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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고 권명희 조합원 49제, 끝나지 않은 죽음

12일 4시 49제, 100여명 모여 비정규직 철폐 결의 다져

등록|2008.11.13 21:27 수정|2008.11.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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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일꾼 박준씨 추모의 노래는 부르고 싶지 않다며 부른 '당부'아무도 동지를 보내길 원치 않는다. ⓒ 이상경


참석자들에게 인사하는 김소연 분회장기륭전자 권명희 조합원 49제 ⓒ 이상경


지난 12일 4시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으로 복직 투쟁을 하던 중 2006년 5월 암이 발병하여 병마와 싸우다 9월 25일 향년 46세에 운명하신 권명희씨의 49제가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와 기륭전자 비정규 여성 노동자 지지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100여명의 비정규직 쟁의 노동자들과 네티즌, 유족, 취재진이 모인 가운데 가산동 옛 기륭전자 공장 정문 앞에서 열렸다.

이랜드 노조 지도부가 배제된 복직이란 제한적 승리 소식을 접하며 향후 비정규직 사업장 전반에서 일어날 고용 방식의 지각 변동을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기륭전자 분회의 복직 투쟁은 기륭전자 단일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로와 가산 디지탈 단지 내 노동자들에게 향후 투쟁 지침을 제시해 준다는 데 의미가 크다. 권명희씨의 49제를 계기로 더욱 험난한 시간들에 맞서는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은 물론 850만 비정규직의 지친 마음을 추스리고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

김소연 분회장의 인사말을 필두로 각계 인사의 추도사와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김소연 분회장] "끝내 임의 꿈 이루겠습니다"

결의를 다지는 김소연 분회장권명희 조합원 49제 ⓒ 이상경


권명희 조합원이 돌아가시고 어느새 49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많은 투쟁이 있었지만 고인의 소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아내였고 가장 자애로운 엄마였습니다. 가장 성실한 노동자였고 가장 신심이 곧았던 조합원이었습니다. 비정규직 고통과 파견 노동의 지옥을 견디다 못한 몸이 중한 병을 앓았지만 가정에서나 노조에서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오랜 투쟁의 고생과 아픔을 딛고 현장으로 돌아가는 꿈 미처 이루지 못했지만, 건강한 몸으로 사랑하는 남편과 피보다 귀한 아이들과 비행기 타고 여행가는 꿈 이루지 못했지만, 살아있는 우리가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뒤에 남은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하며 힘차게 살아가는 것으로 끝내 임의 꿈을 이루고 말 것임을 49제를 맞이한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맹세합니다.

권명희 동지가 지금 우리와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저 하늘나라에서 마음 편하게 환한 웃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더 힘차게 우리가 투쟁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이 자리 함께해 주신 동지들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정진우 (전국목회자 정의평화 실천협의회 공동의장) 목사]

"권명희 동지를 추모할 자격이 없습니다"

추모 기도를 마친 정진우 목사권명희 조합원49제 ⓒ 이상경


요한계시록 21장 1-4절 말씀 들려드리겠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아닙니다. 나는 남자니까 나는 여성이 아닙니다. 나는 먼저 가신 권동지처럼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본 적도 없잖습니까? 나는 남자니까 목사니까 그럭저럭 밥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것, 그것! 내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누군가를 괴롭히는 구조 속에서 혜택을 받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교회'라고 하는 권력체계 안에서 권력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까 세상에 대해서 꾀 많은 혜택을 누리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사실은 권명희 동지를 추모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간 한 여성 노동자 앞에서 억울하게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간 권명희 동지 앞에서 그저 죄인인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이야기 하나가 혹시 만의 하나 죽은 권명희 동지에게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 벗들에게 아직도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유족들에게 행여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란 바로 목사인 제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자본과 노동, 사용자와 노동자, 삶의 이편과 죽음의 저편 이렇게 나뉘어져 있지만 언젠가 그날이 오면 그 모든 것이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비정규직의 눈물이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다시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그런 억울함이 전혀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온갖 거짓들, 돈이면 사람을 떡 주무르듯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그런 거짓 논리가 판치는 세상은 그런 것들이 모두 박살나고 무너지는 세상이 오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우리의 투쟁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텐데 지금 죽음 이편과 저편으로 갈라져 있다고 할지라도 언젠가 그날이 오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텐데 언젠가 우리는 비정규직 차별이 반드시 철폐된 세상에서 만나고야 말 것인데 언젠가 우리는 자본이 인간을 떡 주무르듯 하는 그런 세상이 끝나는 세상에서 만나게 될 터인데 언젠가 슬픔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 세상에 만나게 될 터인데 그 때 우리가 서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만나기 위해서 오늘 우리가 더 뜨겁게 투쟁해야 한다.

