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제 맘대로 자란 커피... 안 쓰고 달잖아!

[동티모르 여행기 10] 자연 그대로 채취하는 동티모르 커피

등록|2008.11.27 09:49 수정|2008.11.27 22:52

▲ 산꼭대기에 지어진 마우비시 호텔. 주위 경관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 조경국



▲ 마우비시 호텔 식당 내부. 식당이자 로비 역할을 겸한다. ⓒ 조경국


점심식사를 하려고 들른 마우비시 호텔은 산꼭대기에 있었다. 호텔 건물은 지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였으나 번듯하고 깔끔했다. 건물 앞에는 퇴락한 넓은 유럽식 정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포르투갈 점령 당시 지배층의 저택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하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호텔 안을 둘러보았다. 호텔 로비에는 붉은 색 소파가 ㄱ자형으로 놓여 있었고, 탁자 위 꽃병에는 활짝 핀 국화가 꽂혀 있었다. 객실의 침대는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었고, 가구는 고급스러워 보였다. 흰 타일이 붙어있는 주방 역시 깔끔해 보였다.

그 흰 타일에 도마뱀이 기어가는 것을 조경국 기자는 봤다고 했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동티모르 호텔에서는 종종 도마뱀이 나타난다는데, 나는 그 곳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도마뱀을 보지 못했다. 한번쯤 봐도 괜찮았을 텐데….

마우비시 호텔은 주로 유엔경찰과 그 가족들이 이용한다고 했다. 하룻밤 묵는 데 평일에는 50달러 정도, 주말에는 70달러 정도 한다고.

하지만 한낮의 호텔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화장실은 물이 나오지 않았다. 깔끔한 호텔에 대한 인상이 순간적으로 달라진다. 물론 저녁에는 전기가 들어오고 물도 나오겠지만.

마우비시 호텔에서 머문 시간은 한 시간 반 남짓이다. 다른 곳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곧바로 떠났는데 수아이 호텔에서 다시 만났다. 누구도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기다릴 뿐이다.

호텔 내부를 둘러봤으니 건물 밖으로 나간다. 음식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호텔이니만큼 전망은 감탄사가 나올 만큼 아름답다. 먼 데 산들이 보이고 산아래 마을도 보인다. 산 아래는 더위가 한창인데 이 곳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상쾌하기까지 하다. 더위를 피해 피서를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밤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면 호텔의 벽난로에 장작을 지핀단다.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소나기가 시원스레 쏟아진다. 동티모르는 5월부터 10월까지 건기라서 비가 오지 않는다는데 가끔은 소나기가 쏟아지곤 했다. 딜리 시내를 둘러볼 때도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피하려고 근처의 식당을 찾아 들어간 적이 있었다. 지배인이 인도네시안이었는데 상당히 친절했다.

밀림 속에 자라는 커피 열매는 붉고 달작지근

▲ 아직 수확하기 전인 붉게 익은 커피 열매. 깨물면 달작지근한 과육이 씹힌다. ⓒ 조경국


▲ 진하디 진한 동티모르 커피. 커피를 물에다 넣고 끓여 천이나 금속망으로 걸러낸다. 성긴 망으로 걸러낸 커피는 커피잔 바닥에 커피가루가 두껍게 쌓인다. ⓒ 조경국


마우비시를 벗어나자 산간도로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높은 산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동티모르에서 가장 높은 산은 타타마이라우로 해발 2963미터나 된다. 아무래도 우리가 넘어가고 있는 산이 그 산이 속한 라메라우 산맥이 아닐까 싶은데 어디에도 표지판은 없다.

가장 높은 산이 2900m가 넘으니 다른 산도 높이가 만만치 않은 건 당연지사. 그렇게 높은 고산지대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하긴 사람들이란 어디서건 뿌리를 내리고 살지 않나.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일구어 곡식을 심어 수확을 얻어낸다. 사람이 지닌 생명의 힘이란 그래서 위대한 것이 아닐까.

