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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들 활동적인 게 한복 때문인가 봐요"

[온고을 사람들 23] 전통문화체험교실에서 만난 외국대학생들

등록|2008.11.25 21:09 수정|2008.11.25 21:09
전주시의 한국전통문화 아카데미

ⓒ 전주시


"한지를 만지고 있으면 차분해져요. 나를 편히 쉬게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조금 긴장이 되긴 하지만 이 릴랙스(Relaxe)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이네스 로렌바흐. 21. 독일. 중앙대 국제경영학과)
11월 23일 오전 11시 전주시 한옥마을내 교동아트센터. 강사의 설명에 따라 열심히 한지 공예를 만들고있는 파란눈의 젊은이들. 오늘 만드는 것은 한지 사각상자. 무척 간단해보이지만 풀칠하는 것 하나, 한지 붙이는 것 하나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풀칠은 너무 많이 발라도 곤란하고 너무 엷게 발라도 문제다. 강사의 설명에 맞춰 농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건 비단 언어 탓만은 아니리라.

어느 정도 한지의 감이 잡혀서일까.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강사의 설명 없이도 풀칠을 잘 바르고 나름대로 멋도 내기 시작해본다. 재잘거리던 소란스러움도 어느덧 수그러들고 한지 공예를 대하는 그들의 진지함이 공기의 밀도를 가득 채우고있다.

이 행사는 전주시에서 주최하는 '한국전통문화 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열리는 '한국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이다. 11월 22일에서 23일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중앙대학교의 교환학생들과 유학생 71명이 참여했다. 22일, 간단한 워크숍을 거친뒤 한옥마을 투어, 전통혼례 및 풍물체험과 막걸리와 함께 하는 판소리 체험을 마쳤고 이틀째인 오늘 한지 공예를 체험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곳에 참여한 학생들의 목적은 한가지이다. 바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느끼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구의 역동적 리듬에 꽂혀버린 영국 청년

▲ 장구의 역동적인 리듬에 흠뻑 빠져버린 해리(왼쪽). 이날 한지 공예에도 매우 뛰어난 솜씨를 보여 칭찬을 받기도 했다. ⓒ 안소민


▲ 강사의 설명에 따라 한지를 만드는 모습 ⓒ 안소민


한국의 전통문화 특히 유교에 관심이 많다는 해리(20, 영국, 중앙대 경제학과). 그는 특히 이번 체험을 계기로 장구리듬과 판소리 등 한국전통음악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평소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작년에 한국의 친구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그때가 마침 추석과 겹쳤거든요. 그때 온 가족이 서로 모여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조상의 묘에 가서 절을 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본래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긴 했는데 그 경험 후 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전공인 경제학과를 지망해 중앙대 교환학생으로 오긴 했지만 마땅히 구체적으로 배우고 느낄 만한 프로그램을 찾지 못하던 중 전주시에서 주최하는 이번 체험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어제 전주 전통문화센터에서 본 한국의 풍물공연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장구의 리듬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판소리, 북소리 모든 게 다 매혹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전통문화도시를 알리고자하는 전주시측의 열의와 성의에 감동받았습니다. 전주시의 전통문화에 대해 많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그 태도가 참 보기 좋았습니다. 아마 제가 선뜻 전주를 택하게 된 것도 그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교포2세...비빔밥의 오묘한 의미를 깨닫다

▲ 독일에서 온 이네스 로렌바흐(왼쪽). 한지의 촉감이 자신을 편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 안소민


▲ 오카쟈키 모에(왼쪽)씨는 전주에 오면 마치 자신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길지않은 유학기간에 벌써 두번째 오는 것이니 전주와 가벼운 인연은 아닌 듯 했다 ⓒ 안소민


미국 샌디에고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가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온 버날드킴(24. 중앙대 경영학과). 미국에서도 새해 첫날이나 모임에서 한복을 입어 본 적은 있지만 자주는 아니었다. 이번에 전주에 와서 처음 본 전통혼례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태어나서 처음 본 한국 전통혼례였기때문인지도 모른다. 악수문화에 익숙해있는 버날드 킴에게는 깊숙이 맞절을 하고 술잔을 나누는 전통혼례문화가 어색한 한편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복에 비해 그래도 더 많이 접해본 비빔밥. 서울에서도 비빔밥은 많이 먹었지만 그 의미는 잘 몰랐다.

"비빔밥속에 들어간 재료에 그렇게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줄 몰랐어요. 각각의 야채가 서로 긴밀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통일된 한 맛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그 전까지는 전혀 몰랐거든요. 비빔밥의 색깔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음양의 조화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알았어요. 의미를 알고나서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더라구요."

난생 처음 찾은 전주, 그에게 전주는 어떤 풍경으로 비칠까. 

"경기전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서울에서도 경복궁이나 덕수궁은 몇 번 가보았지만 좀 많이 현대화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덕수궁 뿐 아니라 서울 자체가 이미 국제적인 도시가 되어서 그런지 미국의 도시들과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전주는 좀 다르네요. 특히 경기전과 한옥마을 분위기는요 뭐랄까...좀더 전통적이고 오래된 문화가 생활속에 더 많이 녹아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적당한 표현을 찾기 위해 더듬더듬 하긴 했지만 아마 버날드킴이 하고 싶었던 표현은 '고즈넉함' 아닐까. 일본 나고야에서 온 오이시 사에(21, 중앙대 국제커뮤니케이션)씨도 비슷한 감상이다. 오이시는 '한국의 전통건축물은 일본의 전통건축물에 비해 색감이 더 아름답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특히 처마의 선이 무척 예뻤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한 그 경쾌함과 날렵함이 굉장히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한복의 멋에 반한 핀란드 아가씨

▲ 핀란드에서 온 엠미(좌)와 오이시 사에씨. 오이시는 한국의 갈비탕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 안소민


현재 3개월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엠미 리이카넨(핀란드,22,중앙대 여행학과)은 전통혼례식때 입어본 한복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어에 능통한 그녀는 본래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가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문화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하니 이번 체험이 헛되지만은 않은 것이다.

