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내던진 투쟁... 결코 남 일이 아니다
[주장] 현대미포조선 '투신 노동자' 쾌유를 바라는 촛불 집회에 다녀와서
▲ 현대미포조선 이홍우 조합원의 쾌유를 바라는 촛불집회 ⓒ 박미경
칼바람이 불던 19일 오후 6시경, 현대미포조선 앞에서는 울산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들이 모여 현장탄압 중단과 이홍우 조합원의 쾌유를 바라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현대미포조선 이홍우 조합원은 지난 14일 오전 7시경 사측의 현장 감시와 탄압에 분노해 4층 건물에서 목에 줄을 감고 투신해 목뼈 골절과 폐 손상으로 현재 울산대병원에 입원중이다.
이 날 집회에서 이영도 민주노총 직무대행은 “회사의 탄압과 감시가 없었고, 민주노조운동이 활성화되었다면 이처럼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또 “현장조직이었던 김순진 조합원에게 1개월 정직 탄압과 사고 당일 회사가 강제진압하지 않았더라면 여기 집회현장에 있지 않을 것”이라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안타까워했다.
또 “이홍우 조합원이 투신하면서 여러 동지들에게 남겼던 소중한 뜻을 생각하며, 마음 한 구석에 숨어있는 순수한 양심이 명령하는 대로 당당하게 새로운 싸움을 하자”며 비장한 각오로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현대미포조선 현장 활동 조직인 <현장의 소리> 한 조합원은 사측의 현장 통제와 탄압 사례 등을 발표했다.
조합원은 “회사는 감시와 시간체크, 그리고 툭하면 사규위반서를 남발했다”며 “13일, 김순진 조합원에게 정직 1개월이 확정되자 이홍우 조합원이 투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또 18일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마친 이홍우 조합원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도 전했다. 그는 “이홍우 조합원이 의식은 또렷하지만 손으로 글을 적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며 “체력이 회복되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홍우 조합원은 21일 2차 수술을 할 예정이다.
▲ 버스정류장에 붙은 현대미포조선의 광고벽보 `행복한 가정, 안정된 작장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란 광고 문구처럼 정말 노동자를 위하는 기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노동자의 눈에 현대미포조선은 겉과 속이 다른 가면을 쓴 기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박미경
집회도중 이홍우 조합원이 투신 직전 유언을 녹음한 내용이 흘러나오자 집회분위기는 또다시 숙연해졌다.
"여보 미안하다. 내가 이 길을 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그런데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회사의 탄압이 너무 심하고 이 길을 헤쳐 나가기 너무 힘들다. 내가 다쳐서 힘들 때 회사는 나를 억압과 탄압으로 여기까지 왔다.
회사에 쓴 소리 한다고 억압하고 탄압할 수 있는 건 사람목숨의 목을 조르는 거와 같다. 아파도 치료를 제대로 못 받고 징계와 억압, 탄압을 받는 이런 현실을, 모든 걸 다 내가 짊어지고 갈게. 앞으로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고 이런 일이 절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동지들 정말 사랑합니다.
현장에서 일을 해도 이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왜 감시를 합니까. 사람을 왜 감시를 해요! 다치면 다쳤다고 욕하고 억압하고 탄압하고 그게 현실입니다. 아니 중식시간에 선전전하는 게 그 게 그리 잘못된 겁니까? 그 걸로 인해 가지고 사람을 탄압하고···. (투신 직전 현장에서 사측 관리자들과 나눈 대화 중 일부)
용인기업 동지들 힘내시고요, 빨리 복직하기를 여기서 기원합니다."
