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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 때마다 날이 추워지는 까닭

교육차별... 대학이라고 같은 대학이 아닌 현실

등록|2008.11.13 19:07 수정|2008.12.01 15:26

▲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 정문에서 후배들이 선배들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며 응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11월 들어서부터 상점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13일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철썩 붙으라고 엿을, 잘 보라며 거울을, 잘 풀라며 휴지 등을 마케팅 상품으로 내놓은 기업·상점의 행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은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전략을 짜는 등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텔레비전·라디오·인터넷 등 온갖 미디어에서는 당일을 '수험생의 날'이라고 칭하며 시험을 앞둔 학생들 기를 살리느라 여념이 없다. 시험 당일 날 피해야 할 음식·행동은 물론이거니와 명문대 연예인들이 출연해 고득점 비결을 자신있게 공개하기도 한다. 이제 수능시험은 거국적인 행사가 되어버렸다.

누구나 갈 수 있는 대학이라지만, 대학이라고 모두 같은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기업에서는 명문대 학생들을 특별 대우하고 채용할 때 가산점을 부여한다.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여서 서울대나 연고대 출신이라고 하면 벌써 보는 눈부터 달라진다.

대학 전공과는 별 상관없이 명문대를 나온 가수·연기자 등이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치다. 쌍권총을 맞던, 우수한 성적이던 간에 그건 관심사가 아니다. 오로지 그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고, 좀 더 다양한 기회가 생겼다고는 하나 아직도 명문대·교육에 대한 야망은 뜨겁기만 하다.

이른 아침 새벽별을 보고 등교해서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가는 고3 수험생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고학력에 갖고 있는 뜨거운 애정, 사람들이 내비치는 존경심은 곧바로 성공가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 가수나 연기자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명문대가 우선이라는 상스러운 고정관념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한 줄로 늘어선 아이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야간자율학습이 의무나 다름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선택할 수 있다고 하나 실제로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전혀 달랐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매학기 초반 담임선생은 야간자율학습 여부를 학생들의 뜻과 상관없이 강제로 집행했다. 모두가 참여한다는 암묵적 동의를 강요하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담임은 아이들에게 빠질 아이들은 한 줄로 서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빼주겠다는 유혹이었다.

열명 가량의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섰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몇몇 우등생 아이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고액과외 및 특별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통과되었다. 누군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몸이 아픈 시늉을 내다가 면박만 당하기도 했다. 교실에서 소위 '코미디언'으로 통하던 아이였다. 분위기가 제법 화기애애할 즈음에 내 차례가 왔다.

"넌 왜 빠지려는 거야?"
"저는 개인적으로 집에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또 주중에 꼬박꼬박 챙겨봐야 할 문학 프로그램도 있고요."

몇몇 아이가 비웃듯 자지러졌다. 담임은 황당한 듯 날 쳐다보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왜 빠지겠다고?"
"문학기행 프로그램인데요. 저한테 도움이 정말 많이 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대가 아니면 재방송으로도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공부는 개인적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성적 떨어지면 다시 야간자율학습 받도록 하겠습니다."

제 삼자에게는 어이없는 상황일 수 있다. 누군들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싶어 했겠는가. 다들 억지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상한 놈 하나가 문학 프로그램 타령을 하고 있으니 황당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당시 내게 그 일은 중요했다. 난 중고등학교 때 적지 않은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고, 대학도 국문과나 문창과로 가겠다는 생각을 굳힌 상태였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다짐이 터무니없는 용기로 발현된 것이다. 성적이 떨어지면 다시 야간자율학습을 받겠다는데 설마 면박을 줄까. 게다가 담임은 국어 담당 교사였다.

"넌 네가 정말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니? 얘들아, 작가선생님이 문학프로그램 보면서 글공부를 좀 하셔야 한단다."

봉인이 풀리듯이 아이들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반쯤은 비웃음, 반쯤은 증오 섞인 욕설과 함께. 담임은 경멸어린 시선으로 날 한동안 쳐다보고는 자리로 돌려보냈다. "들어가."  그는 내 이름이 적힌 칸에 동그라미를 채워 넣었다.

▲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고등학교 정문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시간에 임박하자 수능수송 오토바이를 타고와 시험장으로 급하게 달려가고 있다. ⓒ 유성호


닫힌 가능성, 일상화된 차별

길게 늘어서있던 줄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이를테면 그건 차별의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경제적인 계급은 이미 거기에서 결정이 나 있었다. 이후 아이들은 지방대학과 서울에 있는 대학의 차별, 명문대와 그렇지 못한 평가를 받은 대학의 차별, 이력서 몇 줄로 함축되는 경력과 이력의 계급적 간극에 무방비로 놓인다.

공부도 다 같은 공부가 아니다. 내가 꿈꾸던 문학공부는 고등학생 신분이던 당시에는 사치였고, 변명이었다. 어른들은 그런 평가를 내렸다.

공부 잘해 명문대 진학한 아이들은 미래의 때깔부터가 보통 아이와는 다르다.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한때 케이블 방송에서 VJ를 하고 가수로도 활동했던 이가 있다. 그는 현재 강남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강남의 한 지하철 역에 내려 개찰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그의 환한 미소가 사람들을 반긴다. 그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아내는 유명 록밴드의 가수다. 가수이자 VJ 출신이면서 명문대를 나온 치과 원장.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좋은 대학을 나와 악착같이 줄에 붙어있는 것이 곧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길이다. 그러니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과, 예술가가 되겠다는 사람의 과정과 대우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돈이 없어도 만족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이너스 통장 잔고와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에게 그런 성공인들의 삶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같은 존재다. 빛나지만 너무 멀게 느껴져 잡을 수조차 없는 삶.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존중받는 처지가 되었다. 가능성은 닫혀있고, 차별은 일상화되었다. 창의적인 아이들은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고,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만다.

수능 시험에 앞서 모든 사회가 들썩거리며 수험생을 응원하는 모습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응원들이 또 얼마나 많은 차별을 불러올까. 수능 시험 때만 되면 날씨가 춥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날씨 탓이 아니다. 길게 줄지어 늘어선 아이들 중 누군가는 명문대에 진학하고, 누군가는 그에 상관없이 성공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탈락한 아이들의 미래는 더 없이 가혹하고 냉정할 것이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냉혹한 약육강식의 한복판에 놓인 아이들이 안쓰럽다. 그래서 수능시험 때만 되면 날씨는 더 춥고 쓸쓸하다. 
덧붙이는 글 '차별의 기억'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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