그 만남에 그날 만나게 될 그 순간을 위해서 우리가 더 뜨겁게 싸우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한 몸부림이 있는 그곳에 우리는 더 환한 얼굴로 권명희 동지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 약속. 제가 믿는 성경에 기록 되 있는 이 약속의 말씀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립니다. 이 약속을 기억하면서 함께 투쟁합시다. 고인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모든 유독들을 위해 슬퍼하는 벗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박경선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 지회장]

"부끄러움이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경선 지회장권명희 조합원 49제 ⓒ 이상경


삼년 전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가슴 아픈 현실은 금속노조가 15만 산별이 되었다라고 하는데 그 힘 있는 파괴력과 그 힘을 통해서 기륭분회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이런 안타까운 사실에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이런 모습들을 이간질시키려고 자본은 계속해서 우리의 투쟁하는 조합원들과 많은 시민들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분리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삼년 전의 권명희 조합원을 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조합원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거나 무엇을 할 때도 결코 맨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자리에 우리 조합원님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뒤에서 꿋꿋하게 꾸준하게 이렇게 투쟁했던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점거 농성이 공권력에 의해서 구사대에 의해서 침탈되고 많은 동지들이 경찰에 의해 끌려갔을 때에도 그 자리에도 우리 권명희 조합원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마치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이 마치 무언가 집단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조작됐다라고 하는 이런 안타까운 공작을 펼 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조합원들이 떠나갈 때, 동지는 우리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함께 하고자 하는 이 모습은 우리가 정말로 단결해서 대항해도 부족한데 저들의 논리에 의해서 분열되고 또 떠나가야 되는 이런 모습들을 너무도 가슴 아파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는 나눠보지 못했습니다. 원체 말씀이 없기도 했지만 부끄러움도 굉장히 많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동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려고 했고 그리고 언제나 끝까지 우리와 같이 가려고 했던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모습들을 지켜봐 왔습니다. 우리의 힘이 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승리한다는 신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투쟁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 권명희 조합원님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이 지역에 많은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않는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의 틀로 그리고 그 분들과 함께 싸워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륭분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 최영희] "과연 그렇게 싸울 만한 자격이 있었나"

입이 열 개 아니라 백 개라도 내가 과연 이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할 말이 없다. 더더군다나 권명희 동지랑 함께 생활하고 싸웠던 기륭 동지들 앞에서 내가 과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권명희 동지가 운명하셨을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약속했었고 그리고 나서도 49일이 지나서 이제 권명희 동지의 육신이 아니라 영혼마저도 이승을 떠나는 오늘 과연 우리는, 나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과연 기륭동지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렇게 연호했던 염원들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치열했나 나는 그렇게 싸웠나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나 하는 반성. 이러 저러한 생각들 때문에 과연 내가 무슨 얘기를 해야 되나 그냥 막연하게 우리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 반드시 승리하겠다 이런 얘기 하고 돌아서면 되나 그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감싸며 떠났습니다.

그런데 와서 김소연 동지가 첫마디 하시는데 참 담담하고 씩씩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시는 데 참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 동지들 진짜 이길 때까지 싸울 수 있겠구나.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어도 우리 민주노동당이 특별히 뭐 할 수 있는 게 없어도 이 동지들 손 잡고 옆에 못 서겠으면 뒤에서라도 따라가면 밀어주면 우리 권명희 동지가 그렇게 염원했던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던 그 마음 그 약속 우리가 지켜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참 많은 것들이 우리를 무겁게 합니다. 노동자들의 소위 불온한 꿈을 꾸고 있다는 것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 얼마나 많이 힘든 삶을 삽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불온한 꿈이 우리를 얼마나 희망을 우리를 얼마나 많은 열정을 느끼게 하는가 그런 생각 그런 믿음을 가지고 기륭동지들과 함께 민주노동당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최은희 진보신당 대외협력실장]

"2006년 암으로 떠난 이정미 동지가 생각납니다"

추모의 말을 전하는 진보신당 최은희씨권명희 조합원49제 ⓒ 이상경


권명희 조합원, 저는 생전에 잘 알지는 못합니다. 부천 병원에 가서 얼굴을 보고서야  ‘아 저 분이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륭 동지들에게 권명희 조합원이 병을 얻었었던 이야기 그리고 투병 중에도 잠시 몸이 좋아지면 이 자리에 함께 하고자 얘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어떤 동지가 떠올랐습니다. 이 자리에 계시는 동지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06년에 저희들 곁을 떠났던 동지가 하나 있습니다.

보건의료 노조 투쟁을 했었던 이정미 조합원(당시 청구성심병원 노조 위원장)이라고 아실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건강권 투쟁을 주로 하면서 2003년 청구성심병원의 악랄한 자본의 노조 탄압으로 인해서 20명의 조합원들 가운데 열 두 명이 정신질환에 걸렸었던 그 투쟁에 이정미 동지와 함께 했었습니다. 그 당시 이정미 동지도 암으로 투병 중이었는데, 2006년 이정미 동지를 보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제가 힘들 때마다 생각이 나는 그 모습이 하나가 있습니다.