산간도로를 올라가는데 장근호 이사가 도로 옆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커피나무라고 알려준다. 수아이 가는 길에 커피농장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농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티모르의 커피는 고산지대에서 알아서 자라면서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동티모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커피다. 100% 유기농 커피. 산에서 알아서 자라고 있으니 따로 비료를 주거나 관리를 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티모르 사람들에게는 커피를 관리하거나 종자를 개량할 능력이 없단다. 그러니 자연에서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고 열매를 거둬 가공할 뿐이다. 그래서 커피나무에 병이 들면 속수무책이란다. 병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커피나무에 열매가 달린 것을 보고 차를 도로 옆에 세웠다. 생각보다 열매는 많이 달려 있지 않았다. 커피 수확철이 지났기 때문이다. 미처 따지 않은 열매들이 더러 달려 있을 뿐이다.

붉은색 커피열매는 맛이 달콤했다. 하지만 씨가 큰 탓인지 과육이 적어 먹는 느낌은 그다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씨가 어찌나 단단하던지 그것을 깨물다가는 씨 대신 어금니가 부서질 것 같다. 바로 그 씨가 커피다.

산간도로를 달리다보면 도로 위에 커피를 펴놓고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길 위에 비닐 같은 것을 깔고 그 위에 커피콩을 펼쳐 놓았다. 젊은 남자가 고무래 비슷한 것으로 커피콩을 이리저리 밀고 있어서 차를 세우고 구경했다. 조경국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젊은 남자는 활짝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준다.

▲ 커피를 햇볕에 말리고 있는 청년들. ⓒ 조경국


▲ 동티모르 커피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들어온 아라비카종이다.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밀림에서 스스로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주민들은 단지 수확만 할 뿐이다. ⓒ 조경국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한 눅눅하고 끈끈한 수아이

수아이 가는 길은 포장도로보다는 비포장도로가 더 많았다. 아이나루부터는 거의 비포장도로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길이 끊어진 곳도 더러 있었다. 우기에 내린 비로 도로가 끊어지거나 다리가 무너져 길이 사라진 곳도 있었다. 다리가 끊어진 곳에서는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강으로 차가 들어가기도 했다. 자갈 위를 달리니 차는 덜컹거리면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덩달아 안에 탄 우리도 흔들린다.

산 넘고 물 건너 겨우 수아이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산간지방은 시원했지만 수아이 역시 바닷가에 있는 도시라 눅눅하고 끈끈한 더위가 맴돌고 있었다.

일행이 네 명이라 방을 네 개 잡았다. 장 이사가 객실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곳을 잡으라고 하는데 그냥 호텔 출입구와 가까운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눅눅한 냄새가 난다. 곰팡내 같기도 하고 오래 묵은 먼지 냄새 같기도 하다. 창에는 파란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방에는 1인용 침대와 에어컨과 TV가 있다. 욕실은 제법 넓은데 세면대와 샤워기만 달랑 있어 썰렁하다. 엘리자베스 호텔은 이곳에 비하니 시설이 무척이나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뚜뚜알라의 게스트하우스에 비하면 아주 좋은 편이다. 에어컨이 있으니 밤새도록 온 몸에 달라붙는 눅눅한 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호텔에 딸린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어두침침한 식당 안도 눅눅하고 더웠다. 선풍기가 돌고 있었지만 더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온몸에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다음날 아침 6시쯤 일어났다. 지난 밤, 눅눅한 더위가 방안을 맴돌고 있었지만 에어컨의 소음과 찬바람이 싫어서 끄고 잤더니 이른 아침부터 온몸이 끈적거린다.

호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더니 아또이가 야자수 나무에서 코코넛 열매를 따고 있었다. 장 이사가 따라고 했단다. 코코넛 즙을 마셨다. 양이 너무 많아 다 마시지 못하고 남겼다.

