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엔 '선지자' 미네르바가 존재? 인터넷 통제가 누리꾼 '교주' 만들었다
[분석] '사이버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어떻게 신드롬 주인공이 됐나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세번째)이 3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항상 건강하세요. 성서에 예수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엔 미네르바가 있었음을 기억할게요."
"양의 탈을 쓴 봉사들이 저희 앞을 이끌고 있지만 선지자 같은 분이 방향을 제시해 주셔서 신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의 경제 논객 '미네르바'가 절필을 선언한 14일, 아고라 게시판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라는 그의 마지막 글은 12만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12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에 앞서 잠적을 시사한 13일 '이제 마음속에서 한국을 지운다'라는 글에는 22만여 건의 조회수에 댓글 3600여 개라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미네르바 신드롬'이라 할 만했다.
미네르바는 누리꾼들로부터 예언자, 선지자, 아고라의 현인, 경제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를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 인류의 구원자로 나오는 네오로 지목하는 누리꾼도 많다. '예언서'로 불리는 그의 글은 누리꾼들에 의해 책으로도 만들어졌다.
그는 단순히 사이버 논객을 뛰어넘어, 현실 사회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글 하나하나가 언론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의 절필 선언은 언론의 주요 뉴스로 취급됐다.
미네르바가 지난 10월 24일 "해외에서는 한국이 제2의 IMF를 맞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경고하자, 이 발언이 주가에 영향을 끼쳤고, 이튿날 기획재정부가 사실이 아니라는 공식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와 대화하고 싶다고도 밝혔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수사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도대체 그의 이러한 영향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리먼 파산 예언과 실현... '미네르바 신드롬'의 정점
▲ 9월 15일 다음 아고라 경제논객 아이디 '미네르바'의 말대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신호탄이 된 리만 브더러스의 파산이 실현됐다. ⓒ 연합뉴스
미네르바는 7월부터 당시 경제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물가 상승, 환율 폭등 등의 사전 경고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9월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의 신호탄이었던 리먼브러더스 도산 이후, 이 회사의 도산을 예견했던 그는 마침내 신드롬의 주인공이 됐다.
미네르바는 8월 25일 '2008년 금융 전쟁의 서곡 : 한국판 지옥의 묵시록1'이란 글에서 "(산업은행이 리먼을 인수하면) 환율 변동과 자금 동원에 따른 국내 시장의 융단 폭격은 지금 아무도 장담 못 한다"며 산은의 리먼 인수를 강하게 비판했다. 9월 10일엔 비판의 강도를 더욱 높이며 리먼의 도산을 예견했다.
"리먼 부도→미 증시 폭락→국책 모기지 구제 효과 상쇄→미 정부 재정 적자+미 금융권 파멸→미 정부의 리먼브러더스 추가 구제 금융→초장기 침체. 리먼은 장부 손실가격만 - 500억 달러 수준에 장부상 누락된 추가 손실액까지 합산이 -800억~870억 달러.
인수자금을 은행 팔아 치워서 충당한다 치지만 진짜 손실 액수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대주주 자격으로 일사천리 인수하면 밑 빠진 독에 달러 붓기다. 손실액 한국시장에서 조달→환율 시장 요동→물가 상승 압력. 너무 뻔하게 그림이 나오는구나."
그는 이어 "제발 사지 말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며 "제발 협상 취소하고 그 돈으로 국내 중소 기업 살리기나 투자해서 고용 보존이나 할 생각을 하라"라고 강조했다.
미네르바가 리먼 인수를 비판하던 8월 말~9월 초, 그처럼 반대의 목소리를 크게 낸 이는 많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경우, 오히려 8월 27일 데스크칼럼을 통해 리먼 인수를 '서울과 월스트리트를 직접 연결하는 금융고속도로'에 비유하며 리먼 인수를 적극 주장하기도 했다.
9월 15일 세계 4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는 미네르바의 말대로 파산하고 만다. 이때부터 미네르바는 언론도, 정책 당국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고, 그에 대한 누리꾼들의 믿음은 더욱 깊어졌다.
정부보다 정확한 분석력... 미네르바, '교주'로 등극
▲ 지난달 10월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전날보다 달러당 45.80원 폭등한 1,408.8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 연합뉴스
사실 '미네르바 신드롬'의 가장 큰 배경은 그의 분석력이다. 그는 각종 통계를 인용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 경제의 위기를 강조했다. 이러한 분석은 이후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정확했다.
