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안숙선 명창이 딸에게 주는 충고 "엄마 노릇 하지마라"

[인터뷰] 안숙선씨와 고명딸 최영훈씨, 모녀의 정을 말한다

등록|2008.11.24 16:47 수정|2008.11.25 11:16
고수의 길은 멀고 험하다. 피나는 훈련과 자기계발, 엄하고 가혹할 정도의 자기관리는 필수다. 국악계의 프리마돈나로 불리는 안숙선 명창은 국립창극단 기악부에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자신의 고명딸인 최영훈씨에게 어쩌면 다소 비정하게 들릴 지도 모를 '명인이 될려면 엄마 노릇을 하지마라'는 일침을 따끔하게 놓는다.

"우리음악이 단순한 음악세계가 아니거든요. 영훈이가 젊고 힘은 있어 거문고 가락을 막 타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깊이가 모자라요. 제 딸이 결혼해서 딸이 2명 있어요. 저에게는 손녀가 되죠. 저는 ‘아기와 많이 떨어져라. 엄마 노릇을 하지마라. 엄마 노릇을 많이 하지 말고 음악을 확실하게 해 놓고 그 다음에 시간 내서 엄마 노릇을 해라’고 말을 많이 해요."

▲ 안숙선 명창과 고명딸인 최영훈 국립창극단 거문고 연주자. 김해문화의전당 개관3주년 기념공연을 위해 내려 온 두 사람을 23일 오후 4시 30분경 전당 분장실에서 만나 20여분간 인터뷰를 했다. ⓒ 조우성

안숙선 명창은 슬하에 2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한국인이면 우리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식들에게 국악공부를 시켰지만 딸인 최영훈씨만 거문고 산조를 하며 어머니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국악인의 길이 그리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길이 아님을 그녀는 체험으로 알고 있기에 23일 김해문화의전당 개관 3주년 기념으로 열리는 ‘명창 안숙선의 소리여행’ 공연을 위해 함께 김해로 내려온 딸에게 따뜻한 속마음보다 엄한 채찍같은 말을 먼저 휘두른다.

"본인에게는 상당히 안좋게 들릴 지 모르지만 그럴 정도로 자기 음악에 매달리지 않고서는 명인이 될 수 없어요. 아기와 만나는 시간은 금방금방 흘러가버려요. 그런데 음악을 하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거든요. 이 싸움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해야되요. 왜냐하면 제가 경험으로 봐서는 ‘에미 젓 빨 때 너무 귀여워서 떨어지지 못하면 몇 시간이 금방 흘러가 버려요. 근데 혼자 연습을 7~8시간 할려면 그것은 엄청난 시간이잖아요. 그러니까 먼저 자기가 못다한 바를 먼저 실천하고 그 다음에 엄마노릇을 해야돼요."

아기들이 한참 이쁠 때고 그래서 아직 아기와 못 떨어지는 딸의 모습, 엄마로서 아기에게 다 해줄 수 없어 갈등 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는 안숙선 명창. 그래도 예인의 길, 정상의 길은 어렵고 힘들기에 그걸 자꾸 강조하게 된다. 분장실에서 가만히 듣고 있든 최영훈씨는 ‘엄마 노릇을 하지마라’는 어머니의 말이 혹시 오해될 수 있을까봐 슬며시 이런 경험담을 꺼내든다.

"저번에 공연을 시작할려고 무대 앞쪽에 가 있었어요. 아이들은 못 들어오는 공연이었어요.  관객들과 팬스만 쳐놓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엄마'라는 아기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제 아기목소리 같아 뒤를 딱 돌아보니 엄마가 아기를 안고 계셨어요. 공연 끝날 때까지 그러고 계셨는데, 몇 번이나 그런 적이 있어요. 아기가 나중에는 공연중에 나온 노래를 따라 부르더라고요. 그걸 또 어머니는 흐뭇하게 쳐다보세요."

▲ 한복을 입은 모습이 곱고 단아하다. ⓒ 조우성

딸인 최영훈씨가 3~4살, 딱 지금의 손녀만 할 적이다. 공연이 있는데 어린 딸이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을려고 무지 떼를 썼단다. 할 수 없이 안숙선씨는 어린 딸을 보듬고 공연장에 가게 되었다.

"제가 선배한테 무대뒤에다 의자를 놓고 '딸을 여기 앉혀 놓을테니까 제가 나갔다 올 동안 꽉 잡고 있어주세요' 그랬어요. 그랬더니 '염려말고 나갔다 오라'고 그랬는데 아마 그 양반이 나갈 차례가 되니까 아기는 둬 버리고 나가셨나봐요. 그래 한참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기가 '엄마~'하고 무대로 뛰어나와버렸어요."

재미난 추억담에 딸도 본인도 하^*^하 자연스레 웃음이 터져 나온다. 분장실에 웃음꽃이 한아름 가득하다. '기억나세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따님은 수줍은 듯 '아뇨~'라고 답한다.

"아이가 갑자기 '엄마'하고 뛰어나왔으니 관객들은 웃고 난리났죠. 저는 그때 여러 선배님들과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고. 그래가지고 제가 그때를 생각하면서 '엄마가 뭘하는지 좀 봐라'고 손녀딸을 데리고 갔어요. 엄마도 아기가 와 있는 것을 알고 나면 훨씬 마음이 좋을 것 아니에요. 그런 에피소드가 있어요.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딸을 데리고 공연장에 갔지만 평소에는 늘상 떼어 놓고 돌아다녔거든요. 떼어 놓고 돌아다니지 않으면 음악을 할 수 없었어요. 자꾸 이걸 강조하면 악한 엄마가 되버리는데... 하하."

