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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두려워하는 걸까, 기대하는 걸까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9] 도보여행 8일(토르트쿨 -> 미스킨)

등록|2008.11.18 10:41 수정|2008.11.18 12:01

미스킨 가는 길쭉 뻗은 포장도로 ⓒ 김준희


아침 7시, 호텔의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어젯밤에는 정전이 돼서 촛불을 켜두고 있었는데,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군. 1층으로 내려가서 "물이 안 나온다"라고 말하니까, 1.5리터 페트병 2개에 물을 가득 담아서 가져다 주었다. 이걸로 씻으란 말인가.

처음에는 난감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니까 이것도 할 만하다. 그 물로 면도와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그래도 물이 남기에 발까지 씻었다. 정말 우즈베키스탄은 물이 흔하지 않은 나라다. 그러고 보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물이 풍부하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강수량이 많은 데다가 지하수도 많은 편이니까.

호텔을 나와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걷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말이 안 통하는데도 이들은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열심히 설명해준다. 지도를 보니까 작은 마을 미스킨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다.

잔뜩 흐린 날씨, 도로의 양옆으로는 황무지가 보인다. 어제는 목화밭과 해바라기밭을 보았는데 오늘은 황무지다. 그만큼 사막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해바라기씨를 좋아한다. 시장이나 거리에서 껍질을 안 벗긴 해바라기씨를 잔뜩 쌓아놓고 파는 모습을 종종 본다.

아이건 어른이건 앞니로 껍질을 벗겨서 해바라기씨를 먹는다. 식당에서는 해바라기씨를 안주 삼아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 곳에서는 식당바닥이 온통 해바라기씨 껍질 투성이다. 처음에 난 그 모습을 보면서 '저걸 무슨 맛으로 먹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껍질을 벗기는 과정 자체부터가 고역이었다. 호기심에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이들은 앞니로 톡 깨물어서 간단하게 껍질을 벗기는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쉽지가 않다. 그 다음부터는 해바라기씨만 보아도 고개를 젓게 된다.

걷다 보니까 배가 아파서 거리식당의 화장실에 들렀다. 역시 여기도 나무로 만들어놓은 재래식 화장실이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식당의 소년은 손을 씻으라면서 물을 한바가지 가져다 준다. 그것도 부족해서 걸어가면서 먹으라며 초콜릿과 과자를 한봉지 담아주었다. 고마운 사람들. 물론 이 식당에도 수도시설은 없다. 전기와 가스시설은 있는데 수도시설은 없다. 전기, 가스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물일텐데.

죽어가는 바다, 아랄해

미스킨 가는 길거리 식당의 화장실 ⓒ 김준희


미스킨마을의 입구 ⓒ 김준희


이건 아마도 관개사업의 영향 때문일거다. 아무다리야 강의 풍부한 수자원을 모두 목화밭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랄해는 망가졌고 지방의 일반인들은 마음껏 물을 사용하지 못한다. 대신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4위의 면화생산국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의 면화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이, 아랄해를 살리고 일반인들에게 상수도를 공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

아랄해를 되살릴 방법도 요원하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아랄해를 살리기 위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는데,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랄해를 되살리려면 결국 물을 공급해야 하고, 그러려면 아무다리야 강의 물줄기를 다시 예전대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강물을 목화밭으로 끌어들이면서 아랄해에 수돗물이나 생수를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려운 문제다. 아랄해도 살리고 아무다리야 강도 보존하고 일반인에게 수돗물도 공급하면서 목화밭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중해-카스피해-아랄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구상중이라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완성한다면 엄청난 규모의 운하가 될 것이다. 그런 운하를 만들면 아랄해는 살아나겠지만, 또 어떤 부작용과 환경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이것도 운하가 통과할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진도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도움 여부와는 관계 없이 우즈베키스탄은 아랄해 문제 때문에 앞으로도 꽤 골치 아플 것이다. 지금의 추세라면 2020년 경에 아랄해가 지도에서 사라진다는데, 그러고 나면 단순하게 지도가 바뀌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막으로 변한 아랄해에서 발생한 소금 먼지 때문에 주변은 계속 오염되고, 기온도 극심하게 변한단다. 아랄해는 우즈베키스탄의 문제이지만, 우즈베키스탄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내가 이 지역전문가는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한번 가정해본다. 목화산업은 어찌 보면 전형적인 후진국형 산업이다. 넓은 농경지와 수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생산량 세계 4위인만큼 이 산업으로 벌어들이는 외화도 꽤 될 것이다. 그 외화를 기술집약적인 다른 산업에 투자하고, 그 산업이 발전할수록 목화밭을 점점 줄여가면 어떨까.