"한복 색깔이 굉장히 예쁘더라구요. 사진이나 영화로만 보다가 직접 보았는데 정말 너무 예뻤어요. 기모노도 몇 번 입어본 경험이 있는데 기모노에 비해 행동반경이 굉장히 자유롭고 활동적이어서 편했어요. 그리고 입는 방법도 간단하고요. 무엇보다 한복은 가벼워서 좋았습니다. 한국여성들이 굉장히 활동적이고 부지런한 것도 아마 이런 한복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해 평소 한국 영화를 접했다는 엠미는 영화속에서만 바라본 한국의 모습과 실제로 접해본 모습이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속에서는 한정된 일부의 모습에 불과했지만 직접 한복을 입고 전통혼례를 올려보고, 장구를 쳐보고, 한옥 마당을 거닐어본 느낌은 사뭇 다르다고 했다. 쇼윈도에 걸려있던 옷을 직접 입어본 '실감'이라고나 할까.

▲ '김치, 정말 맛있어요. 갈비탕도 끝내줘요~' 하와이에서 온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청년(왼쪽 안경낀 인물). 사진찍기가 취미인 그는 전주의 풍경을 한 아름 담아갔다. ⓒ 안소민



서울외 다른 지역도 가보고 싶었다   

일본 훗카이도에서 온 오카쟈키 모에(21, 일본, 중앙대 경영학부)가 전주에 온 이유는 조금은 특별했다. 사실 모에씨에게 이번 전주행이 처음은 아니다. 몇주전 한국인 친구를 따라 전주에 와본 경험이 있다. 모에씨는 서울에만 있다보니 한국의 다른 지역도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서울 외에 다른 곳도 무척 궁금했어요. 분명 지역에도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을텐데 그런 것을 접할 기회가 없으니까 좀 안타까웠죠. 아는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말도 서투르고 지리도 잘 모르는 저에게 지역문화를 접하는 것은 힘들었죠."

다른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그곳에는 뭐가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던 것이다. 나를 보자 대뜸 '전주에도 사투리가 있느냐' '전주 사투리는 어떠냐' '전주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살고있느냐' 심지어는 '전주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서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모에씨의 이러한 호기심은 100% 수긍이 간다. 만약 일본에 유학을 갔는데 도쿄에만 머문다고 생각해보라. 당연히 따분하지 않을까. 모에씨가 딱 그 경우였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만난 이번 전주의 전통문화체험은 더없이 반가운 기회였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육회비빔밥이었어요. 전혀 맵지 않았어요. 무척 맛있었어요. 노래방에도 몇 번 갔는데 벌써 또 가고 싶네요.(웃음) 제 고향이 훗카이도의 ‘이와미자와’라는 곳인데 혹시 아세요? 한국인들은 훗카이도하면 삿포로만 알더라구요. 사실 일본인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그런데 이곳 전주와 분위기가 정말 비슷해요. 참 신기한 일이죠? 그래서 전주에 왔다간 뒤 없던 향수병이 생겼지 뭐예요. 아마 이번에도 그 향수병이 도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문화에 관한 한 '백견이 불여일험(驗)'이 더 맞을 듯하다. 두 손으로 직접 만들고 입어보고 만져본 한국의 전통문화가 그전에 보이던 것과는 달리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번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한국의 전통체험을 모두 맛보았다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문고리는 잡아본 셈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로 향하는 문에 한발짝 다가갔으니 이제 그 문고리를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갈 차례다.   

▲ 전통아카데미 2기 수료식. ⓒ 전주시


전주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전통문화 아카데미'는 한국에 유학 온 외국인 대학생에게 한국전통문화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다.

유학생에게는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도시로서의 전주시의 위상과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목적을 꾀한다는 것이 전주시측의 설명이다.

또한 학점이수제를 도입해, 현재 우석대, 전북대, 전주대, 원광대 도내 4개 대학과 연계하여 외국인 유학생 8백명 가량이 전통문화를 이수중이며 수료후에는 대학과의 협정에 의해 2학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유학생 뿐 아니라 대학 관계자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얻고있는 전주시 한국전통문화 아카데미는 내년부터는 수도권 대학까지 그 범위를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주요 과목으로는 한국의 생활문화, 전주의 역사문화, '한'문화 8과목(한글, 한지, 한식, 한복, 한춤, 한옥, 한방, 한소리) 등이다.

본 기사에 소개된 '한국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은 주말을 이용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1박2일(또는 1일) 일정의 체험 프로그램. 한옥마을투어, 전통혼례, 전통풍물, 한지공예, 한방공예, 한옥짓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짜여져있다. 내년부터는 원어민 교사나 다문화가정, 주한미군 등으로 확대하여 실행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도내 대학 유학생을 비롯해 성균관대, 이화여대, 중앙대 등 수도권 대학까지 포함해 약 1천여명의 대학생들이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덧붙이는 글 선샤인뉴스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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