그는 7월 27일 한국경제를 전망한 글에서 "현재는 PF(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과 제1, 2금융권의 연계 대출로 인해 동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권의 부실을 크게 우려했다. 이후 은행들의 3분기 실적 발표 결과, 은행 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미네르바의 정확한 분석이 빛을 발하는 건 이뿐만 아니다. '9월 위기설은 없다?'(9월 3일)라는 글을 살펴보자.
"9월이나 10월 중에 중견 하도급 순위 50위권 내에서 한두 군데의 부도 처리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짜 부도가 날 경우 전 금융권에서 동시에 여신 회수 조치에 들어갈 공산이 다분하다.
그 상황에서 안 그래도 오늘도 연기금 일부를 때려 박아서 간신히 증시 부양하고 있는 이 판국에 유동성 위기는 더욱 확산이 될 것이며 그로 인한 주가 동반 대폭락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어차피 연기금으로 주가 방어와 대량 펀드런을 막으려고 쏟아 들이부어 대겠지."
미네르바의 분석대로 11월 12일 시공능력평가 41위인 중견 건설업체 신성건설이 부도가 났다. 이에 앞서 정부는 '건설사 살리기'라는 비판에도 미분양 주택 매입 등의 10·21 부동산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은행은 여신 회수 조치에 들어갔고, 11월 10일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는 한국의 은행시스템 문제를 지적하며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저축은행의 모습. ⓒ 선대식
그는 9월 12일 "미 대선이 끝나면 이 정부는 올인을 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FTA로 돌파구를 뚫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한미FTA 조기 비준안을 강조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의해 현실이 됐다.
그도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바로 주가와 환율의 움직임이다. 그는 9월 18일 "주가가 1210~1235 수준의 박스 권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코스피지수는 그 후 1000포인트가 붕괴되고 말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금융 시장 상황이 미네르바의 예상보다 훨씬 나빠지자, 누리꾼들은 헛발질하는 정부의 무능력을 질타하며 미네르바의 목소리에 더욱 기대게 됐다. 특히, "현금을 확보하라"는 그의 말은 예상을 뛰어넘는 주가와 부동산 값 폭락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게 됐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 신드롬의 완성
미네르바에게 비판과 독설이 없었으면, '사이버 경제대통령'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비판은 이명박 대통령에 비판적인 누리꾼들을 열광시켰다. 그는 이미 누리꾼들의 '교주'가 된 지 오래다.
미네르바는 지난달 22일 "난 도저히 이명박 (대통령)을 이해할 수가 없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잔인하게 말해서 경제를 쥐뿔도 모른다. 특히 거시경제는 거의 깡통 수준이지. 언제까지 그 개뼉다귀 씹어 먹는 경제 대통령 소리만 쳐 할래. 이미 무능력이 모조리 다 들통난 지 오랜데…."
같은 달 24일 미네르바는 "이제 한국의 IMF는 거의 기정사실로 보인다"며 "지금 돌아가는 판세는 한국 대통령이나 강만수 장관이 설친다고 수습이 되는 단계는 (아니다.) 이미 정책적 통제력 상실 수준으로 외국 애들은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10월 27일 "경제 분야만 권한대행으로 대통령 직권 정지시키고 비상 임시 기구에서 경제 살려 내지 않으면 이 나라는 내일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보수신문에도 향했다. 그는 지난 9월 1일 "한국 경제 위기설은 과장됐다"는 조중동 등 보수신문의 보도 태도에 대해 "어떻게 이런 것들이 한국의 메이저 언론인가? 도저히 이해불가"며 "찌라시고 뭐고 평범한 사람들을 그딴 식으로 사지로 내몰지 말라"고 밝혔다.
미네르바 신드롬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의 불안과 공포 속에 싹을 틔웠다. 그러나 그 신드롬을 키운 것은 '수사설'을 내비치며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려는 수사당국의 움직임과 금융위기 속에서 말바꾸기로 일관한 경제부처의 갈짓자 행보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가 경제위기 불안과 공포의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해법을 내놓지 않는 한 미네르바 신드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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