긴 겨울을 끝내고 맞은 봄이었는데 청구성심병원 화단에 굉장히 작은 국화꽃이 3월달에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이정미 동지가 그 꽃을 너무 유심히 보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2006년 이정미 동지를 잃고 나서 제가 힘들 때마다 그 모습이 너무 생각이 나고요, 그렇게 수년간 암투병 하면서 굉장히 힘드셨을 텐데도 투쟁에 항상 씩씩하게 결합하고 항상 앞장서던 그러면서도 새 봄을 맞아 가지고 그 긴 겨울을 뚫고 솟아오른 작은 국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몇 달 있다가 세상을 떠날 그 동지가 무슨 희망을 가졌을까 생각을 하면서 힘들 때면 그 동지가 많이 생각이 납니다.

권명희 조합원 동지도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기륭 동지들 사진 속의 가장 뒤에 정말 너무나 그 소박한 모습으로 서 있는 권명희 동지 생각이 앞으로 힘들 때면 나고 저에게 다시 힘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 때면 기억하겠습니다. 저 또랑또랑한 눈망울 속에 어떤 소망을 어떤 꿈을 같이 꾸려고 했었는지 같이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이 권명희 조합원의 이정미 위원장의 그리고 수많은 동지들의 못다 이룬 소망을 같이 이뤄내기 위해서 끝까지 같이 투쟁하겠습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가끔은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요즘은 납니다. 오늘도 비정규직 권리선언 투쟁으로 그리고 이명박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하는 200가지의 악법에 맞서서 오늘도 서너 가지 기자회견을 하고 다니면서 우리가 어떻게 물밀듯이 밀려오는 저 자본과 권력의 공세 앞에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어떻게 우리가 싸울지 가끔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권명희 동지 저희 마음속에 살아있는 권명희 동지가 힘을 줄 것이라 믿으면서 같이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승희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 "다른 것 필요없다, 불심을 주세요"

추도사 박승희 사무처장권명희 조합원49제 ⓒ 이상경


권명희 조합원을 우리 가슴에 새겨야 하는 날입니다. 우리 기륭 투쟁은 이제 어느덧 전국의 네티즌들이 함께하는 비정규 여성 노동자 투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무게 이 기륭 조합원들을 포함해서 우리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여기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은 조합원들 같이 만나야 하는데 아직 못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절망을 하지만 또 한 가지 저는 희망을 가지려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또 하나의 계기로 삼으면서 희망을 가지려고 합니다.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의 염원은 죽어 있지 않다. 잠시 잠들어 있을 뿐이다."  저는 정말 동의합니다. 잠들어 있는 것을 깨우는 역할, 여기 오신 한분 한분이 하셔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 권명희 조합원 끝까지 다 하고 싶었으나 생을 다하지 못하고 먼저 가는 바람에 같이 이룰 수 없었던 그 과제, 우리 노동자가 건강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 우리들 안 되면 우리 후대들이 만들어 갈 수 있게끔 우리는 또 하나의 디딤돌을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아마 우리 소중한 과제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가끔은 절망을 하게 됩니다. 교섭이 난항에 빠졌을 때, 우리 연대 동지들 많이 안보였을 때, 뭔가 잘 안 풀릴 때 많이 절망에 빠집니다. 우리 조합원들 믿고 우리 조합원만이 우리 노동자만이 희망이라는 의지를 가지고 우리 앞으로 뚜벅 뚜벅 걸어갑시다.

얼마 전에 우리 이랜드 조합원들에게 김장김치를 가져다 주셨던 스님 한 분이 기륭전자에 선물을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제가 어제 만났던 기륭 조합원 한 분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떤 것을 드리면 될까요? 그랬더니 그분이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불심을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불심, 저도 가슴에 하나 담아 옵니다. 우리 권명희 조합원이 우리 동지들에게 불심을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불심을 하나로 모아 안고 우리 많은 동지들과 만나서 정말 이 이명박 정권 뒤집어엎을 수 있는 그런 힘을 키워나가기 위해서 우리 함께 같이 걸어갑시다. 같이 가실 수 있겠죠? 예! 투쟁!

