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세금폭탄론' 인정하지 않았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누가 종부세 껍데기만 남았다고 하는가
▲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13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종부세에 대한 헌법소원ㆍ위헌법률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 권우성
"세대별 합산 과세에 대한 헌재의 위헌 판결 등으로 종합부동산세가 껍데기만 남게 됐다."
대다수 언론들의 진단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부동산 투기 억제를 주요 목적으로 도입된 본격적인 부동산 보유세제인 종합부동산세는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자칫 그 수명을 다할 위기를 맞고 있다.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과세 기준 상향 조정과 세율 인하까지 이뤄진다면 종합부동산세는 말 그대로 있으나마나 한 제도가 되기 십상이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헌재의 의미있는 결정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헌재는 몇가지 측면에선 주목할 만한 결정을 내놓았다. 우선 종합부동산세 제도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종합부동산세가 특정 계층을 겨냥해 과도한 세금폭탄이라는 일부 언론과 기득권층의 주장이 근거없는 주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점이 두드러진다.
헌재는 종합부동산세가 재산세나 양도소득세와 중복과세라는 주장에 대해 재산세는 지방세인 반면 종부세는 국세로서 중복과세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양도소득세와는 과세 목적과 물건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역시 중복과세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특히 종부세가 특정 계층에 대한 과도한 세금폭탄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납세 의무자의 세부담 정도가 종부세 입법 목적에 비춰볼 때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세금폭탄 주장을 배척했다.
게다가 헌재는 토지와 주택에 대한 별도 과세가 평등권 침해인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토지와 주택의 사회적 기능이나 국민경제의 측면에서 고려할 때 이를 다른 재산권과 달리 취급하더라도 합리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며 과세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토지와 주택에 대해서는 다른 재산권과 달리 국민경제와 사회적 형평성 차원에서 별도의 차별적인 과세가 가능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다만 세대별 합산 과세에 대해서는 입법 목적과 과세 기준의 정당성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세대를 이룬 사람들과 독신자나 사실혼 관계의 부부 등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세대별 부동산 보유를 하나의 과세 단위로 한 것은 조세 정책적 결정으로 조세 회피 행위를 방지해 종부세 부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려는 것"(조대현 재판관)이라는 판단이나, "주택은 가족 공동 주거로 쓰이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세대별 합산 과세는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하고 논리상 결함도 없다"(김종대 재판관)는 소수 의견이 있었지만, "설령 공유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세대별 합산 과세의 당위성이 없다"는 다수 의견에 밀렸다.
헌재는 또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 부과에 대해서도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주택 장기 보유자, 또는 보유기간이 짧다고 하더라도 주택 외에는 별다른 재산이 없어 조세지불 능력이 낮은 경우 납세 의무를 감면해주는 등 예외조항이나 조정장치를 둬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고율의 누진세를 적용하는 것은 세금 부담과 법익의 균형성에 어긋난다며 내년 12월말까지 이를 고치도록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조대현·김종대·목영준 재판관은 종부세가 재산 보유세인 만큼 부동산의 장기 보유 여부에 관계없이, 1주택자라고 하더라도 고가의 주택에 상응하는 보유세를 부담토록 해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합헌(목영준 재판관은 일부 합헌) 의견을 내기도 했다.
▲ ⓒ 권우성
헌재는 '세금폭탄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의 이같은 결정은 일부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그동안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특정 계층을 겨냥한 과도한 세금폭탄이며, 중복과세이기 때문에 종부세는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 결정의 전반적인 취지는 종합부동산세가 '국민경제'및 '토지와 주택의 사회적 기능' 등을 고려할 때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보유과세라고 결론을 낸 셈이다.
그렇다면 종부세는 결코 껍데기만 남은 것이 아니다. 뼈대가 성성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헌재 결정을 받아들여 세대별 합산 과세의 기준을 종부세 도입 취지에 맞게 개인별 합산 과세 방식으로 바꾸면 된다.
보유세 강화를 통한 부동산 투기 억제라는 종부세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자면 개인별 합산 과세 기준을 세대별 합산과세 기준(현행 6억원) 보다 더 낮추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대신 개인별 합산과세 기준에서 기존의 세대별 합산과세 기준인 '6억원초과' 까지의 과세율을 하향 조정해 종부세를 부과는 하되, 그 부담을 덜어주고, 반면 6억원 이상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누진세율을 더 올리는 방식 등으로 종부세의 취지를 살려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개인별 합산과세로 가고, 과세 대상은 지금보다 더 확대하되 누진세율의 편차를 크게 해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다.
1주택 보유자에 대해서는 헌재가 밝힌 것처럼 장기 보유자들이나 다른 재산이나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주는 방안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과세 상의 기술적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겠지만 종부세 정착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 13일 오후 헌법재판소가 종부세법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린 가운데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재동 헌법재판소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종부세법의 입법목적에 대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났다며 취지를 살려나갈 것을 촉구했다. ⓒ 권우성
종부세 폐지를 원하는 <조선> <중앙>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다수 신문들이 종부세에 대해 사실상 '사망선고'를 하고 나선 것은 헌재의 결정 취지의 큰 방향을 왜곡하거나 헌재의 일부 위헌 결정을 계기로 종부세를 아예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무책임한 처사다.
<조선일보>가 14일 사설(종합부동산세 일부 위헌 결정은 났지만)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해서 종부세를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위헌 여부와 관계없이 근본적으로 조세 상식을 벗어난 잘못된 세금"이라며 헌재 결정에 대해 에둘러 미흡함을 토로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는 "헌법 테두리 내에서 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 발상이 잘못됐고, 수단이 정도를 넘어섰으며, 국가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면 이를 바로 잡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나서기 까지 했다.
<중앙일보>는 아예 '종부세는 시급히 폐지돼야 한다'는 사설을 실었다. 헌재가 종부세의 헌법적 타당성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세대별 합산과 6억원 초과로 확대하면서 완전히 징벌적 세금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가구별 합산과세와 1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일률적 과세에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중앙일보>는 "담세 능력을 초과한 세금폭탄"이라는 주장을 폈다. 나아가 "종부세의 핵심 뼈대들이 죄다 무너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라며 "그렇다면 종부세를 차제에 아예 폐지하고 새로운 방도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종부세를 아예 없애야 한다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주요 맥락에서는 되레 종부세의 입법 취지나 그 뼈대는 국민경제 측면에서나 부동산 투기 방지 측면에서, 또 조세 형평 차원에서 헌법 정신에 부합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14일 <서울신문>이나 <한국일보>의 해석과 처방이 훨씬 상식적이다.
<서울신문>은 사설(헌재 취지 맞게 종부세 개편 서둘러라)을 통해 헌재 결정은 "종부세의 현 골격은 유지하되 위헌 결정이 난 세대별 합산 과세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과세 조항을 중심으로 손질하면 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서울신문>은 이에 따라 종부세 과세 기준, 종부세 개편으로 줄게 될 지방 세수 보전방안, 인별 합산으로 전환되는 데 따라 예상되는 조세 회피 목적의 재산 분할 행위에 대한 규제 방안 등의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일보> 역시 사설(종부세 정비 사회적 합의 필요하다)을 통해 "헌재 결정 취지에 어울리게 법과 제도를 합리적으로 다듬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종부세는 결코 껍데기만 남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종부세의 운명은 이제 시작일 수 있다. 그것은 헌재의 이번 결정의 의미와 취지의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알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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