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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48) 비몽사몽

[우리 말에 마음쓰기 487] ‘비몽사몽 간에’, ‘비몽사몽 간의 노가다’ 다듬기

등록|2008.11.29 13:47 수정|2008.11.29 13:47
ㄱ. 비몽사몽 1 : 비몽사몽 간에

.. 그는 비몽사몽간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  《레너드 위벌리/박중서 옮김-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뜨인돌,2005) 61쪽

‘기억(記憶)할’은 ‘생각해 낼’이나 ‘떠올릴’로 다듬어 줍니다. ‘대답(對答)했는지’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얘기했는지’나 ‘대꾸했는지’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 비몽사몽(非夢似夢) : 완전히 잠이 들지도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어렴풋한
 │    상태
 │   - 비몽사몽 중에 오한과 열기에 떨며 / 잠자리에서 비몽사몽의 경지를 헤맸다
 │
 ├ 비몽사몽간에
 │→ 잠결에
 │→ 자다가(졸린 나머지)
 │→ 얼결(얼떨결)에
 │→ 꿈결에
 └ …

잠이 깊이 들지도 않고, 또 잠에서 깨어나서 마음이 또렷하지도 않은 모습을 두고, 네 글자 한자말로 ‘비몽사몽’이라고 적습니다. 한자말 풀이를 따르면, “잠도 잠 비슷한 것도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우리들은 예부터 잠이 들었다고도 또 잠이 안 들었다고 할 수 없는 모습을 두고 ‘잠결’이나 ‘꿈결’ 같은 낱말로 가리키곤 했습니다. 이야기 흐름에 따라서 ‘얼결’이나 ‘얼떨결’ 같은 낱말로 가리키기도 하고요.

 ┌ 잠결
 │  (1) 잠이 들어 생각이 또렷하지 못한 동안.
 │      생각이 흐릿할 만큼 잠이 어렴풋이 들거나 깬 동안
 │     <그때는 잠결이라 잘 듣지 못했다 / 잠결이지만 얼핏 느꼈다>
 │  (2) 잠을 자는 겨를
 │     <모두들 잠결이지만 일찌감치 일어났다 / 잠결에 이를 가는군>
 ├ 얼결 = 얼떨결
 │     <얼결에 손을 들고 말았다 / 얼결에 같이 하자고 말했다>
 ├ 얼떨결 : 생각이나 마음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사이.
 │     뜻밖인 일을 갑자기 겪거나, 여러 가지 일이 너무 어수선해서 마음을
 │     가다듬지 못하는 판
 │     <얼떨결에 우리가 이겼네 / 얼떨결에 대답한 것뿐인데>
 ├ 꿈결
 │  (1) 잠을 자거나 꿈을 꾸고 있어서 생각이 또렷하지 않은 동안
 │      꿈을 꾸는 어렴풋한 동안
 │     <꿈결에 본 듯한 곳이다 / 꿈결에 무슨 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  (2) 덧없이 빠른 사이. 덧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동안
 │     <꿈결처럼 지나간 올 한 해 / 즐거운 날은 꿈결같이 스쳐 갔다>
 │
 ├ 선잠 / 풋잠
 └ 졸리다 / 어렴풋하다 / 멍하다 / 벙찌다 / 벙뜨다

잠이 제대로 들지 못한 모습을 가리켜 ‘선잠’이나 ‘풋잠’이라고 합니다. 보기글을 헤아린다면, “그는 선잠이 들어 뭐라고 대꾸했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라든지 “그는 풋잠이 들어 뭐라고 얘기했는지 생각해 낼 수 없었다”처럼 고쳐쓸 수 있습니다. “졸린 나머지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알 수 없었다”처럼 고쳐 보거나, “얼핏설핏 잠드는 통에 뭐라고 떠들었는지 하나도 몰랐다”처럼 고쳐 보아도 어울립니다.

