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제주항으로 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북적북적, 오랜만에 사람사는 활기가 느껴졌다. 이래서 삶이 지루하고 우울할 때는 새벽시장에 가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특히 새벽 어시장의 왁자함이란 잔뜩 움츠러들었던 마음도 활짝 깨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
역시 은갈치 판이었다. 은갈치를 넘어넘어 붉은 색 한치가 한 판 끼어 있었다. 우리도 처음 보는 풍경에 흥분, 한동안 우왕좌왕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밖으로 나오니 배에서 은갈치를 꺼내 운반하고 있다. 갈고리로 찍어 차곡차곡 쌓는 과정이 신기해 카메라를 댔더니 옆에 있던 아저씨가 투박한 사투리로 우리를 재촉한다.
"싸게싸게 많이 찍으시요. 올 여름 이 갈치 세가 나게 찍혀부렀소."
사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는 마음이 불편하다. 피사체가 사람이고,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옆에서 사진찍는 걸 성원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광장처럼 넓은 공판장에서도 갈치 사이를 빠져 나가며 사진을 찍었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 갈치 사라는 말만 흘리면서 우리 표정을 살필 뿐.
다시 공판장에서 나왔을 때는 새벽 안개가 거의 사라지고 햇살이 바다를 슬며시 비추고 있었다. 작은 짐차가 공판장 앞에 섰다. 무슨 일인가 가보니 배에 사각 우물 같은 게 있고 거기에 고등어가 한가득 들어 있다. 크기가 고르지는 않은데 물에 잠겨 있었다.
잠시 후, 대형 망이 내려와 고등어를 건져 올린다. 건져 올린 고등어는 즉각 작은 트럭 짐칸에 부려진다. 얼마나 많은 양인지, 트럭이 몇 번을 오가며 실어 날라도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농산물에 농부의 피땀이 있듯, 어선에 밴 어부의 피땀을 눈여겨보면서.
강력한 활기 때문인지, 아니면 공판장을 동분서주 돌아다녀 그런지 벌써 배가 고팠다. 9시도 안 됐는데. 오늘도 다른 날처럼 빵과 과일과 커피를 아침이랍시고 먹고 나왔는데. 이럴 땐, 이심전심 뱃속 사정도 똑같은지, 차를 돌리려 골목길로 들어서던 이 남자 문득 시장끼를 호소한다.
"배가 고픈데, 밥 좀 먹었으면."
"그래? 그럼 먹어야지. 그 유명한 맛집 있다며, 이 주위에. 그리로 가서 아예 아침밥을 먹고 가지, 뭐."
"아, 저 식당도 유명한 식당이다."
이 남자, 말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을 가리키며 차를 세운다. 여행 때마다 아침을 빵으로 때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짠돌이라서 그렇고 그 다음은 시간 절약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아침밥 해주는 식당 찾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대부분 잘 안 되는 식당에서 아침밥을 하니, 맛도 문제였다.
그래서 오늘은 두 번째 아침식사를 제주항 근처 신해조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는 해물뚝배기와 성게국. 다 맛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 그 근처 유명하다는 속초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안개로 비행기 이륙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공항에 나갔다 다시 나와서 먹었다. 한 시간반이나 남은 시간을 공항에서 배회하고 심심해 하느니 시간이 없어서 못 먹었던 속초식당이나 가자며 일부러 택시를 타고 와 먹었다. 그런데 그다지 색다르지는 않았다. 갈치구이를 먹었는데 가격에 비해 허술한 편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와 이번엔 첫날 돌았던 반대 방향 해안도로를 달렸다. 역시 제주 바다는 아름답다. 어촌이 나오면 세우고, 신기한 바위가 나와도 세우고 경관이 좋아도 세운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리 한갓지지 않았다.
바로 비양도 때문이었다. 지난 번 여행 때 우도와 마라도는 갔었는데 비양도는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꼭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다. 쓸데 없는 데 들르지 말고 빨리 가서 비양도나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얼마 안 가 그 바람도 접고 말았다.
정말 들를 데가 너무 많았다. 내가 봐도 지나치기 아까운 경관들을 그가 그냥 놔두고 갈 리가 없기 떄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제주도 볼 거 없다고 그 돈으로 차라리 동남아 가는 게 낫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동남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대충 돌아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도대체 어디를 보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애월 고내리를 지나 곽지해수욕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는 색다른 풍경이 있다. 노천탕이다. 노천 탕인데도 남탕과 여탕이 구분돼 있다. 앞에 우물의 유래가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을이 생긴 2000년전부터 있던 우물로 옆마을까지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이란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탕이 있고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다. 여름에만 사용하는지 지금은 썰렁하게 방치돼 있었지만, 피서철엔 인기가 아주 대단할 것 같았다.
드디어 한림 비양도 매표소가 나온다. 그런데 배는 하루에 두 번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만 있었다. 비양도를 들어가면 다른 곳을 가지 못하니, 아쉽지만 돌아서야 했다. 그 대신 섬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가서 손으로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섬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인 제주. 5박 6일로는 정말 겉핥기밖에 할 수가 없다. 카메라 렌즈보다 더 가까이 내 눈에 잡히는 섬이었지만 결국 직접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저 제주에 올 구실이 하나 생겼다며, 다음에는 꼭 가자는 다짐만 하고 돌아섰다.
▲ 제주수협공판장그곳에 가면 덩달아 기운이 펄펄 난다. ⓒ 이현숙
역시 은갈치 판이었다. 은갈치를 넘어넘어 붉은 색 한치가 한 판 끼어 있었다. 우리도 처음 보는 풍경에 흥분, 한동안 우왕좌왕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밖으로 나오니 배에서 은갈치를 꺼내 운반하고 있다. 갈고리로 찍어 차곡차곡 쌓는 과정이 신기해 카메라를 댔더니 옆에 있던 아저씨가 투박한 사투리로 우리를 재촉한다.
