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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했던 아쉬운 1박 2일

등록|2008.11.27 10:09 수정|2008.11.27 10:09

▲ 보문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입니다. ⓒ 홍경석



사랑하는 딸이 집에 온 건 그제 오후 6시 30분차로의 도착이었습니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마중을 나가 만난 딸을 데리고
집에 올 적만 하더라도 적어도 2박 3일은 머물다 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제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니 딸은 어느새 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딸에게 먹인다며 장을 봐 와서 해물탕을 끓이고 있었고요.

“우리 딸, 서울 간대!”
뿔난 기색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아내의 아쉬움에 저 또한 ‘분개’하여 언성을 높였지요.

“이 놈아, 집에 온 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간다는 겨?”
하지만 딸은 공부도 해야 하고 알바도 건너뛸 수 없다는 등의
핑계거리를 갖다 붙이며 자신이 상경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는 수 없지 뭐, 암튼 밥이나 든든하게 먹고 가렴.”
딸이 고작 1박 2일 만에 간다기에 서운하여
해물탕에 소주 한 병을 게 눈 감추듯 마셨습니다.
그리곤 녀석을 다시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갔지요.

딸이 탑승한 어제의 서울 행 고속버스는 저녁 6시 15분차였습니다.
그러니 ‘1박 2일’이라곤 해도 딸이 머문 시간은
하루도 안 되는 고작 23시간 45분에 불과할 따름이었지요.

딸이 하루 더 머물면 극장을 데리고 가든가 아님 가까운 보문산이라도
함께 등산을 하고 보문산의 별미인 보리밥도 사줄 요량이었는데...!!

평소 빈궁하기에 딸에게 금의옥식(錦衣玉食)은 못 시켜줍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부모 이상으로 ‘넉넉히’ 베풀 줄 안다고 자부하는 터입니다.

헌데 녀석은 마치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겨우 하루만 머물곤 그렇게 훌쩍 또 집을 떠난다니
이 아비의 마음이 어찌 섭섭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고속버스에 오르기 전에 저는 딸에게
“너는 내 딸이 아니라 꼭 김삿갓, 아니 홍삿갓 같애.”라는
서운함의 농(弄)까지 첨언했던 것이었습니다.

딸이 버스에 오르기 전 딸과 포옹했습니다.
“공부도 좋지만 아무튼 매사 건강하고
밥 제 때 챙겨먹는 거 잊지 말거라! 그리고...”

대학 4학년이라고 해서 벌써부터 취업에 관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따위의 사서 고생은 말라는 얘기까지 했지요.
딸이 탄 고속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들어 배웅하면서 저는 마음속에
담긴 이 한마디를 다시 딸에게 건넸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는 우리 가족은 물론이요 자타가 공인하는 내 자부심의 재원(才媛)이다.
비록 너의 1박 2일은 너무 짧았으되 너의 빠른
상경 목적이 다시금 공부라고 하는 모습에서
아빠는 또 너의 유수불부(流水不腐) 습관을 발견하게 되는 구나.
모쪼록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그 정신의 견지로써
매진하다 보면 이담엔 반드시 좋은 날은 올 거야!”
덧붙이는 글 해피선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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