[이미영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유자녀 장학금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어제 만나서 불심을 얘기 했던 게 접니다. 다른 이유에서 불심을 이야기 했던 것이 아니라 투쟁 기금이나 먹거리나 우리가 투쟁하는 데 중요하긴 한데, 어제 그 얘기를 딱 듣고서 스님이 오셔서 최○○을 지옥불에 떨어뜨리는 그런 불심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49제에 앞서 49일 동안 모금이 있었습니다. 또 오늘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우리 유가족, 이제 중학교 2학년 1학년인 기석이와 수경이의 장학금이라도 조금 모금을 해보자 하는 움직임이 있어서 그 모금이 49일 동안 진행이 되었구요, 그래서 49제가 있는 오늘 유자녀 장학금을 가족분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기석이와 수경이에게 힘을 주신 여러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고인의 남편 최동철씨 ⓒ 이상경


김소연 분회장 

이 돈은요. 네티즌분들과 우리 노동조합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후원계좌로 주셨습니다. 200만원 전달해 드립니다. 기석이랑 수경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그리고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마음도 따뜻해서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모두 기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석순 기륭전자 조합원] "지은 죄도 없이 간 유치장이 무서웠죠"

분향하는 오석순 조합원권명희 조합원49제 ⓒ 이상경


가난이 노랗게 현기증처럼 소용돌이치던 공장이었지만 뜰에 환하게 핀 라일락과 목련이 있어 봄이면 그 꼿 누구나 볼 수 있게 담장도 대문도 환하게 열려 있어 조금은 위로였던 공장이었죠. 최저 임금에 단돈 10원을 더 받는 서러운 노동도 그냥 그렇게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세끼 밥이 되고 희망을 키우는 학비가 된다면 서러움 꾹꾹 눌러 참을 수 있었어요.

일만 시켜 준다면 감지덕지했던 호사와 사장님은 가난한 이들의 두 눈 흐리게 흔들리는 빛나는 꽃이었고 밥줄 희망 줄 거머쥐고 선 높고 높은 하늘이었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회사가 하늘이었죠. 무섭고 두렵고 그리고 헤어날 수 없는 숙명의 하늘이라고 사방이 눈 부라렸죠. 지은 죄도 없이 처음 가본 유치장이 무서웠고 사람답게 살자는 게 죄라 하는 형사, 구사대, 용역 깡패 그 험상궂은 단어들이 두려웠죠.

우리는 미운 오리새끼, 백조인줄 몰랐던 우린 미운 오리새끼였죠. 무지로 순수했고 몽매로 순진했지만 심장이나 뱃속에 거짓말도 한 마디 제대로 숨기지 못한 못난 오리였지요. 못난 오리에겐 하늘은 온통 먹장구름 온통 무섭고 두렵기만 한 하늘인데 누군가 말했어요. “하늘은 먹구름이 아니라 본래 하늘은 눈 시원한 파란 하늘이다. 누가 누구를 누르는 겁나는 하늘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돕는 파란, 파란 하늘이다.” 우리는 겁으로 떨리는 마음이 아니라 희망으로 설레는 마음이라 믿으며 손을 잡고 길을 나섰지요.

아름다운 가시밭길 꽃잎도 상처만 가득한 길 햇살도 투명하게 신음하는 그 길 열매도 없이 가뭄과 홍수에 몸은 목내이로 말라가는 길 길 가는 길에 흔들리고 쓰러지며 흔들리고 쓰러지며 눈물 흘리며 끝내 우리 명희 언니 그 ‘달빛세상 박꽃 같던 우리 언니 목숨마저 지운 길, 사람에 대한 예의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절규로 걸어온 길을 사람들은 이제 희망이라고 하네요.

분향하는 기석, 수경이와 아내에게 술 따르는 남편 최동철씨권명희조합원49제 ⓒ 이상경


기석아 수경아 우리 사랑하는 조카, 동생들아 세상 사람들은 침묵하고 꿈속마저 가위 눌려 두려워도 우리는 끝내 오는 새벽을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어둠이 영원하다 하지만 어둠을 건너는 사람들 두려움 속에서 용기를 내는 사람들 그 자신이 희망인 사람들이 있는 한 어둠은 촛불 하나에도 출렁이는 무렁한 것 우리가 우리를 믿는다면 지나가는 비 같은 것.

기석아 수경아 슬픔을 외면하지도 슬픔에 빠져 지지도 말자 오랜 날 힘든 일을 하고 더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명희 언니, 너희 엄만 파란 하늘 초록 잎사귀, 그리고 환한 희망을 담은 너희들이 맑은 눈망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희망이다.

우리의 투쟁 우리의 염원 우리의 기도를 대지 속에서 칭칭 감긴 뿌리로 삼아 기석이와 수경이가 가난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자주와 평등의 연대와 친선의 꽃과 열매로 가라 사람들에게 희망인 사람이 되자.

사랑해요 명희 언니 우리의 꿈이 제크의 콩나무처럼 하루아침에 거대해 질 날 멀지 않았어요. 도둑처럼 새벽처럼 기적처럼 오는 승리를 위해 우리는 오늘도 이 어둠을 견뎌요.

참배하는 기륭 조합원들권명희조합원49제 ⓒ 이상경


꽂아둔 향이 여전히 억압의 창살을 사이에 둔 듯하다권명희 조합원49제 ⓒ 이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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