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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없애야 말 된다 (133) 종적

― ‘위로부터 내려오는 종적인 실’ 다듬기

등록|2008.11.25 21:14 수정|2008.11.25 21:14
- 종적인 실

.. 왜 그렇게 가혹하게 위로부터 내려오는 종적인 실을 끊어버려야 하는가를 ..  《박완서-혼자 부르는 합창》(진문출판사,1977) 116쪽

 ‘가혹(苛酷)하게’는 ‘모질게’로 손봅니다. ‘위로부터’는 ‘위에서’나 ‘위부터’로 고쳐 줍니다.

 ┌ 종적(縱的) : 어떤 일이나 사물의 관계가 상하(上下)로 연결되어 있는
 │   - 종적 구조 / 종적 분류 / 종적인 관계
 ├ 종(縱) = 세로
 │
 ├ 위로부터 내려오는 종적인 실
 │→ 위에서 내려오는 실
 │→ 세로짜기 실
 │→ 세로로 엮인 실
 └ …

 우리 말은 ‘세로’와 ‘가로’입니다. 한자는 ‘縱’과 ‘橫’입니다. 우리 말은 ‘가로세로’이고, 한자는 ‘縱橫’입니다. 우리 말로 ‘거침없이’나 ‘마음껏’이지만, 한자로는 ‘縱橫無盡’입니다.

 ┌ 종적 구조 → 위아래 얼개 / 세로짜기
 ├ 종적 분류 →  위아래 나눔
 └ 종적인 관계 → 위아래 사이 / 위아래로 나뉜 사이

 어릴 적 ‘가로’와 ‘세로’를 배우는 한편 ‘종’과 ‘횡’을 배웠습니다. 토박이말로만 가르쳐도 넉넉하지만, 굳이 한자까지 가르쳤기 때문에 늘 ‘가로’가 ‘종’인지 ‘세로’가 ‘종’인지 헷갈려 했습니다. 오늘날도 한자로 적을 때에는 어느 낱말이 어느 줄을 가리키는지 잘 몰라서 사전을 다시 찾아보게 됩니다. 더욱이, 토박이말 ‘가로세로’도 헷갈리고 말아 사전을 찬찬히 뒤적이며 이 금이 ‘가로’고 저 금이 ‘세로’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 가로짜기 / 가로금 / 가로 ↔ 왼오른 / 왼쪽오른쪽
 └ 세로짜기 / 세로금 / 세로 ↔ 위아래 / 위쪽아래쪽

 그런데 요사이는 ‘종적’과 ‘횡적’을 잘 안 씁니다. 그런 만큼 토박이말로 말씀씀이를 되찾아서 ‘가로’와 ‘세로’를 쓰느냐 하면, 이러하지는 않고, ‘수직적’과 ‘수평적’을 씁니다.

 요즘 사람들 삶이나 문화를 헤아려 본다면, ‘종-횡’보다는 ‘수직-수평’이 한결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낱말이 되리라 봅니다. 학교에서 배우기도 그렇고, 둘레 어른들이 쓰는 말도 그렇습니다. 학교에서도 ‘가로-세로’는 잘 안 가르칩니다. 집이나 마을에서도 ‘가로-세로’라는 말은 거의 안 씁니다.

 가르치지 않지요, 듣지도 않지요, 이러니 토박이말이고 뭐고를 떠나서 ‘가로-세로’는 제자리를 잃고 맙니다. 토박이말이 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토박이말이 제 땅을 빼앗긴 채 떠돌고 맙니다.

 ┌ 고른 사이 ← 평등 ← 수평적 관계 / 횡적 관계
 └ 매인 사이 ← 불평등 ← 수직적 관계 / 종적 관계

 삶이 뒤흔들리니 말이 뒤흔들립니다. 삶이 뒤바뀌니 말이 뒤바뀝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일구는 삶이라면, 우리 깜냥껏 우리 말을 북돋울 테지요. 우리가 우리 손으로 가꾸는 문화라면, 우리 슬기를 가다듬으면서 우리 글을 꽃피울 테고요.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일구지 않아요. 우리 손으로 우리 문화를 가꾸지 않아요. 서양 해바라기에 바쁘고, 세계화 내세우기에 목매답니다. 일본을 거쳐 서양책과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기에 부산하며, 나라밖에서 들여오면 개오줌도 대단한 줄 여겨 버릇합니다.

 삶이 먼저 제자리를 찾는다면 말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문화가 차근차근 제 땅에 뿌리를 박고서 제 슬기와 깜냥을 빛내게 되면 글도 제 땅에 뿌리를 박으면서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스스로 우리 삶을 돌아본다면 우리 말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느끼는 한편,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우리 손으로 우리 문화를 일구어 가면 우리 글을 어떻게 매만지면서 일으켜세워야 아름다운가를 시나브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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