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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모님 결혼 60주년입니다

병원에서 결혼 60주년 맞은 부모님, 건강하세요

등록|2008.11.11 11:06 수정|2008.11.11 11:06
오늘은 부모님 결혼 60주년 되는 날입니다. 참으로 긴긴 세월입니다. 부모님은 20세의 꽃다운 청춘에 결혼하여 이제는 팔순에 이르셨습니다. 아버님은 1928년 무진년(용띠)생이라 작년에 팔순이셨고 어머님은 1929년 기사년(뱀띠)여서 올 봄에 팔순잔치를 치렀습니다. 어머니가 열 아홉 살 때인 1948년 10월 14일(음력)에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셨으니 오늘이 바로 결혼 60주년이 됩니다.

고양국제 꽃 박람회에서부모님이 꽃 구경을 하시고 꽃처럼 환하게 웃고 계십니다. ⓒ 노태영


어머님이 아버님과 결혼하실 때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입니다. 세월의 격동이 참으로 심했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격동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세상 사람이 모두가 힘든 때인지라 부모님들도 힘이 들었을 거라는 짐작이 쉽게 갑니다.

일제시대를 겪으시고 해방이 되어 결혼하시고 큰 딸을 하나 두고 한국전쟁을 맞이하였습니다. 아버님은 참전용사가 되었지만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농사일을 하시면서 가난과 고난의 60년대를 거쳐 70년대 산업화시대에는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들을 고향이라는 그리움으로 묶어놓으셨습니다.

결혼하시고 큰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방 한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함께 할아버지 농사일을 거들던 때라 내 것 네 것이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큰아버님도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버님도 아이들이 태어나 집이 비좁아지자 아랫동네 작은 행랑채 방한 칸으로 분가해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진 것은 거의 없고 아버님 말씀으로는 지게 하나 달랑 지고 큰집을 나왔다고 합니다. 방에는 문도 변변치 않아 거적때기로 대충 가리고 겨울을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지 상상이 갑니다. 논 한 뙈기 없고 밭 한 뙈기 없이 시작한 새살림이 얼마나 궁핍하였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래도 아버님 어머님은 늘어나는 자식들을 위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가난과 싸웠습니다.

그 고통은 아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줄줄이 사탕처럼 낳은 4남 3녀의 뒷바라지가 얼마나 힘이 드셨겠습니까?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렸을 적에 캄캄해질 때야 돌아오신 아버님 어머님이 저녁을 준비하시고 외양간 소와 돼지를 돌보시느라 한밤중이 되어야 저녁식사를 하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셔도 당신들의 입에 기름진 쌀밥 한 그릇 맘껏 드시지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삼겹살이나 갈비가 보리밥처럼 흔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고깃국에 밥 말아 먹는 날이 일년에 기껏해야 대 여섯 번이었습니다. 명절 때와 생일날 그리고 백중날 정도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간혹 동네 잔치집에서 돼지를 잡을 때 돼지고지 두 어근 사서 새끼줄로 묶어 달랑달랑 들고 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말입니다. 

약주 한 잔 드시고 불콰해지신 아버님은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어머님께 주시고 맛있게 국을 끊이라고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는 삼겹살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오로지 돼지고기 국이었습니다. 푹 익은 김장김치를 푹푹 썰어 검은 가마솥에 물은 거의 한 동이를 부을 정도로 붓고, 붉은 기름덩어리가 마치 가시연꽃처럼 온 가마솥을 덮을 정도로 끓였습니다. 먹다보면 그 많던 고깃국도 금방 바닥을 드러내 어린 가슴을 아쉽게 만들곤 했습니다.

부모님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힘들게 이어가던 가족에게 첫 번째 위기가 닥쳤습니다. 바로 아버님의 허리디스크였습니다. 그때는 신경통이라고 산에서 별별 약초를 다 캐다가 다려서 드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이니까 40대 후반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허리가 조금 좋지 않았지만 등골이 빠지는 지게질에 허리가 견디어낼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부모님 그리고 막내와 막둥이막내와 막둥이가 부모님을 모시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 노태영


어머님이 40대 후반에 막내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하여 병원에서 며칠간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마르셨지만 힘든 밭일이나 논일을 아버님과 함께 묵묵히 해내셨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체구에 힘든 일이 버거우셨던 모양입니다. 회갑을 지내시고 결국 고향을 떠나 인천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큰형집에서 한 10년을 지내면서 어머님은 당뇨병을 얻었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병이었나 봅니다.

운동량은 적고 도시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아서 마음 고생 몸 고생을 하시다가 10년 만인 2004년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고향에 내려오신 후 5년째 되시는 올 2월에는 어머님 팔순잔치 기념으로 온 가족이 제주도 여행도 다녀올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다시 당뇨병이 악화되어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 6월에 병원신세를 지시기도 했습니다.

어머님 팔순잔치 기념 제주도 여행어머님 팔순잔치를 기념하여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손자 손주는 다 참석을 못했지만 자식들은 모두 참여하였습니다. ⓒ 노태영


어머님이 고향에 다시 내려오신 후에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7남매의 김장을 장만하시기도 했습니다. 400포기가 넘는 김장배추를 심어서 기르고 고추며 참깨 등 양념거리를 손수 준비하시어 김장을 했습니다. 부모님까지 포함하여 여덟 가정의 김장을 하는 것입니다. 산더미 같이 쌓아 놓은 절인 배추와 무를 볼 때는 입이 쩍 벌어집니다. 부모님이 기르신 채소와 양념으로 담근 김치는 일 년 내내 부모님의 사랑과 마음을 자식들에게 심은 것입니다.

올해도 다음 주말에 김장을 하기로 이미 약속이 잡혀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바로 결혼 60주년이 되는 오늘도 어머님은 병원에서 폐렴과 싸우고 계십니다. 비쩍 마른 어머님의 모습을 보시는 아버님의 눈빛이 여간 애처롭지가 않습니다. 이 좋은 날에 이 기쁜 날에 병원에 누워계시다니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건강을 이겨내시고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오시리라 믿습니다. 지난 당뇨병 때문에 고생이 심하셔서 기력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지내오셨는데, 다시 환절기 폐렴이 악화된 것입니다. 오늘도 병실에 누워계시면서 아버님의 병간호를 받고 계시지만 사실 아버님도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심장이 좋지 않으시고 목 디스크가 심한 편입니다.

결혼 60주년(회혼식)을 맞이하신 부모님께서 축하를 받으시고 대대적인 금강혼례식을 치러드려야 하는데 병실에 계신 부모님이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아버님 어머님 결혼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정말 즐겁고 기쁜 날입니다. 빨리 완쾌하시어 금강석 혼식(결혼 70주년)을 맞이하는 기쁨을 함께 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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