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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우친 들풀들, 누리꾼께 감사드립니다"

서울구치소 수감중인 박원석 광우병대책회의 상황실장의 첫번째 편지

등록|2008.11.28 12:17 수정|2008.11.28 12:17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참여연대입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으로 일하다 지금은 차가운 감옥에 영어의 몸으로 갇혀 있는 참여연대 박원석 협동사무처장이 첫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을 포함해 누리꾼 여러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진실하게 담겨 있어 이렇게 편지를 전하게 됐습니다.

돌이켜 보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그리고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촛불 운동에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어려가지 미숙한 점도 있어 일부 누리꾼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누리꾼들과 함께 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의 진정성은 우리 누리꾼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참여연대는 누리꾼 여러분들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한 시민사회운동에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1% 특권층을 위한 정책에 여념이 없는, 민주주와 인권을 거침없이 파괴하고 있는, 누리꾼들의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맞서서 제대로 저항하고, 또 좋은 대안을 만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겠습니다.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극심한 경제위기와 혹독한 민생고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까지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희망과 연대, 치열한 실천으로 따뜻한 봄날을, 그보다 더 따뜻한 한국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박원석 협동사무처장의 편지입니다.(박원석 실장은 지난 11월 8일 구속됐으며, 편지는 쓴 지 2주만인 최근 도착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또 다른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에게

▲ 조계사에서 수배중이던 지난 7월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 유성호

오늘로 이곳 서울구치소에 도착한 지 엿새째를 맞이합니다. 갑작스레 차가워진 날씨속에 모두 무탈하신지요? 이제야 소식전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인 징역살이는 아니지만, 새로운 공간에 몸도 마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손 편지를 쓰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어서인지 머릿속에 맴도는 말들이 손끝에서 선뜻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후에 운동을 나갔다가 첫눈을 맞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흩날리던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이내 함박눈이 되더군요. 사방이 차가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운동장에 서 있었지만, 첫눈의 감상마저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제 평생에 가장 기억에 남을 첫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전에 면회를 다녀간 후배가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추워 걱정을 하더군요. 흔히 감옥의 겨울은 바깥보다 더 일찍 온다고들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바닥에 은근한 온기가 들어오는 방안에 앉아 있다 보면, 겨울 징역살이가 고되다는 말도 옛말인 듯싶습니다. 물론 징역살이의 궁색함과 고단함이 어디 가진 않겠지만 말이지요. 겨울 잠자러 들어온 곰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려 합니다.

조계사를 나온 이후 많은 분들의 걱정, 기대, 바람과는 달리 다소는 힘없는 모습으로 검거된 점 먼저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작은 부주의함이 동료들과 뜻을 함께하는 많은 분들께 작지 않은 누가 되었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의 신중함과 무거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일 청계광장에 촛불이 처음 밝혀진 이후 많은 분들께 도움을 받고 큰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미쳐 감사하다는 말씀도 다 드리지 못한 것이 또한 마음의 빚이 됩니다. 먼저 극도의 긴장과 누적되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책임과 헌신을 다해준 국민대책회의 상황실 파견자 동지들에게 깊은 신뢰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가장 힘들고 분주했던 시기에 시청광장 현장 상황실을 지켜주신 기형노 국장님, 석건호 국장님, 양민주 선생님, 오평석 동지, 김상민 동지 그리고 자원봉사자분들에게 늦었지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노고와 헌신이 없었다면, 72시간 릴레이 농성과 6.10 70만 군중의 감동적인 촛불행진을 감히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광우병대책회의에 참여한 많은 참가단체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중에도 '나눔문화'의 헌신적이고 창조적인 활약에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촛불소녀와 함께한 나눔문화의 활동은 매일 새로운 감동과 영감 그리고 문화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과 전문가 자문회의의 열성적인 활동에도 감사드립니다.