 ┌ 비몽사몽 중에 → 얼핏설핏 잠드는 가운데
 └ 잠자리에서 비몽사몽의 경지를 헤맸다 → 잠자리에서 깼다 잠들었다 헤맸다

말뜻 그대로 “잠이 쏟아지는 통에”나 “잠이 덜 깨어”처럼 적어도 괜찮습니다. 보이는 모습 그대로 “잠에서 확 깨어나지 못해”나 “졸립고 어지러워서”처럼 적어도 됩니다.

ㄴ. 비몽사몽 2 : 비몽사몽 간의 노가다

.. 스케줄과 데드라인에 이끌려 피곤함을 무릅쓰고 비몽사몽 간의 ‘노가다’를 뛰는 일로 밤샘작업을 설명한다면 ..  《이나미-나의 디자인 이야기》(마음산책,2005) 17쪽

“스케줄(schedule)과 데드라인(deadline)에 이끌려”는 “하루 내내 일과 마감에 이끌려”나 “일감과 마감에 이끌려”로 다듬어 봅니다. ‘피곤(疲困)함’은 ‘고달픔’이나 ‘고단함’으로 손보고, “노가다(土方)를 뛰는 일로 밤샘작업(-作業)을 설명(說明)한다면”은 “막일을 뛰는 일로 밤샘을 이야기한다면”이나 “닥치는 대로 일하며 밤을 새는 이 일을 말한다면”쯤으로 손보면 어떨까 싶군요.

 ┌ 비몽사몽 간의 노가다를 뛰는
 │
 │→ 자는지 깨는지 모를 막일을 뛰는
 │→ 멍한 눈으로 막일을 뛰는
 │→ 졸린 눈으로 막일을 뛰는
 │→ 흐리멍덩하게 막일을 뛰는
 └ …

하루 내내 온갖 일에 치이다 보니 저녁이 되면 파김치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늦은밤까지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다른 일을 또 붙잡아야 한다면, 그야말로 곤죽이 되고 맙니다. 자야 할 때 자지 못하고,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는데, 몸은 얼마나 축나게 될까요. 두 눈은 퀭해질 테지요. 볼따구는 야윌 테지요. 머리는 부시시해지고요.

(통째로 손질 1)→ 갖가지 일과 마감에 이끌려 고단함을 무릅쓰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막일’ 뛰며 밤샘하는 이 일(디자인)을 이야기한다면

아무리 할 일이 많더라도 먹고 일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일감이 쌓였더라도 잠은 자고 일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일이 좋다고 하지만 쉬어 가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세상은 한 사람이 느긋하게 밥을 먹고 넉넉하게 잠을 자며 때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쉬면서 일을 하도록 마련해 주지 않습니다. 하루 여덟 시간이 아닌 열여섯 시간을 일해도 먹고살기 팍팍할 만큼 거칠고 스산합니다.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벌어서 알맞게 나누고 즐기면서 살면 될 텐데, 자꾸자꾸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야만 하는 듯 내몹니다.

(통째로 손질 2)→ 하루 내내 수많은 일과 마감에 치여 고단한 몸과 감기는 눈을 무릅쓰고 ‘막일’ 뛰며 밤샘하는 이 일(디자인)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들 말과 글이 제자리를 못 찾고 헤매는 까닭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로서는 우리 사는 이 세상이 우리 마음이며 몸이 느긋하게 쉴 수 없도록 짜여져 있는데다가 앞으로도 나아질 낌새가 없는데 우리 스스로라도 이 틀을 깨부수거나 고치려는 마음마저 없기에, 말이며 글이며 엉망진창으로 얼룩지고 말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말이 어지러울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돈밖에 모르는데 말이 제 얼과 넋을 차릴 수 없습니다. 세상이 뒤죽박죽으로 굴러가는데 말이 뒤죽박죽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말을 얕보거나 짓밟는데 말이 무슨 힘이 있다고 스스로 버티면서 살아남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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