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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59) 쉼터

[우리 말에 마음쓰기 474] ‘읽기책’과 ‘독본’, ‘책읽기’와 ‘독서’

등록|2008.11.13 16:49 수정|2008.11.13 16:49

ㄱ. 쉼터

.. 미나 어머니는 숙희 아버지의 친절한 말 한 마디에도 감격스러워했습니다. 도시에 있을 때는 늘 바쁘게 쫓기듯 돌아다녔고, 더군다나 미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죽자 빚쟁이들이 몰려와 밤낮으로 괴롭혀 대던 생각을 하면, 시골은 그야말로 안식처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  《박상규-사장이 된 풀빵장수》(산하,1993) 182∼183쪽

 “숙희 아버지의 친절(親切)한 말 한 마디”는 “숙희 아버지가 건넨 따뜻한 말 한 마디”나 “숙희 아버지가 따뜻하게 건넨 말 한 마디”로 다듬어 봅니다.

 ┌ 안식처(安息處) : 편히 쉬는 곳
 │   - 새들의 안식처 / 가정은 삶의 안식처입니다
 ├ 안식(安息) : 편하게 쉼
 │   - 안식을 누리다 / 안식을 취하다 / 그는 고향에서 안식을 찾았다
 │
 ├ 안식처 같은 느낌
 │→ 쉼터 같은 느낌
 │→ 보금자리 같은 느낌
 │→ 포근한 느낌
 │→ 따뜻한 느낌
 │→ 넉넉한 느낌
 │→ 마음이 느긋한 느낌
 │→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
 └ …

 오늘날 시골마을은 도시마을과 견주어 얼마나 ‘안식처 같은’ 느낌, 그러니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가 궁금합니다. 가만히 살피면, 시골이든 도시든,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른 걱정이 없이 오순도순 어울릴 수 있다면, 어느 곳이 되든 넉넉하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살가우며 아름다운 곳이 아니랴 싶어요.

 도시라 하여 모두 메마르지 않으며, 시골이라 하여 모두 따숩지 않습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 하여 모두 땅을 닮아 구수하게 살아가지 않으나,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 하여 모두 잿빛 건물마냥 차갑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떤 매무새를 지키면서 어떤 이웃하고 어떻게 어우르려고 하는가에 따라서 느낌이며 삶이며 달라지리라 봅니다.

 ┌ 안식처 : 안식 + 처 = 안식을 하는 곳 = 편히 쉬는 곳
 └ 쉼터 : 쉼 + 터 = 쉬는 곳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니, ‘안식’과 ‘안식처’라는 한자말에는 보기글을 여럿 달아 놓습니다. ‘안식처’와 같은 뜻일 ‘쉼터’를 찾아보니, 아무런 보기글이 달려 있지 않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면서 생각합니다. ‘쉼터’라는 낱말이 쓰이는 일이 없기에 국어사전에는 보기글 하나 안 달려 있는가? 보기글을 달아 놓을 만큼 알뜰히 여길 낱말이 아니라고 여기는가? 너무 쉬운 말이라서 보기글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 새들의 보금자리 →새들한테 보금자리
 ├ 가정은 삶의 안식처입니다 → 집은 삶을 쉬는 곳입니다
 ├ 안식을 누리다 → 느긋하게 쉬다
 ├ 안식을 취하다 → 쉬다                                          
 └ 고향에서 안식을 찾았다 → 고향에서 너그러움을 찾았다

 우리 삶을 쉴 자리는 어디인가 둘러봅니다. 우리 마음이 쉴 곳은 어디에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 생각이 쉬면서 새힘을 얻을 만한 데가 있는가 곱씹어 봅니다. 삶이 삶다움을 찾도록 쉴 자리, 마음이 마음다움을 되찾도록 쉴 곳, 생각이 생각다움을 돌이키도록 쉴 데, 그러면서 말은 말다움을 찾고 글은 글다움을 북돋울 수 있는 터는 어디일는지요. 우리 고운 쉼터를, 우리 너그러운 보금자리를, 우리 따뜻한 오막살이 집 한 채를.


ㄴ. 읽기책

.. 페터와 페트라에게 읽기책을 보여 주며, 어디까지 읽었는지 일러 주었어요. 선생님이 구나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했어요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김라합 옮김-엄지소년 닐스》(창비,2000) 163쪽

 책은 ‘읽’습니다. 책을 읽은 뒤에 무엇을 느꼈는가를 쓰는 글이라 한다면, ‘책을 읽은 느낌 글’이고, 줄여서 ‘느낌글’입니다. 책을 읽는 일은 ‘책읽기’이고, 책을 읽히는 가르침은 ‘책읽기 교육’ 또는 ‘책읽기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처음 이 땅에 ‘책읽는 문화’가 들어올 무렵, 아이나 어른이나 ‘독서’를 해야 했고, ‘독본’을 펼쳐야 했으며, ‘독서법’을 이야기하고 ‘독서 지도’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면서 ‘독후감’을 쓰도록 했습니다.

 ┌ 독본(讀本)
 │  (1) 글을 읽어서 그 내용을 익히기 위한 책
 │  (2) 보통 사람들에게 전문 분야 기초 지식을 전달하려고 지은 길잡이 책
 │
 ├ 읽기책
 └ 책읽기 / 책읽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책을 무던히도 안 읽는다고 하여 ‘책을 더 읽히려는 정책’이 나오고, ‘책을 더 읽도록 하는 잔치’가 벌어지며, ‘책을 더 가까이하도록 돕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책읽기’나 ‘책읽다’ 같은 낱말은 국어사전에 실리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독서(讀書)’라는 한자말에 밀리더니, 이제는 ‘북(book)’이라는 영어에 밀립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한다는 분들 스스로 ‘책잔치’을 꾀하고 ‘책마을’을 연다면 좋으련만, 모두들 ‘북페스티벌’이니 ‘북쇼’니, 더군다나 ‘북시티’를 읊고 있어서 머리가 어질어질 아찔아찔 해롱해롱입니다.

 그러고 보면,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더께가 짙어서 ‘초등학교’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꽤 오래 있은 뒤에야 가까스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달리 공무원끼리 쑥덕쑥덕 하면서 ‘동사무소’는 하루아침에 ‘주민센터’로 이름이 바뀝니다. ‘국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이 제 나라 말인 일본말’을 가리키면서 쓰이게 되었는데, 아이들 수업 가운데 ‘국어’는 ‘우리 말’이든 ‘한글’로든, 또는 한자말로 적어서 ‘한국어’로든, 아니면 ‘한국말’로든 바뀔 낌새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스스로 우리 얼을 키우지 못한 탓이라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일구지 않는 까닭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우리 줏대를 세워서 우리 힘으로 우리 땅을 갈고닦으면서 우리 사람을 돌보고 아낀다고 할 때에는, 우리가 늘 쓰는 말이 어이없이 어수선해지지 않게끔 다스립니다. 우리 말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손질하고 보듬고 추스릅니다. 우리 글이 밝게 빛날 수 있게끔 힘을 모으고 생각을 모두고 슬기를 여미어 냅니다.
덧붙이는 글 얼마든지 살려쓸 수 있는 우리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조금도 살릴 수 없는 우리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스스로 모르는 사이 잘 살려쓰는 대목이 있는 한편, 우리 스스로 알면서 엉터리로 무너뜨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맞게 말을 다듬거나 추스를 길은 어디에 있는지 헤아려 보고자 이 글을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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