호텔 옆에는 대형 슈퍼마켓이 있어 구경삼아 들어갔다. 만물상 같다. 먹거리부터 그릇·학용품·옷 등 진열된 물품은 다양하다. 하지만 하나같이 초라하거나 조잡하다. 게다가 먼지는 어찌 많이 쌓여 있던지 먼지떨이가 있으면 탁탁 털어냈으면 좋겠다. 먼지라도 털어내면 덜 초라하고 덜 조악해 보이지 않을까?

돌을 쌓아 만든 감옥... 수아이 해변에서 본 일제의 잔재

▲ 기름이 고여있는 육상 유전. 수아이 해변에는 이렇게 방치된 육상 유전이 여러 곳 있다. ⓒ 조경국


▲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건설한 감옥. 사진에서 보는 것 외에 다른 건물들도 있으나 대부분 무너지고 퇴락했다. ⓒ 조경국


8시 반쯤 수아이 호텔을 떠났다. 해안으로 가는 길에 육상유정이 있는 것을 보았다. 유정 주변의 땅은 검게 물들어 있고, 유정 아랫부분에는 검은 액체가 고여 있다.

장 이사는 육상유정에는 천연가스와 원유가 같이 묻혀 있어 자연 상태로 두면 분수처럼 가스와 원유가 터져 나오기 때문에 지하에 파이프를 매설해서 밸브로 잠가놓는다고 알려주었다. 육상유정은 대부분 규모가 작고 매장량 역시 그리 많지 않다고. 동티모르에도 이런 육상유정이 여러 곳 있으나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경제성이 그다지 없다는 것이 장 이사의 설명이었다.

유정을 지나 해안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일본군이 동티모르에 남긴 유적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돌로 만든 감옥이다. 일본군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동티모르를 침략한 바 있다.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만 동티모르를 점령한 것이 아니었단다. 일본군의 점령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흔적이 수아이에 남아 있는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일까. 돌로 겹겹이 쌓아 올린 건물은 퇴락할 대로 퇴락해버렸다. 게다가 큰 나무가 굵은 뿌리를 내려서 돌무더기로 변한 건축물과 뒤엉켜 있었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흉물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견고하게 쌓은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긴 그러니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겠지.

돌무더기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휑하니 비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기에 내려간다. 땅에서 오싹한 한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 같다. 감옥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갇혀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을 테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질렀던 만행이야 악명이 높지 않은가.

다시 해변으로 간다. 해변에는 용설란을 비롯한 선인장들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다. 솜털 같은 가시가 잔뜩 달린 선인장에 붉은 열매가 달려 있다. 장 이사가 백년초라고 알려준다. 주변을 둘러보니 제법 많다.

장 이사가 백년초 열매를 따기에 옆에서 거들었더니 만지지 말라고 말린다. 열매에 달린 가시가 살갗에 달라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고 무척이나 따갑단다.

그 때는 그 말을 넘겨들었는데 이런~. 밤에 오른손 검지손가락 끝이 가시가 박힌 것처럼 따가운 거라. 아무리 봐도 가시가 박힌 흔적은 없는데 따가운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백년초 가시가 여러 개 박힌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따갑고 아프다. 바늘을 꺼내들고 보이지 않는 가시를 빼려고 했지만 못했다. 보이지 않는 가시를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틀쯤 지나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따가운 느낌이 사라졌다.

[최근 주요 기사]
☞ "4대강 물길잇기로 23만 일자리"... 정부, 대운하 명칭만 바꿔 추진
☞ MB는 주식장사, <조선> <중앙>은 집장사?
☞ "왜 다시 회사를?" "돈, 돈이 떨어져서요..."
☞ [학생인권법]교사들도 머리 좀 길면 '생활지도'할 겁니까
☞ [블로그] 유럽 언론사 닷컴은 포털보다 세다
☞ [엄지뉴스] 운전석 앉은 개, 상근이 안부럽네~
☞ [E노트] 포항시 "MB 동상 포함한 대통령 공원 만들겠다"
덧붙이는 글 지난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0박 11일 동안 동티모르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