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보수' 박태준, '민족작가' 조정래를 축하하다
[현장] 전남 보성 벌교에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하던 날
▲ 21일 개관한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의 외벽 모습. ⓒ 이주빈
▲ 부산공연까지 취소하고 온 소리꾼 장사익씨가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 이주빈
▲ 태백산맥 문학관 1층엔 작가의 육필원고가 쌓여 있다. 자신의 원고 앞에 선 조정래 작가. ⓒ 이주빈
1개 작품만으로 구성된 단일문학관으론 국내 최대 규모인 태백산맥 문학관은 모두 세 개 마당으로 전시가 구성됐다. 전시물품은 작가의 육필원고 및 증여품 등 총 144건 623점에 이른다. 특히 1층에는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 육필 원고 1만6500장이 작가의 고행의 두께처럼 높게 쌓여 진열돼 있어 관람객들을 숙연케 하고 있다.
그동안 약 700만부가 판매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소설 <태백산맥>은 2008년 현재까지도 연간 약 10만 부가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한국 최고의 대하소설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날 개관식에는 문학관 외벽에 길이 81m, 높이 8m에 이르는 자연석 벽화 '백두대간의 염원'을 제작한 이종상 화백과 문단 후배, 지역주민 등 약1천명이 참석해 축하를 했다.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문학관을 개관한 정종해 보성군수는 "문학기행 1번지 전남 보성에 20세기 한국 문학의 불후의 명작인 소설 태백산맥 문학관을 개관하게 기쁘다"면서 "문학관이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아우르고 분단의 아픔을 끝내는 통일문학관이 되었으면 한다"고 축원했다. 정 군수의 바람처럼 태백산맥 문학관은 통일을 염원한다는 뜻으로 북향으로 지어졌다.
조 작가는 개관 인사말에서 "으스스하게 추운 날씨를 전라도 말로는 '새코롬하게 춥다'고 한다"면서 바람 차갑게 부는 날 개관을 축하해주러 온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는 "태백산맥을 쓰는 동안 여러 가지를 일에 휘말렸는데 그때마다 집사람(시인 김초혜)은 '인간사 영욕은 반반이다'는 말을 되풀이했다"며 그동안 위로에 고마움을 고백했다.
이날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식엔 원조보수 인사인 박태준 전 총리가 참석, 축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박 전 총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중절모를 쓰고 조 작가와 함께 문학관 곳곳을 둘러보았다.
박태준 전 총리, 이적성 무혐의 결정 통지서 앞 "이건 똑똑히 봐둬야 돼"
▲ 박태준 전 총리가 조정래 작가와 정종해 군수와 나란히 앉아 문학관 외벽에 설치된 이종상 화백의 초대형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 이주빈
박 전 총리는 "60년 전 벌교는 혼란과 비극의 땅이었다"면서 "그때 순박한 벌교사람들은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고 해방과 분단 전후의 아픈 시대를 회고했다. 박 전 총리는 "바로 그런 벌교에서 소설 태백산맥은 태어나 과거의 고통을 현재와 미래의 교훈으로 깨닫게 하는 기념관으로 탄생했다"며 "(조 작가와) 오래 친교를 해온 이로서 기쁘다"고 축하했다.
그는 또 "세월은 무엇이고, 역사는 무엇이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해방 이후 혹독한 공간을 헤쳐 온 저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면서 "태백산맥 문학관이 사색의 공간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박 전 총리는 개관식이 끝난 후 조 작가의 소개를 받으며 문학관을 둘러보았다. 특히 박 전 총리는 조 작가가 94년부터 일부 극우보수 인사들과 군 출신 인사들로부터 소설 <태백산맥>이 이적성 시비를 받아 고발당했다가 11년 만에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실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조 작가가 "94년 저를 고발했던 인사들"이라며 극우보수 인사들이 작성한 120쪽 짜리 고발장의 첫 쪽을 보여주자 한문으로 된 고발자들의 이름과 고향 등을 거론하며 "다 아는 사람들이야"라고 하며 고개를 절래 저었다.
박 전 총리는 태백산맥 문학관의 마지막 전시품으로 진열된, 2005년 검찰이 조 작가에게 보낸 '소설 태백산맥 이적성 무혐의 결정 통지서' 앞에서 "이건 똑똑히 봐둬야 돼" 하며 품 안에 있던 돋보기를 꺼내 "찬양·고무…" 등 혐의사항을 읽으며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기도 했다.
그는 검찰이 조 작가에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는 통지문을 한참 바라보며 "이렇게 간단한 '증거 불충분' 말 한마디 얻어내려고 11년 동안 이렇게(살해 협박받고, 그 충격과 위협으로부터 유서를 두 통이나 쓰는 등 - 기자 주) 세상을 산 억울한 사람들이 더러 있어, 더러 있어" 하고선 "국민들은 다 알아"하며 조 작가를 위로했다.
한편 조 작가는 박 전 총리에 대해서 "극우 인사들이 나에 대해 모함할 때 박 전 총리가 '그 사람은 민족주의자야, 그것도 투철한 민족주의자야'하며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조 작가는 또 "나 고발한 사람들 모두 저분 후배들인데 나와 저분과 관계가 있으니 그 사람들이 주저하기도 했을 것"이라면서 "아무 말씀도 않으셨지만 (나와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로 쓰지 않은 신원보증인"이라고 각별한 정을 나타냈다.
▲ 박태준 전 총리가 조정래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문학관을 둘러보고 있다. ⓒ 이주빈
한편 보성군은 태백산맥 문학관이 개관하면서 많은 외지인들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벌교읍에 산재해있는 소설의 무대를 탐방코스로 정비할 계획이다. 벌교읍엔 하대치의 아버지 하판석 영감이 등이 휘도록 돌덩이를 져 날라 쌓았다는 중도(中島)방죽, 포구를 이어주는 소화다리와 야학이 열렸던 회정리 돌담교회 등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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