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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과 할머니, 그리고 선생님 이야기

선생님의 제자사랑

등록|2008.11.26 15:29 수정|2008.11.26 15:29

제가 손수 만든 계란프라이입니다 ⓒ 홍경석



지난 일요일에 계란을 전문적으로 파는 집에 갔습니다.
도매집이어서 일반 가게보다는 그 집의 계란이 다소 싼 때문이었습니다.

알이 좀 굵은 건 30개들이 한 판에 4500원이고
그보다 좀 처지는 건 4200원이랬습니다.
4500원짜리 계란을 한 판 사 가지고 와서 세 개를 삶았지요.

소금에 깨까지 뿌린 깨소금에 찍어먹자니 역시나
계란은 예나 지금이나 그 맛이 변함이 없었습니다.
평소 반찬을 곧잘 만드는데 그 중 하나가 김말이 계란프라이입니다.

우선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릅니다.
프라이팬이 불에 달궈지면 계란을 두어 개 깨서 젓가락으로 마구 휘젓지요.
맛소금을 조금 가미한 뒤에 프라이팬에 계란을 붓습니다.

아~! 이때 조심해야 할 건 계란을 모두 넣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1/3 정도는 남겨둬야 김말이 계란 프라이가 용이한 때문이죠.

다음으론 시중에서 파는 사각형 모양의 즉석용 김을 뜯어 두어 장 그 위에 걸칩니다.
끝으로 남아있는 1/3 정도 남겨둔 계란을 부어 마무리를 하는 것이죠.

이렇게 만드는 김말이 계란 프라이를 걷어내
접시에 담은 뒤 토마토케찹을 뿌리면 아들도 맛있다며 아주 좋아하지요!

제가 어렸을 적엔 찢어지게 못 살았기에 평소에 계란을 먹는다는 것도 참 힘들었습니다.
동창생 중에는 어려서부터 양계장을 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는 저와는 반대의 경우였지만 말입니다.

“나는 허구한 날 반찬으로 계란만 올라와서
정말이지 닭똥의 그 냄새만으로도 지겨웠어!!”
삶은 계란과 계란프라이가 들어간 김밥까지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소풍을 간다거나 학교서 운동회가 있는 날의 경우였습니다.

그날은 할머니께서도 크게 맘을 여시곤
계란을 사다가 이 손자에게 ‘한턱’을 내셨던 것이었지요.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의 어느 소풍날이 지금도 기억의 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도 할머니께선 제가 소풍을 간다고 하니까 삶은 계란 몇 개와
칠성사이다에 이어 계란프라이가 들어간 김밥까지 정성으로 싸 주셨지요.
그런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담임선생님께서 소풍지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자 저만을 은밀히 부르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시더니 마찬가지의 음식인 삶은 계란과 김밥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당시에 어머니 없이 할머니와 사는 가련한
제 처지를 십분 이해하신 선생님의 제자사랑의 발로였을 것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할머니가 싸 주신 김밥과 삶은 달걀도 남겨서 집에까지
가지고 간 기억이 있는데 하지만 선생님의 사모님이 싸셨을 게
뻔한 김밥은 정말이지 꿀맛에 다름 아니었음은 물론입니다.

할머니도 이 땅에 안 계시고 당시의 선생님 존함도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계란을 보자면 당시의 풍경과
사람들이 눅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덧붙이는 글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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