▲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21차 촛불문화제가 열린 지난 5월 28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나눔문화 회원들이 '나를 먼저 연행하라'는 글이 적힌 옷에 부착하는 천을 들고 있다. ⓒ 권우성


우석균 선생님, 우희종 교수님, 박상표 선생님, 송기호 변호사님 그리고 변혜진 동지의 헌신적인 활동 때문에 우리는 광우병 논쟁에서 항상 우위에 설수 있었습니다. 전문가로서의 용기와 전문성을 유감없이 보이신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함께’ 동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거리에서 많은 날들을 승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동지들의 용기와 헌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는 형제 같은 김광일 동지가 뜻을 세운 바대로 끝까지 투쟁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 감사한 분들은 네티즌 여러분 그리고 국민여러분입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들풀처럼, 우리가 쌓아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순간 일어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우쳐 주셨습니다. 비록 지금광장과 거리에 촛불이 꺼졌다고 하나, 여러 날 가슴속에 여전히 빛나고 있는 촛불을 저는 믿습니다.

조계사에 들어간 이후 총무원장 스님이하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 그리고 총무원 직원들과 종무소 직원들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떠나면서 아무런 기별도 인사도 드리지 못한 점 너무나 송구스럽습니다. 삼귀오계를 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한 마음 잊지 않고 늘 참회하고 정진하겠습니다. 118일간 조계사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후원금과 후원물품 그리고 따뜻한 격려의 방문과 말씀에 다시금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특히 매번 손수 만든 정성스러운 음식을 보내주신 봉천동 아주머니(성함조차 모르는 결례를 범했습니다)께 감사드리며, 조계사를 떠나면서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많은 지인들, 국민들께서 보내주신 지원과 사랑 늘 기억하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조계사에서 농성했던,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서 수형생활 하고 있는 6인의 수배자들 어떤 순간에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함을 잃지 않겠습니다.

제한된 신문 지면을 통해 접하는 정보지만, 우리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가 깊고 어두운 것 같습니다. 경제가 위축될수록 더욱 곤궁해질 민생이 걱정입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국민이 신뢰할 대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기업도 정부도 국민이 신뢰할 만한 비전, 위기관리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확산되는 지금 많은 나라의 정부는 신뢰의 형성 또는 회복을 위한 여러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강화를 검토하고 재정확대를 통한 공공부문의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려는 조치들을 정부의 신뢰를 형성,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명박 정부는 부자들만을 위한 감세정책에 집착하고 있으며, 재벌기업과 건설자본을 위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라는 정책의 모순을 차치하더라도, 적자재정 평성을 무릅쓰고 지출을 늘리려는 분야가 대부분 건설부문인 점을 보더라도 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방향과 수혜대상이 무엇이며,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그 결과는 우리 사회를 더 깊은 불평등과 차별의 늪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는 우려가 그리 과장되었다 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의 촛불은 부자와 특권층 위주의 정책을 매섭게 비판하며 민생을 살리는 촛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또한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형태만이 아닌, 정책이 만들어지고 공론이 형성되는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수단, 방법을 통해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확인된 네티즌들과 국민들의 창조적 역량이 다시 한 번 발휘되길 기대합니다. 민주적 기본권을 무력화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각종 악법추진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전시키는 것 못지않게 지키는 것이 어려운 싸움임을 새삼 느낍니다. 촛불의 성과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전략적 의제를 가다듬고 정치적 유능함을 발휘해 국민의 신뢰 속에 촛불운동과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길 기대해 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감옥에 죄지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법의식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다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개중에는 한 순간의 실수나 판단착오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생계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두려운 점은 규칙을 어기고 타인을 해하더라도 일신의 부귀와 안위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는 풍토가 갈수록 만연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잘 나가는 기득권층이 보이는 모습이 이와 다르다 할 수 있을까요?

큰 눈이 있었다는 소식에 지방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됩니다. 내일은 오랜만에 부모님께 편지를 드려야겠습니다. 불어 닥친 한파에 몸상 하는 일 없이 모두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루를 백년같이 무겁고 귀하게 살겠습니다.

▲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관련 수배자 5명이 6일 새벽 강원도 동해시에서 경찰에 강제연행된 가운데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연행자 가족들이 서울 종로경찰서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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