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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 잘 먹으면, 그 고장도 달라보인다

인심에 반하고 경치에 반한 고장 밀양

등록|2008.11.15 11:35 수정|2008.11.17 09:16
밀양 시내는 몹시 복잡했다. 길이 좁아 골목을 찾기도 어려웠다. 우리가 찾는 곳은 영남루. 영남루로 가려면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어야 했다. 영남루 입구에는 대중가요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생가가 있었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그 집은 일자집으로 툇마루도 있고 아궁이도 밖으로 나와 있었다. 복원한다면서 무조건 멋있게 지어놓는 집보다 정감이 있어 보여 좋았다.

박시춘 선생 생가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집이었다 ⓒ 이현숙


영남루몹시 낡아서 안에 들어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 이현숙


영남루는 오래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 이러다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마저 들었다. 다행히 루각 안에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등 세심하게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여 안심이 되었다. 운동화를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남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물 좋고 산 좋고 경치 좋은 곳. 풍수지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지, 정자나 누각들은 어디나 빼어난 경치를 바라보고 있다.

남천강영남루에서 바라보는 남천강이 아름다웠다. ⓒ 이현숙


마침 밀양 오일장이라고 해서 물어물어 찾아갔다. 영남루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상설시장에서 같이 열렸다. 오일장은 어딜 가나 풍성하다. 전문 장꾼들보다 시골에서 보따리 보따리 들고 나와 앉아 있는 할머니들이 있어 더 푸근하고 재미도 있다.

밀양 오일장오일장에 가면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 이현숙


밀양오일장가을 오일장이라 탐스러운 과일이 제일 눈길을 끌었다 ⓒ 이현숙


사실 혼자 살 때는 시골 장에 가도 사고 싶은 게 없었는데, 요즘은 달라졌다. 이제 결혼해 식구가 생기자 시골 장에 대한 기대도 생겨났다. 과일과 채소가 주류지만 간혹 산나물이나 마음에 드는 특산물이라도 만나면 횡재한 기분이다. 이번 장에는 얼음골 사과와 가는 곳마다 탐스럽게 달려 있던 감을 사고 싶었다. 가을 오일장이라 과일이 많았고 할머니들은 콩잎이나 깻잎 절임을 앞에 놓고 앉아 나물을 다듬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밀양오일장좌판을 벌여 놓고 앉은 할머니들은 오일장의 주인공들이다 ⓒ 이현숙


밀양장은 골목이 많았다. 골목을 따라 장구경을 하다가 돼지국밥집을 물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돼지국밥이었다. 그런데 밀양 사람들 어찌나 친절한지 빤한 길인데도 일부러 그 앞까지 데려다 준다. 무뚝뚝하다는 경상도 사람에 대한 내 선입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돼지국밥맛도 좋고 인심도 후한 시장 골목안 돼지국밥... ⓒ 이현숙


돼지국밥은 아주 푸짐하면서도 정갈했다. 김치도 맛있고 국밥도 맛있고 거기다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도 두둑했다. 처음 뚝배기에 국을 담을 때부터 알아봤다. 뚝배기에 국물이 넘치도록 담아서 다 먹기도 힘들었는데 다 먹어 갈 무렵 옆에 와서는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주시겠다며 묻는다. 고기든, 국물이든, 밥이든. 뭐든 필요하면 더 주시겠다며. 우리는 사양하고 디저트로 커피만 주문해서 마셨다.

밀양은 참 인심이 좋은 고장이다. 이 국밥집뿐 아니라 어제 점심도 저녁도 아주 대접을 잘 받았다. 대접이라고 하니 초대 받아 공짜로 먹은 것 같지만 돈을 내고 먹어도 푸짐하게 친절까지 덤으로 받으면 정말 거저 대접 받은 기분으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어제 점심은 6천원 하는 쌈밥 정식이었는데 상에는 맛있는 고등어 조림과 온갖 채소가 풍성하게 올라왔고, 저녁에는 표충사 앞에서 된장산채정식을 먹었는데 마치 전라도 식탁처럼 나물과 짭짤한 절임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단체 손님이 있어 아차 잘못 들어왔구나 후회하면서 기다렸는데 상차림을 보고는 눈이 다 휘둥그래졌다.

우리가 먹은 된장산채정식은 일인분에 8천원이었는데, 음식이 깔끔하면서 반찬이 골고루 맛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절했다. 손님이 많아 복잡한데도 일일이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이 단연 돋보였다. 덕분에 우리는 정말 흡족하게 만찬을 즐겼고,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은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인심을 알고 나니 밀양이 다시 보였다. 가을 풍경도 거리 모습도 새삼 아름다워 보였다. 배도 불렀겠다, 이번엔 들판을 달려 김종직 선생 생가로 달렸다. 그런데 생가는 네비게이션에도 나와 있지 않았고 관광지도에도 자세한 길 안내가 없었다. 우리는 우선 예림서원을 가 보기로 했다. 예림서원은 바로 김종직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치시던 곳이었다.

예림서원예림서원 마당에는 천연염색을 한 천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 ⓒ 이현숙


대문에 들어서자 천연 염색을 한 천들이 안마당 가득 널려 있었다. 옛날에 이불호청을 빨아 풀위에 널어 놓은 것처럼. 우리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툇마루에도 앉아보고 뒤란에도 가 보고 나오다가 마당에서 추수하는 모습도 지켜 보았다. 다 보고 나와서 마을 어른께 생가를 여쭤보았다. 동네를 벗어나서 돌아가야 한단다. 막상 생가로 가보니 예림서원과는 야트막한 산 하나 사이다.

김종직선생 생가예림서원 산너머에 있었지만 차로는 돌아 나와야 갈 수 있었다 ⓒ 이현숙


지금은 길이 없어졌겠지만 옛날에는 아마도 산으로 난 좁은 길을 걸어서 서원으로 가셨을 것 같다. 산으로 난 작은 오솔길. 우리 세대만 해도 그런 길들을 많이 걸었다. 걸어서 학교도 가고 버스 타러도 가고. 그러나 지금은 말끔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길만 살아 남았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결국 잡풀들에 덮여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마니까.

산을 바라보면서 여기도 다산초당처럼 산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마구잡이 개발에서 이제 조금 복원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니까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 선인이 살던 집에 와서 선인이 하시던 대로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낙동교반대 편에서 큰 차가 건너오면, 이쪽의 차들은 마냥 서서 기다려야 하는 다리. 마치 골동품을 강 위에 걸쳐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이현숙


우리가 마지막으로 달려간 곳은 낙동교. 삼랑진과 김해 생림면을 연결하는 교량인데 차 두 대가 겨우 빠져 나갈 정도로 폭이 좁았다. 덩치 큰 버스나 트럭이 지나가려면 반대편에서는 차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물론 매일 다니는 차들은 불편하겠지만 구경하는 나는 신기했다.

마치 골동품을 강 위에 걸쳐 놓은 느낌이랄까? 사실 다리를 건너갈 때는 버스 뒤를 따라 가 몰랐는데 건너 올 때는 아슬아슬했다. 그래그런지 멀지 않은 곳에서 이미 다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 다리도 이제 머지 않아 이 고장의 명물로 자리나 지키겠구나 싶어 마음 한 편이 쓸쓸해졌다.
덧붙이는 글 밀양에는 10월 중순경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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