▲ 은갈치갈치 세상에 알록달록한 한치가 끼어 있다. ⓒ 이현숙
사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는 마음이 불편하다. 피사체가 사람이고,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옆에서 사진찍는 걸 성원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광장처럼 넓은 공판장에서도 갈치 사이를 빠져 나가며 사진을 찍었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 갈치 사라는 말만 흘리면서 우리 표정을 살필 뿐.
다시 공판장에서 나왔을 때는 새벽 안개가 거의 사라지고 햇살이 바다를 슬며시 비추고 있었다. 작은 짐차가 공판장 앞에 섰다. 무슨 일인가 가보니 배에 사각 우물 같은 게 있고 거기에 고등어가 한가득 들어 있다. 크기가 고르지는 않은데 물에 잠겨 있었다.
잠시 후, 대형 망이 내려와 고등어를 건져 올린다. 건져 올린 고등어는 즉각 작은 트럭 짐칸에 부려진다. 얼마나 많은 양인지, 트럭이 몇 번을 오가며 실어 날라도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농산물에 농부의 피땀이 있듯, 어선에 밴 어부의 피땀을 눈여겨보면서.
▲ 고등어이게 다 고등어. 이분들도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있다. ⓒ 이현숙
강력한 활기 때문인지, 아니면 공판장을 동분서주 돌아다녀 그런지 벌써 배가 고팠다. 9시도 안 됐는데. 오늘도 다른 날처럼 빵과 과일과 커피를 아침이랍시고 먹고 나왔는데. 이럴 땐, 이심전심 뱃속 사정도 똑같은지, 차를 돌리려 골목길로 들어서던 이 남자 문득 시장끼를 호소한다.
"배가 고픈데, 밥 좀 먹었으면."
"그래? 그럼 먹어야지. 그 유명한 맛집 있다며, 이 주위에. 그리로 가서 아예 아침밥을 먹고 가지, 뭐."
"아, 저 식당도 유명한 식당이다."
이 남자, 말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을 가리키며 차를 세운다. 여행 때마다 아침을 빵으로 때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짠돌이라서 그렇고 그 다음은 시간 절약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아침밥 해주는 식당 찾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대부분 잘 안 되는 식당에서 아침밥을 하니, 맛도 문제였다.
▲ 아침식사제주 수협 앞에서 먹은 아침... 성게국은 신해조 식당. 갈치구이는 오는 날 속초식당에서... ⓒ 이현숙
▲ 신지천제주시내를 흐르는 샛강. 제주수협에서 나오다가... ⓒ 이현숙
그래서 오늘은 두 번째 아침식사를 제주항 근처 신해조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는 해물뚝배기와 성게국. 다 맛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 그 근처 유명하다는 속초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안개로 비행기 이륙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공항에 나갔다 다시 나와서 먹었다. 한 시간반이나 남은 시간을 공항에서 배회하고 심심해 하느니 시간이 없어서 못 먹었던 속초식당이나 가자며 일부러 택시를 타고 와 먹었다. 그런데 그다지 색다르지는 않았다. 갈치구이를 먹었는데 가격에 비해 허술한 편이었다.
▲ 고내리해안도로를 달리다 경관이 아름다워 잠시... ⓒ 이현숙
아침을 먹고 나와 이번엔 첫날 돌았던 반대 방향 해안도로를 달렸다. 역시 제주 바다는 아름답다. 어촌이 나오면 세우고, 신기한 바위가 나와도 세우고 경관이 좋아도 세운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리 한갓지지 않았다.
바로 비양도 때문이었다. 지난 번 여행 때 우도와 마라도는 갔었는데 비양도는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꼭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다. 쓸데 없는 데 들르지 말고 빨리 가서 비양도나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얼마 안 가 그 바람도 접고 말았다.
정말 들를 데가 너무 많았다. 내가 봐도 지나치기 아까운 경관들을 그가 그냥 놔두고 갈 리가 없기 떄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제주도 볼 거 없다고 그 돈으로 차라리 동남아 가는 게 낫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동남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대충 돌아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도대체 어디를 보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 곽지 해수욕장조용한 해수욕장이었다. ⓒ 이현숙
▲ 노천탕이곳에만 있는 신기한 명물 노천목욕탕. ⓒ 이현숙
애월 고내리를 지나 곽지해수욕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는 색다른 풍경이 있다. 노천탕이다. 노천 탕인데도 남탕과 여탕이 구분돼 있다. 앞에 우물의 유래가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을이 생긴 2000년전부터 있던 우물로 옆마을까지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이란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탕이 있고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다. 여름에만 사용하는지 지금은 썰렁하게 방치돼 있었지만, 피서철엔 인기가 아주 대단할 것 같았다.
▲ 협재해수욕장한림에 있는 해수욕장...여기서도 비양도가 가깝게 보인다. ⓒ 이현숙
▲ 비양도에메랄드 빛 바다 너머 비양도가 있었다. ⓒ 이현숙
드디어 한림 비양도 매표소가 나온다. 그런데 배는 하루에 두 번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만 있었다. 비양도를 들어가면 다른 곳을 가지 못하니, 아쉽지만 돌아서야 했다. 그 대신 섬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가서 손으로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섬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인 제주. 5박 6일로는 정말 겉핥기밖에 할 수가 없다. 카메라 렌즈보다 더 가까이 내 눈에 잡히는 섬이었지만 결국 직접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저 제주에 올 구실이 하나 생겼다며, 다음에는 꼭 가자는 다짐만 하고 돌아섰다.
덧붙이는 글
제주는 지난 10월초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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