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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에게선 돈 냄새만 물씬

[책 속으로 떠난 역사 여행 30] 윤용철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며>

등록|2008.11.16 11:33 수정|2008.11.16 11:33

표지<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며> ⓒ 말글빛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한 평생 부와 권력 누리던 사람도, 부도 권력도 없이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쁜 사람도 죽기는 마찬가지다. 권력 앞세우고 금력 내세워서 불노초도 구해보고 만병통치약도 구해보지만 어느새 백발은 다가오고 저승사자는 뒤뜰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제 권력이 천년만년 지속되기라도 하는 양 무소불위 안하무인이다. 가진 돈 넘쳐 주체를 못할 지경이라도 채우고 또 채우면 못 채울 게 무어냐는 듯 욕심이 끝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졸기(卒記)란 게 있다. 한 사람이 죽은 뒤 그의 평생 삶에 대한 평가를 기록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권력과 부를 남부럽지 않게 누렸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권력은 있었으되 비가 새는 집에서 궁상스런 삶을 살았던 이도 없지는 않았지만.

저자 윤용철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23인의 졸기를 모아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며>란 책을 펴냈다. 예전에 <조선왕조실록 졸기>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수정 보완해서 엮은 책이다.

떳떳한 기상이 저리도 시퍼런데
백성의 질고를 소생시킬 계책은 없구나.
생사를 좌우하는 신령스런 돈,
관료들에게선 돈 냄새만 물씬 난다.
문풍은 날로 땅에 떨어지고
선비는 벙어리, 귀머거리 되었구나. (책 속에서)

유몽인의 야담집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글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던 시절 이이첨을 중심으로 권력을 휘두르던 당시의 세태를 노골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이이첨이 거느리던 노비들조차 주인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부리고, 과거 시험장에서 문장을 이해하지도 글을 읽지도 못하는 자가 당당하게 합격하면서 광창 부원군(이이첨) 덕에 이렇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세태, 실제 업무에는 관심도 없고, 재물 거두어들이는 일에만 매달리는 관리들이 광창 부원군이 있어 하늘이 무너져도 걱정 없다고 떠벌이는 세태를 보다 못한 유생 수백 명이 궁궐 앞에서 탄핵 상소를 수차 올렸다는 기록이 실록에 전한다.

해마다 토목공사가 이어져 쉴 새가 없고, 크고 작은 벼슬아치의 임명이 뇌물로 거래되고, 법도에도 없는 가혹한 세금이 줄을 잇던 시기였다. 그 중심에 이이첨이 있었다. 무소불위 권세는 영원토록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권력에서 밀려난 후 이이첨은 저자거리에서 참수되었다.

지나간 역사를 되살려 기억하는 이유는 현재를 돌아보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조선왕조에서 이름을 남긴 이들의 삶과 죽음을 돌아보는 건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내내 마음 한 자락에 체하듯 아픈 이가 있으니 곧 허균이다. 당대에 “천지간 괴물”이라고까지 질시 받았던 그는 분명 시대를 잘못 태어난,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였다. 찢겨서 죽어가던 육신처럼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던 그의 찢겨진 영혼이 수백 년을 넘어 아직도 바람처럼 이 땅 어느 산하에 외로이 떠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머리말 속에서>

저자가 느꼈던 허균에 대한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대와 불화하며 사는 이들의 아픔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윤용철 편저/말글빛냄/2008. 8/1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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