그 내용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로 돈이 돈을 버는 '머니 워킹(money working)' 아메리카 기조가 유지된 지난 20여년간 미국경제는 미국의 자존심이라는 자동차 회사 GM이 부도설에 휩싸일 정도로 금융 이외의 실물경제 부문에서 성장 동력을 상실했고, 자본 규모에 따라 소득이 달라지는 머니 게임의 속성상 빈부 격차가 엄청나게 심화되었다. 오바마 당선인의 금융정책은 결국 이러한 구조의 시정과 패키지로 계획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이미 세계 각국에 추월당한 경제 동력을 회복하는 일도 단시일에 이루어지기 힘들 뿐만 아니라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은 미국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더 증폭시킬 수 있다. 여기에 30년 가까운 자본시장 중심 성장 정책에 익숙해 있는 세력들의 내부 저항이 거셀 것이다. 당장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월가와 상당한 친숙성을 지니고 있다. 또 금융이 글로벌화된 까닭에 미국 혼자만의 시스템 개혁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가 없다. 국제적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제반 난제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다수 미국인들은 강력한 시스템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당선인의 금융 개혁 의지가 안팎의 도전에 직면하여 좌회전 깜박이 넣고 우회전으로 돌지, 자신에게 표를 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둘지 깊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리먼 인수하겠다는 산업은행의 만용, 근원은 MB 금융정책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산업은행 민영화다. 국내에 세계적인 투자은행이 없어 금융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 정부의 인식이다. 정부가 집권 초반부터 서둘러온 산업은행 민영화는 국가 주요산업 육성 발전을 위한 금융 지원이라는 이 은행의 설립 취지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처음부터 '세계적 수준의 투자은행'을 만들겠다는 황당한 계획이었다.

산업은행 민영화 시 모델로 한 세계적 수준의 투자은행들이란 다름아닌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등 바로 얼마 전 천문학적 손실을 내고 파산신청을 한 투자은행들이다. 국민의 세금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어도 모래에 물 스며들듯 부실의 끝이 안보이는 바로 그 '세계적 수준'의 금융 투기 회사들 말이다.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에 대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크자 나름대로 신중을 기한답시고 민영화를 수년간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단계는 민영화 준비기간으로 산업은행을 투자은행 부문과 정책 기능으로 분리하여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단계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1단계 초입에 들어선 산업은행은 벌써부터 글로벌하게 사고를 칠 뻔했다. FRB도 골드만삭스도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과감하게 노크한 것이다. 협상이 틀어졌기에 망정이지 만일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가 이루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리먼 인수 시도는 민유성 행장 개인의 모험심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현 정부의 금융산업 정책에 충실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태평양 건너 '리먼' 브러더스와 국내의 '리·만' 브러더스는 그렇게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 국내외에서 '리·만'브라더스로 불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은 지난 3월 20일 경제·서민생활안정 점검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꺼삐딴 리와 미스터 리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은 산업은행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종주국인 미국과는 정반대로 금융에 대한 규제를 푸는 정책들이 용감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월 13일 국제 금융위기로 한동안 미루었던 금산분리(은행법, 지주회사법) 완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외환위기의 뼈아픈 경험을 반성하며 만들어진 금산분리 정책의 후퇴로 이제 재벌의 은행 소유는 한층 현실에 가까워졌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펀드를 권하는 대통령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정책에서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당선인은 이처럼 철저하게 반대 궤도를 달리고 있다. 한쪽은 지난 수십년간의 시장 실패를 인정하고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교정하기 위한 정책을 고심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영미권에서 이제 '빠이빠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고하려 하는 철지난 모델로 서둘러 가지 못해 안달하는 형국이다. 펀드라도 가입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용도폐기된 낡은 시스템에 대한 지극한 집착을 보여줄 뿐이다.

오바마의 대선 승리 후 벌어진 '발가락이 닮았다' 논쟁은 국민들을 또 한번 씁쓸하게 만들었다. 과연 얼마나 철학과 정책이 닮았는가를 떠나서,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찰떡궁합을 과시하여 <워싱턴포스트>지로부터 '애완견' 운운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이제 전임 대통령과 완전히 상반되는 정책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를 두고 비전이 같다고 나오는 청와대의 모습은 그냥 웃기에는 다소 처절한 블랙 코미디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과 친밀하고 소련군이 진주하자 소련군 장교의 환심을 사고 월남해서는 미군정과 가깝게 지내는 인물을 풍자한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가 겹쳐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거꾸로 돌리는 듯 완전히 상반된 정책에도 불구하고 MB와 오바마가 같은 철학을 공유한 닮은꼴이라고 굳이 주장한다면, 듣는 오바마 당선인 아무래도 이렇게 말할 듯하다.

"미스터 리, 플리즈, 오바(하지)마."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http://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정희용 새사연 이사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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