안숙선씨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다. 딸에게 가야금이 아니라 거문고를 연주하게 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가야금은 제가 했으니까... 술대로 밀어서 연주하는 거문고라는 악기가 세계적으로 나가보면 한국에만 있는 악기에요. 그 가지고 있는 성음들이 다른 악기에 비해서 무겁고, 깊이가 있고, 웅장하고, 장엄한 것을 표현 하거든요. 남성적이죠. 선비의 정신과 기개, 아무리 슬퍼도 울지 않는 그런 음들이 다 담겨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안하는 것을 딸이 하기를 바라는 거죠. 요즘 관현악에서도 거문고가 밀려나고 있고. 잊혀지는 것이 안타까우니까 '너라도 거문고 해라' 그런 셈이죠. 저는 혈액형이 A형이라 그런지 상당히 예민하고 여리지만, 딸은 O형이라 활달하고 서글서글해요. 성격도 거문고를 하기에 적당해요."

최영훈씨가 집에서 거문고를 타며 연습에 집중하고 있으면 안숙선씨는 옆에서 안 듣는 척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음이나 가락에 잘못되거나 틀린 것이 들리면 바로 지적을 하고 고치게 만든다. 

"항상 옆에 오셔서 '음이 이상하다', '이렇게 해봐라', '거기는 강약을 바꿔봐라' 이렇게 지적해주세요. 원래 산조나 이런 가락들이 구음에서부터 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는 판소리조의 그런 느낌을 주세요. 그러면 단조롭게 느껴지던 가락이 살아 움직이는 음악적 리듬을 갖게 되요. 감정이 실리게 되죠. 장단도 잡아주고 리듬감도 살려주시고. 선생님께 배우는 가락과는 약간 느낌이 다른 그런 음악적 느낌을 채워 주시는 것 같아요."

▲ 국립창극단 기악부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최영훈씨. 젊은 국악인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 조우성

안숙선(安淑善), 그녀를 가리키는 타이틀은 수 없이 많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전주
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

어머니의 유명세로 인해 같은 국악인으로서 최영훈씨가 느끼는 심리적 부담도 크다.

"뒤에서 쑥떡쑥떡 거려요. 쟤가 누구 딸이라고. 저를 저로 안봐줘요. 그럴 때도 딱히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아, 그래. 그렇게 본다면 내가 연습을 더 많이 해서, 내가 정말 잘해버리면 그런 말들을 안하겠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거문고잽이로서 판소리 하는 안숙선 명창을 꺾기는 참 힘들 것 같다라는 그런 생각도 해요. 하하~ 근데 제가 잘하면 어머니에게 누가 되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해요. 이제 나이도 차가는데 엄마한테만 붙어가지고 엄마 밑에서 밥먹고 살아야 되겠나, 그렇게 말아야지 그런 생각이에요."

가만히 딸의 말을 듣고 있던 안숙선 명창이 한마디 응수한다.

"이제 오기가 생기는 모양이네. 하하. 그런 오기를 가져야제."

말은 이렇게 해도 속으로는 힘든 국악의 길로 들어 선 딸의 앞날에 대해 안숙선씨는 걱정이 많다. 우리음악이 우리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음악에서 멀리 달아나 있는 지금의 상황, 자주 듣는 서양음악의 리듬이 국악리듬과는 너무 달라 우리음악을 난해하고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의 정서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잘 할 수 있을지.

"전통음악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 생각, 이상, 철학을 담아서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에 어느 땐가는 우리음악으로 돌아가야 겠죠. 나이가 들어가면 우리음악이 좋아진다고 하잖아요. 고향을 찾듯이. 그러나 그 기다리는 동안 젊은이들이 그걸 이겨내고 하겠는가. 제 딸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야 되고, 본인도 오랜 기간 깊이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공부도, 득음도 해야되고. 이런 것들이, 걱정이 크죠. 쉬운 걸 시킬 걸."

▲ 김차경, 유수정, 정미정씨와 함께 공연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 조우성


안숙선 명창의 딸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현재 국악계가 당면한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음악계를 바라 보는 그녀의 고심과 시름도 더 크고 깊어진다.

"전통음악은 그동안 보존하는데 온 힘을 쏟았어요. 그런데 엄청난 변화가 왔거든요. 세계적으로 모든 문화들이 다 들어오고 관객들은 그걸 즐기고. 우리것을 잠깐 외면하고 잊어버릴 수도 있잖아요. 이런 시기들을 극복하고 대중들에게 우리전통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다시 리모델링하고 다시 업그레이드 해서 다가 갈 것인가. 저로서는 이게 가장 큰 고민이고 화두에요. 앞으로 어떻게 대중들에게 우리음악을 잊지 않고 들을 수 있게 할 것인가."

전통은 이어가야 된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보물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민들에게 어려운 것을 들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쉽게 다가 갈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해결하고 대중들에게 보여주어야 되는가. 안숙선 명창의 힘겨운 고민이 피내림 받은 최영훈씨 등 젊은 국악인들에 의해 시원스레 해결될 것인가. 기대를 걸어보자.
덧붙이는 글 다음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