그러면 그동안 목화밭으로 유입되던 아무다리야 강의 물줄기도 조금씩 원상복귀시킬 수 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아랄해도 천천히 수량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광활한 목화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우즈베키스탄은 언제까지 목화산업을 붙잡고 있을 것인가?

사막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미스킨의 식당에서양고기와 빵으로 식사를 했다. ⓒ 김준희


작은 마을 미스킨커다란 식당한쪽의 방에서 잠을 잤다 ⓒ 김준희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걷자 미스킨에 도착했다. 날은 여전히 흐리다. 마을의 식당에서 양고기와 빵으로 식사를 하고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이 마을에서 하룻밤 잘 만한 곳이 있을까요?"
"여기에는 없고, 저쪽으로 3킬로미터 더 가면 호텔이 있어요."

이 황량한 곳에 호텔?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다리의 통증도 잊은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하고 보니까 이들이 호텔이라고 말한 곳은 커다란 식당이다. 식당 한쪽 건물에 방을 여러 개 만들어두고 장거리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숙소로 제공하는 모양이다. 식당 주인은 나한테 방 하나를 내주었다.

짐을 풀고 쉬려니까 여러 사람들이 차례대로 내 방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문을 열기 전에 결코 노크하는 법이 없다. 그냥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한테 러시아어로 떠든다. 러시아어 모른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이렇게 외딴 곳에 외국인이 혼자 나타났으니 당연히 흥미로운 대상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트럭 운전사들로 타슈켄트에서 누쿠스 또는 우르겐치까지 가는 사람들이다. 워낙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하루만에 가지 못하고 이런 식당에서 하루이틀 쉬어간다. 어떤 사람은 나한테 보드카를 권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자기한테 선물로 달라고 한다.

여행 중에 카메라는 제 1순위의 귀중품인데 이걸 선물로 달라니? 나는 웃으면서 손을 젓고는 맥주 한 병을 사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내 눈앞에는 막막한 사막이 펼쳐져 있다. 키질쿰 사막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사하라나 타클라마칸 사막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 못지 않게 거친 사막이다.

내일부터는 저 사막의 길을 걸어야 한다. 나는 저 사막을 두려워하는 걸까 아니면 기대하고 있는 걸까. 이번 여행을 구상하게 된 계기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키질쿰 사막이다. 왜 내가 그렇게도 사막에 끌렸는지 모르겠다. 아무 생명체도 없는 사막,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래 벌판뿐이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소리밖에 없는 사막, 그 한가운데에 서면 내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 도보여행을 시작하고 8일만에 사막 앞에 섰다. 사막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내 가슴은 이상하게 요동친다.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오래 전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 <로도스 전기>가 떠오른다. 그 소설에서는 결전을 앞둔 전사들이 '전쟁의 신'에게 강철같은 의지와 불꽃같은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있다.

사막을 앞에 둔 내 심정도 그렇다. 이 세상에 '여행의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도 그 앞에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걸어서 사막을 통과할 수 있도록 나에게도 강철같은 의지와 불꽃같은 용기가 주어지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행운이 나와 함께 할 수 있기를.

작은 마을 미스킨키질쿰 사막이 보인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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