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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값은 통일 된 뒤 듬뿍 주세요

대한해협을 건너 온 <종소리> 36호

등록|2008.11.24 13:48 수정|2008.11.24 13:48
재일본 문학가 여러분에게

▲ 종소리 겉 그림 ⓒ 재일 <종소리> 시인회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라는데
평양 대동강 강가에서 사진 한 컷 찍고
도쿄 우에노 공원 나무의자에서
잠깐 얘기 나눈 인연으로
이 겨울 문턱에 멀리 도쿄에서
시지 <종소리> 36호를 보내주셨네요.

반갑게 시지를 펼치자
구구절절 고향을 그리는
망향(望鄕)의 아픔과
이국에서 보내는 분단 겨레의
한스러운 사연들이 가득 하네요.

고국에 사는 동포들에게도
한 곡조 사설이라도 들려주고자
강원도 산골 골짜기까지  
보내셨군요.

열여섯 편
다 실을 수는 없고 죄송하게도
두 편만 옮겨 싣습니다.

2005. 7. 24.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만난 오향숙 선생과 공지영 작가 사진을 찍은 뒤
오 선생에게는 전할 길이 없어
여태 제 노트북에서 잠자고 있었는데
마침 이번 기회에 전합니다.

사진 값은 조국이 통일 된 뒤
휴전선 평화지대에서 만나는 날 듬뿍 주세요.

아무쪼록 피차 건강하게
살아서 우리 생전에
휴전선 철조망이 걷힌 그 자리에서
만나 한바탕 두둥실 춤을 춥시다.

재일본 문학가 여러분,
부디 부디 그리고 또 부디
이국에서 안녕히 계십시오.

고국에서 박도 올림


우리 학교 운동회 날

                  정화수

가을이 성큼
들어선 오늘은
우리 학교 운동회 날

오랜만에
손자손녀들도 볼 수 있지만
많은 반가운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날

새로 지은
4층 건물 보이기 전에
우렁찬 확성기소리
먼저 마중해 주네

어서 가보자
자택을 지을 돈
학교 건설에 몽땅 바친
내 친구 교육회장
먼저 손잡고 싶네.

………………
………………


▲ 재일 오향숙 시인(왼쪽)과 공지영 작가의 만남, 두 사람의 만남은 공지영 작가가 강경애 작가 문학비에 후원금을 보낸 답례로 뜻밖에 평양 남북작가대회에서 이루어졌다. ⓒ 박도



꽃샘바람

            오향숙

 
지독스레 추웠던 겨울이었다.

강바람이 으르렁대며 천지를 뒤집고
다닥다닥 붙어사는 동네를 흔들어놓았다
하늬바람이 살을 에고
사람들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래도 계절은 어기지 않는 법
추운 겨울을 밀어내고
꽁꽁 얼었던 땅이 서서히 녹는다.
이제야 숨을 쉬는 듯, 기를 펴는 듯
엷은 봄빛 속에 실실 입김을 뿜는다.

좋구나
해토 무렵 이때가 너무 좋다
땅속에 숨어있던 봄기운이
파아란 움을 틔우고
내 볼을 다정히 쓰다듬어준다.

좋구나
몸도 마음도 녹여주는 새봄이 좋다
맵짠 바람보다 훈훈한 바람이 좋고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
동포들과 봄나들이 가는 건 더더욱 좋다

하지만 완연한 봄은 저 멀리 있다
기다리는 우리 봄은 아직 멀었구나
아직도 악을 쓰는 몹쓸 놈의 꽃샘바람
언제면 그 질투 그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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