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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한자말 덜기 (54) 일대

[우리 말에 마음쓰기 475] '동해안 일대'와 '일대혼란'

등록|2008.11.14 12:33 수정|2008.11.14 12:33

ㄱ. 동해안 일대

.. 제 3차 지역으로 강원도 내륙과 동해안 일대였으며 ..  《香蘭文學》(성신여대 국어교육과) 제7집(1977.2.) 132쪽

 “제(第) 3차(三次) 지역(地域)으로”는 “세 번째로 찾아간 곳으로”나 “세 번째로”나 “세 번째 다녀온 곳으로”로 손봅니다. “강원도 내륙(內陸)”은 “강원도 안쪽”이나 “강원도 산골”이나 “강원도 깊숙한 곳”으로 손질합니다.

 ┌ 일대(一大) : 아주 굉장한
 │   - 일대 시련 / 일대 변혁이 오다 / 일대 혼란에
 ├ 일대(一代)
 │  (1) 한 시대나 한 세대 전체
 │   - 일대 영웅 / 일대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
 │  (2) 맥이 뛰다가 한 번씩 멎는 일
 ├ 일대(一帶) : 일정한 범위의 어느 지역 전부
 │   - 남부 지방 일대에 가뭄이 극심하다
 ├ 일대(一隊) : 많은 사람이나 짐승의 한 무리
 │   - 일대의 성난 군중
 ├ 일대(一對) : 한 쌍
 │
 ├ 동해안 일대였으며
 │→ 동해안이었으며
 │→ 동해안 둘레였으며
 │→ 동해안 쪽이었으며
 └ …

 국어사전에는 다섯 가지 한자말 ‘일대’가 실려 있습니다. 이 가운데 ‘一隊’와 ‘一對’는 안 쓰이는 한자말이 아니랴 싶습니다. 한 무리면 ‘한 무리’이고, 두 무리면 ‘두 무리’이며, 북적이는 사람들이면 ‘북적이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쌍으로 있으면 ‘한 쌍’일 뿐, ‘일대’가 아닙니다.

 ┌ 남부 지방 일대에 가뭄이 극심하다
 │
 │→ 남부 지방에 가뭄이 대단하다
 │→ 남녘땅에 가뭄이 대단하다
 │→ 남녘땅에 걸쳐 모진 가뭄이 들었다
 │→ 남녘땅에 두루 모진 가뭄이 들었다
 │→ 남녘땅 곳곳에 모진 가뭄이 들었다
 └ …

 어느 곳 모두를 가리킨다는 ‘一帶’를 생각해 봅니다. 모든 곳을 가리키면 ‘모든 곳’이라 하면 됩니다. 몇몇 곳을 가리키면 ‘몇몇 곳’이라 하면 되고, 어느 곳을 가리키는가에 따라서 ‘곳곳’, ‘군데군데’, ‘이곳저곳’ 같은 낱말을 넣어 줍니다.

 국어사전 보기글에 실린 글월은 “남녘땅에 걸쳐”나 “남녘땅 어디나”나 “남녘땅은 모두”처럼 풀어내어도 잘 어울립니다.

 ┌ 일대 영웅 → 한 시대 영웅
 ├ 일대에 한 번밖에 없는 → 세상에 한 번밖에 없는
 └ 일대의 성난 군중 → 무리지은 성난 사람들 / 성난 많은 사람들

 어느 한때를 가리킨다는 ‘一代’ 또한 얼마나 쓸 만한 낱말인가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꼭 이러한 한자말을 써야 하는가 궁금합니다. 이와 같은 한자말을 안 쓰고서는 우리 생각을 나타낼 수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생각을 드러내고, 우리 삶을 찬찬히 곱씹으면서 우리 모습을 담아내면 넉넉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ㄴ. 일대혼란

.. 이번에는 아예 사람들의 일터를 바꿔 놓았다. 그러자 일대혼란이 일어났다. 시청 광장 구석에 있던 은행은 과일가게로 바뀌었다 ..  《야누쉬 코르착/송순재 옮김-안톤 카이투스의 모험》(내일을여는책,2000) 66쪽

 “사람들의 일터”는 “사람들 일터”나 “사람들이 일하는 곳”으로 손봅니다. ‘혼란(混亂)’은 ‘어수선함’이나 ‘어지러움’이나 ‘뒤죽박죽’이나 ‘얼키고 설킴’ 들로 다듬어 줍니다.

 ┌ 일대혼란이 일어났다
 │
 │→ 대단히 혼란스러워졌다
 │→ 어마어마하게 뒤죽박죽이 되었다
 │→ 크게 어수선해졌다
 │→ 아주 엉망진창이 되었다
 └ …

 곰곰이 짚어 봅니다. ‘일대(一大)혼란’이라는 말투는 꽤 쓰이고 있습니다. 비슷한 꼴로 “서울 종로는 일대 혼잡을 이루어……”처럼 쓰기도 합니다.

 ┌ 일대 시련 → 엄청난 괴로움 / 모진 고달픔
 ├ 일대 변혁이 오다 → 크게 뒤바뀌다 / 확 바뀌다
 └ 일대 혼잡을 이루어 → 아주 어수선해서 / 길이 많이 막혀

 말뜻을 풀면 “아주 크게”인 ‘一大’입니다. 이 한자말 ‘일대’는 한자 말밑이 어떠한가를 알아도 뜻을 살피기 쉽지 않습니다. 손쉬운 한자라 할 만한 ‘一’이고 ‘大’이지만, 두 낱말이 더해졌을 때에는 쓰임새가 아주 딴판입니다. ‘하나 + 큰’이 아닌 ‘아주 + 큰’이 되니까요.

 흔히들 한자 지식이 있으면, 새로운 말을 지어내기에도 좋고 한자로 어떻게 적는가만 알면 낱말뜻도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一大’라는 한자말 하나를 보더라도 흔히들 하는 말은 그리 옳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소리값이 같은 다른 한자말 ‘일대’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얼마든지 ‘참으로 손쉬운’ 토박이말이 있음에도, 또 누구나 알고 있는 토박이말임에도 제대로 안 쓰고 있습니다. 일부로 뒤로 밀거나 우리 스스로 내치기까지 합니다.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사랑과 믿음을 함께 나눌 말과 글이 아니라, 자꾸자꾸 지식자랑이나 겉껍데기 뽐내기로 흐릅니다.

 써야 할 말이라면 마땅히 써야 합니다. 이와 함께, 쓰지 말아야 할 말이라면 스스럼없이 털어내야 합니다. 쓸모가 거의 없다든지, 우리 삶에 이바지를 하지 못한다든지, 우리 생각을 갉아먹는다든지, 우리 넋을 키우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든지 하는 말도 남김없이 씻어내야 합니다. 입으로는 ‘우리 말로 생각하기(한국어로 철학하기/한국어로 사유하기)’를 외면서, 정작 우리 말이 무엇인지, 우리 말은 어떤 모습인지, 우리 말로 나누는 앎과 슬기란 무엇인지는 조금도 모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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