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르익은 가을 고향의 들녘황금빛 가을 들녘은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 성종기
"고향!!"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고향이라는 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들을 떠올리며 포근하고 아름다운 추억에 젖는다. 그러나 나에게 고향은 그런 행복한 기억보다는 늘 초조한 마음과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미지의 세계로 동경이 가득하였던 기억만 생생하다.
인간에겐 기억이 있다. 슬프고 아픈 기억들뿐만아니라 가난과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기억들은 '지금의 나'를 더욱 힘들게 하기도 했다.
▲ 고향의 가을 하늘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 성종기
앞만 보고 내달리던 젊은 시절엔 그런 기억들로 인해 고향에 대한 간절함은 없었다. 마지 못해 고향에 가더라도 도둑고양이 처럼 멀찍이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옛 기억을 더듬곤 했다.
설레며 찾아와선
쫓기듯 떠나고야 마는
텃밭은 야산이 되고
들과 산은 낯설어 간다
어쩌다 동녘 하늘
마음 열려 돌아 와
이 밭에 씨 뿌릴 수 있을까.
서풍맞이 뒤뫼에
바람막이라도......
<민경탁 선생님의 고향마을 중에서>
세월의 흐름은 정말 무섭다. 시간은 쓰라린 기억들을 아름답게 정화하는 힘이 있는가 보다. 고향을 떠나면서 뒤돌아보기조차 싫었는데 떠나온 지 40년 세월이 지나 지천명(知天命)이 된 지금 그 추억의 현장들이 늘 그립다. 찾아가 두 발로 걸어서 골골로 돌아다니며 그 곳에서 살았던 우리의 삶의 흔적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 본다.
황량하기 그지없다. 마을마다 몇 가구 살지 않으며 젊은 사람 찾기가 힘들고 아이들 노는 소리는 더더욱 듣기 어렵다. 언제까지 이 마을이 지속 될 수 있을까! 허무한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걸어 다니며 고향의 오지 마을을 탐방하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 황량한 우리들의 고향집주인은 간 곳없고 잡초만 가득하다 ⓒ 성종기
▲ 안타까운 우리의 고향집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졌으면... ⓒ 성종기
어떤 외딴 마을을 방문 했는데 그 곳은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모두 마을을 떠나고 폐동이 되기 직전에 무슨 인연이 닿았는지 참선하시는 보살님께서 들어오셔서 토굴을 짓고 마을을 있는 그대로 소박하고 토속적으로 가꾸게 된 곳이었다.
나는 보살님과 인연을 맺고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마음이 허하거나 권태로울 때면 그곳을 방문한다. 머리가 맑아지며 마음이 비워지고 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그 곳 보살님께서는 “나는 누구인가?”, “이 멋고?”라는 화두를 들고서 평생을 공부하신다고 하니 놀랍고 존경스럽다. 곤궁한 가운데서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형편껏 베풀어 주신다.
모두 버리고 떠나는 마을, 황량하기 그지없을 이 마을을 이런 정토의 공간으로 가꾸셨으니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아름답고 소박한 우리들의 집 군불 때고 하룻밤 묶고 싶다 ⓒ 성종기
▲ 우담바라 토굴진정한 나를 찾아 치열하게 정진하는 곳 ⓒ 성종기
꿈속서 그리던 이 산천 경계가 아니던가! 이렇게 아름다운 고향 산천을 뒤로하고 어둠이 깔릴 무렵 나는 저녁 막차인 완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두컴컴한 버스 안에 승객이라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는 버스 안의 한 귀퉁이에 앉아 오는 동안 버스를 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버스는 내달리고 내 마음의 상념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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