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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전과 칼국수의 명소 '大井칼국수'

일제 때 조성된 도로와 적산가옥 둘러보기는 또 다른 별미

등록|2008.11.19 09:21 수정|2008.11.19 09:21
첫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을 나흘 앞두고 전국이 영하권으로 떨어지겠다는 기상청 예보에 이어 한라산에 서설(瑞雪)이 내리고 서해안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걸 보면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양입니다.  

해서 오늘은 객지에 있을 때도 고향을 방문하면 꼭 들르던 단골집 ‘大井칼국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멸치와 바지락조개를 우려낸 개운한 칼국수 국물과 녹두빈대떡의 고소한 맛을 잊지 못해 20년째 단골로 다니거든요.

▲ 군산시 월명동 외환은행 뒷길에서 22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大井칼국수’ ⓒ 조종안


왜놈들의 수탈 흔적인 적산가옥이 남아 있는 군산시 월명동에 위치한 ‘大井칼국수’는 칼국수와 녹두빈대떡 맛도 좋지만, 인심 좋고 알뜰한 옆집 아주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현준녀 사장(57)의 개방된 의식과 예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발길을 더욱 끌게 합니다. 

경제력이 없는 소설가 사위를 보면 대작을 완성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고 싶다고 할 정도로 책과 문학을 좋아하는 현 사장은 손님들과의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데 상대방 말을 경청하며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이 단골손님을 더 많이 확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설을 쓰는 아내가 글 쓰는 후배들과 다녀와서 녹두빈대떡을 맛있게 먹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부산으로 이사하고 나서도 몇 차례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해서 며칠 전에는 아내와 장을 보러 시내에 나갔다가 배도 고프고 얼큰한 칼국수 국물이 생각나 ‘大井칼국수’에 들렀습니다.

▲ 항상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미소를 잃지 않는 ‘大井칼국수’ 현준녀 사장(왼쪽) ⓒ 조종안


▲ 싱싱한 겉절이와 잘 익은 무김치가 개운한 맛을 돋워주는 바지락칼국수 ⓒ 조종안


도로가 바둑판처럼 조성되어 갈 때마다 헷갈리는데다 날까지 어두워 어렵게 찾아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알뜰하고 후덕한 큰며느리 같은 현 사장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이했습니다. 느린 말씨의 현 사장이 자리로 안내하며 그동안 어디에 계셨느냐고 묻기에 부산에 살다 7년 만에 고향에 왔다고 하니까 잊지 않고 찾아주셨다며 고마워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녹두빈대떡 1인분과 칼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안부를 묻고 답하는 중에 빨간 <오마이뉴스> 명함을 건넸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현 사장은 작은 것도 허투루 보이지 않겠다며 무능한 현 정부의 무능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질타하는 정치 기사를 주로 보는데 눈팅만 한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마음을 열고 허물없이 지내는 지인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사방을 둘러보니 깔끔하고 예술적인 분위기는 옛날과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다만, 시화, 사진, 수채화, 서예 등 벽에 걸려 있는 작품 몇 개가 바뀐 것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특히 쓰라린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흑백사진 한 점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지인에게 선물 받아 벽에 걸어놓고 손님들과 함께 감상한다는 사진은 왜놈들이 호남의 쌀을 수탈해가던 일제강점기 군산항 부둣가 사진(1937년 촬영)이었습니다.

▲ 수채화가 담긴 액자로 공간을 적절하게 처리한 벽(上). 아내가 반대편 벽에 걸린 흑백사진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습니다.(下) ⓒ 조종안


아내는 선명하게 찍힌 일제강점기 시절의 군산항 부둣가 풍경이 신기하게 보였는지 녹두빈대떡이 나올 때까지 대형 액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귀한 사진을 어떻게 구했느냐는 질문에 현 사장은 단골손님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어서 애착이 가고 역사의 현장이 담겨 있어 더욱 소중하게 보관한다고 하더라고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가게에 진열해놓은 현 사장은 예술가들과 교류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작품이 많이 전시돼 있는데요. 단골손님이 공모전에 입상하거나 문학상을 받으면 술과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가게로 초대해 축하해줄 정도로 예술에 관심이 많고 조회도 깊습니다.

현 사장은 22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가게 건물에 세를 얻어 ‘大井칼국수’를 개업했는데 하루걸러 오는 손님은 말할 것도 없고, 몇 년이 지났어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이 있어 가게도 사고 아파트도 사고 분점도 내게 되었다며 사업 성공 비결을 손님에게 돌렸습니다.    

마침 친구와 함께 온 남자손님이 칼국수 국물이 시원하다며 그릇을 비우더니 현 사장에게 바지락을 사고 싶은데 몰라서 그러니 알려달라고 하니까 바지락은 조금과 사리 때 잡는 게 맛이 다르다며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검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와 건네주더라고요. 형님댁을 방문한 동생에게 맘씨 좋은 형수가 퍼주는 것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 현 사장이 손님에게 주려고 비닐봉지에 담아온 바지락 ⓒ 조종안


듬직한 체구에 느린 말씨와 큰 눈을 깜짝거리는 현 사장을 보면 ‘정중동(靜中動)’이 생각납니다. 둔하게 보이면서도 동작의 절제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 자기를 낮추면서 남모르게 불우이웃을 돕는 걸 보면 가장 작은 것으로 가장 큰 것을 얻는 지혜로운 여사장이 떠오릅니다.    

현 사장은 3년 전 군산시 신청사가 있는 조촌동에 분점을 냈는데요. 하나 있는 딸이 가업을 잇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초보라서 모든 재료를 현 사장이 준비해서 보내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다른 음식점들은 문을 닫거나 이사를 했는데 다행히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며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고마워했습니다. 

소주 안주로는 그만인 고소한 녹두 빈대떡에 칼국수 국물이 칼칼하고 개운해서 애주가들이 많이 찾는 ‘大井칼국수’는 왜놈들이 많이 살았던 월명동(외환은행 군산지점 뒷길)에서 22년째 영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大井칼국수’에서 나오면 걸어서 5분 거리에 일제잔재 상징인 ‘히로쓰 가옥’이 있고 적산가옥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바둑판 모양의 도로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적은 돈으로 먹을거리와 볼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이루어지는 현 사장과의 대화는 또 다른 맛과 즐거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녹두빈대떡과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나오는데, “낯모르는 손님이 와서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왔다고 하면 칼국수 한 그릇은 서비스로 내놓을게요”라고 말하는 현 사장의 재치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 1937년 군산항 부둣가 풍경. 창고의 쌀을 기선에 선적하는 노동자들과 갓을 쓴 한복두루마기 차림의 노인들이 이채롭습니다. 미국에서 잉여농산물이 들어오던 1960년대 말까지도 사진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뜬다리로 불리는 부잔교만 남아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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