▲ 현대미포조선 <현장의 소리> 김순진 의장이 회사의 노동탄압에 분노하고 있다. ⓒ 박미경
이어 김 의장은 “중식시간에 피켓,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고, 용인기업 해고노동자 복직 승소했으니 복직판결 이행하라는 시위가 무슨 죄냐”며 “노동자에게 원칙을 지키라는 사측이 오히려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며 회사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김 의장은 또 “미포 현장은 정말 참담하다”며 “이 상황을 나의 문제로 가슴에 안고 미포에 민주노조가 바로 서고, 병원에 누워있는 이홍우 조합원이 건강하게 회사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동지들이 바꿔 달라”고 덧붙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현대미포조선 현장탄압, 노동탄압, 산재은폐를 규탄하고 용인기업 원직 복직, 노조 민주화,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 8년 5개월간 복직을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였던 '현장노동자 투쟁위원회' 김석진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 박미경
김석진 의장은 "중식시간에 조합원들 설득하며 김순진 동지의 중징계철회를 요구하지만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회사의 눈치만 본다"며 안타까운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또 "자본주의 사회는 현장이 나쁠 수밖에 없다"며 "비정규직과 민주노조 문제를 각 현장에서 널리 알려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홍우 조합원의 요구가 끝까지 관철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울산인권운동연대 최민식 대표는 인권이 무시되는 현 정권을 비판했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이 단 몇 달 사이 이명박정권 아래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말문을 연 뒤 “그들을 비판하는 모든 글은 악플이 되어 사이버 모욕죄가 될 수 있다”며 비판도 못하게 만드는 잘못된 정책을 지적했다.
또 “이렇게 어려운 현실이기에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며 “저항의 힘은 연대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항하지 않으면 저들에 의해 노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사무국장은 “지난 9월 초 이홍우 조합원이 사무실에 몇 번 찾아와 회사측의 행태에 분노하며 울분을 토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홍우 조합원이 업무를 마치고 샤워장 가다가 미끄러져 어깨를 다쳐 사내 부속의원에서 한 달 보름동안 치료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현 사무국장은 또 “회사에서 다치고 치료까지 받았는데도 근로복지공단은 이 조합원이 회사에서 다친 후 통증을 호소하지 않고 두 달 후 외래치료를 받았다는 사측의견을 고스란히 수용해 산재불승인을 내렸다”고 밝힌 뒤 “산재인정이 되고 제대로 치료만 받았어도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회사는 억압과 탄압으로 일관했다”고 절규했다.
집회가 끝나고 천막농성을 위해 천막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경찰병력의 방해로 천막을 뜯겨 결국 노숙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차디찬 바닥보다 더 시린건 노동자의 힘겨운 삶이다 ⓒ 박미경
같은 노동자의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 길바닥에 얇디얇은 천막을 설치하려던 지역의 노동자들. 그러나 경찰병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뜯겨버렸다. 이것이 이 땅 노동자들의 척박한 현실이다. 회사에서 다쳐도 산재인정은커녕, 탄압만 받다 결국엔 목숨을 건 투신을 하고, 국가는 노동자들의 연대를 철저히 가로막는다.
국가는 정당한 파업마저도 무조건 불법파업으로 몰아세우고 이에 덩달아 장단을 맞추는 부자 언론도 노동자의 투쟁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게거품을 문다. 이런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설 곳은 어디일까. 막말로 ‘쌔빠지게’ 일하고도 천대받고 멸시받는 노동자들의 가슴엔 칼바람보다 더 매서운 한이 서리게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결코 남 일이 아니다. 내가, 아니 내 자식이 당할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자의 투쟁에 힘을 모으고자 손발이 시려도 참고 퇴근 후, 혹은 멀리서 달려와 차디찬 바닥에 앉아 집회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힘든 싸움에서도 동지들의 따뜻한 정이 있기에 국가와 자본의 탄압에 꽁꽁 얼어붙은 가슴을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게 된다. 부자정권에서 끝없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이 땅의 서민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생각하면 오늘도 가슴 한 켠이 시리다.
▲ 노동자들의 천막 설치를 방해하려고 몰려든 경찰과 대치 중이다. ⓒ 박미경
덧붙이는 글
울산인권운동연대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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