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민주당-민노당, 지방선거 공동 대응해야"
[단독] 강기갑 대표 면담 자리에서... 양당에서도 같은 목소리 나와
▲ 김대중 전 대통령이 27일 동교동자택을 방문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진보정치 정택용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민주노동당-시민사회단체'의 민주연합 결성을 주장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한 정치권 인사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면서 '후보연합' 전술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민주당의 정국 대응방식과 야당성 부족에 대해서도 비판했다고 한다.
이를 종합하면, 장기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항하는 데는 민주당만으로는 부족하며, 그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조직적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DJ, 민주주의 수호 차원의 전략적 대응 강조
공개된 대화록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상황을 "10년 전의 시대로 전체 흐름이 역전되는 과정이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민주주의 위기, 경제위기와 서민고통, 남북관계 문제 3가지"라고 규정한 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굳건하게 손을 잡고 시민사회단체 등과도 손을 잡는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국민은 이미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 등 세 독재 정권을 좌절시켰기 때문에 이제는 그 누구도 독재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해,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부'로 보고 있음을 내비쳤다. 경색된 남북관계, 방송장악 문제 등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공동투쟁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 수호' 차원에서 전략적 대응을 강조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정치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기회는 비호처럼 왔다가 비호처럼 사라진다"고도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남북관계 진전에 실기한 것을 지적하며 이명박 정부도 현재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지방선거가 중요하며 잘 치러야 한다. 국민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말씀은 있었지만, 두 당의 후보연합 등 공동대응 발언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2010년? 2009년에는 왜 못하겠나"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물론 민주당도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대북문제에 대한 공동대응 수준 이상의 주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후보연합이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내년 4월 재보선에서는 왜 못하겠나. (윤두환 의원의) 울산 북구나 (구본철 의원의) 인천 부평을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지금은 한나라당 후보를 낙선시켜야 할 이유가 너무 충분한 상황이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DJ는 과거에는 민주노동당을 연대세력으로 보지 않았으나, 민노당이 진보적 엘리트와 노동계급 중심에서 대중적인 노선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이면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면서 "DJ가 논의의 물꼬를 터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승흡 민노당 대변인도 사견을 전제로 "지금은 거대 한나라당이 압도하고, 다른 당은 모두 지지율이 정체돼 있는 위기상황"이라며 "2010년 지방선거를 위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의 논의 테이블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이에 대한 당내 논의가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하나의 당으로 모일 수도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상상력의 여지를 둘 수 있다고 본다"면서 "그동안 민주당과 가장 큰 차이가 신자유주의와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였는데, 이번 국회 들어와서 민주당의 입장이 상당히 변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두가지를 빼면 민주당과 정책적으로 큰 차이점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민노당 관계자도 "이명박 정부가 야당들 사이에 스펙트럼 차이를 보일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몰아치고 있다"면서 "당 회의에서도 민주당과 차별성 부각 문제가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DJ는 왜 민노당에게 '민주연합'을 말했을까
'보수야당과 구별되는 진보정당'의 흐름이 뚜렷한 진보신당과 갈라진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상대적으로 '민주대연합'에 거부감이 적다. 민노당 핵심인사의 상당수가 1987년부터 '비판적 지지' 등의 민주연합정부론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 달인인 김 전 대통령이 현 시점에서 그것도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만나 '민주연합'론을 꺼낸 것도 이같은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진보신당은 거부의사가 뚜렷하다.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옛날 군사정권 때처럼 한두 가지 이슈를 갖고 반이명박 전선으로 모일 수는 없는 것"이라며 "사회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지난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인데 이에 대한 반성과 방향선회가 없다면 (전략적 의미의) 민주연합은 현실성도 없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987년의 '비판적 지지론' 이후 민주대연합론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보수야당의 기본노선이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아래 모든 민주세력이 하나로 결집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그 중심은 김 전 대통령과 그가 이끌었던 평민당과 국민회의 등이었다.
"보수여당이나 보수야당이나 별 차이가 없다"며 이 틀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 '민중후보 백기완'이었고,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이 흐름은 현재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이어졌다. '민주대연합'론은 1987년 대선 이후 현재까지 '진보정당'의 최대 투쟁대상 중의 하나였다.
이처럼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민주대연합론이, 진보개혁진영이 이명박 정부의 독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제기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 일선에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제시된 민주대연합론이 시대에 맞지 않는 주장으로 도태될 것인지, 아니면 실제 지방선거 등의 후보연합 등으로 가시화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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