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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땐 슈퍼맨, 2차대전 땐 배트맨... 지금은?

[미국문화읽기17] '배려'와 '침공'의 두 얼굴, 어디에서 유래했나

등록|2008.12.03 10:20 수정|2008.12.07 12:16

▲ 미대륙을 좌우로 횡단하는 주간고속도로 90번(붉은 색). 경부고속도로의 12배에 달하는 길이로, 동부 보스톤과 서부 시애틀을 연결한다. 푸른색으로 표시된 거미줄 모양의 도로는 미국 전역의 주간고속도로망이다. ⓒ 강인규


미국의 90번 주간고속도로(I-90)는 여러모로 인상적인 길이다. 우선 미국의 고속도로 가운데 가장 길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 고속도로는 동부 끝 보스턴에서 시작해 서부해안 시애틀까지 약 5000킬로미터(3000마일) 거리를 연결한다.

경부고속도로의 12배에 달하는 길이로, 이틀 밤낮을 꼬박 쉬지 않고 달려야 겨우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그리고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시간은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 13개 주와 수많은 주요 도시를 경유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여행과 경제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내가 이 도로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거대한 규모나 경이로운 통계수치 때문은 아니다. 내가 이 도로를 주로 이용하는 구간은 매디슨부터 시카고까지 두 시간 남짓 되는 짧은 거리다. 지난 가을, 시카고에서 일을 마친 후 오후 늦게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도시를 빠져나와 교외를 달릴 무렵에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목적지의 중간쯤 왔을 때다. 차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멈추는가 싶더니, 속도계를 비롯한 차의 모든 계기판 바늘이 갑자기 물고기처럼 튀어 올랐다. 바늘은 한계까지 솟았다가 힘없이 떨어졌고, 이와 동시에 차는 힘을 잃고 비틀거렸다. 가속기를 밟아도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 완전히 동력을 잃은 상태였다. 

공상과학소설이었다면 주위에 접시 모양의 비행물체가 서성이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에서는 발전기가 망가졌다는 징조였다. 재빨리 비상신호를 켜 뒤의 차들에게 경고를 보낸 후, 차를 최대한 천천히 갓길에 댔다.

기약 없는 도움을 기다리다

난감했다. 마을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 일리노이 벌판이었고, 내게는 도움을 청할 휴대전화도 없었다. 야속하게도 해는 아름다운 노을 속으로 지고 있었다. 고장 난 곳이 언덕 바로 아래의 직선구간이어서 차들은 무심하게 속도를 내며 지나쳐갔다. 덩치 큰 차가 쏜살같이 바람을 일으키며 지날 때면, 내 소형차는 어김없이 덜덜거리며 몸을 떨었다.

별 수 없었다. 비상 통신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차 뒷자리를 뒤져 노트와 볼펜을 꺼낸 후 선을 여러 번 겹쳐 그어 큼지막하게 글씨를 썼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노트장을 찢어 차가 지나는 방향 유리창에 붙였다. 그러고는 차 밖으로 나와 어디서 올 지 모르는 도움을 기다렸다. 해 지는 방향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30분쯤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경찰차가 발견하거나 누군가 차를 세워 도와주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밤새 요기를 할 만한 것이 차에 있는지 생각하는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도와 달라'는 쪽지를 보고 차를 세우려 한 듯한데, 워낙 빨리던 차여서 100여 미터쯤 지나쳐 멈춰섰다.

운전자는 문을 열고 뒤의 교통상황을 살피더니 갓길을 후진으로 달려오는 모험을 시도한다. 그 차는 멈추었다 후진하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마침내 근처에 도착했다. 훤칠한 사내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야광처리를 한 작업복으로 보아 근처 오헤어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 같았다. 

▲ 시카고로 진입하는 90번 주간고속도로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 강인규


'영웅,' 구원의 손길을 내밀다

상황을 설명했더니, 자기가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트렁크에 점프케이블도 있고, 원하면 20분 거리에 있는 '벨비데어(Belvidere)'라는 작은 도시에 가서 배터리를 사다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일단 두 차의 배터리를 연결해 시동을 걸어 보기로 했다. 사내는 자신의 차에 올라, 고속도로 교통이 한산한 짧은 틈을 타 유턴을 하는 두 번째 모험을 시도한다. 두 차의 앞머리가 마주보게 해야만 짧은 케이블을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동이 걸렸다. 나는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다"고 말하며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다. 작은 성의 표시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보답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극구 사양했다.

나는 "다른 이에게 같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은혜를 갚겠다"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웃으며 힘껏 손을 쥔 그는 '톰'이라는 이름만 가르쳐 주고는 (또 다시 위험하게) 유턴을 해서 갈 길을 갔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남을 돕고 또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도움을 받기보다는 주는 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미국인들이 특별히 더 관대해서라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약자보다는 돕는 강자의 역할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특히 돈을 안 들이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더 열정적으로 나선다.

'남'의 반대는 '우리' 아닌 '나'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은 미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 도움의 형태다. 가끔씩은 더 극적인 방식으로 도움을 베풀어 남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언젠가 가장 아끼던 겨울자켓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워낙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데다가 건망증까지 심해서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몇 주일이 지난 후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낯선 젊은 여자의 목소리는 "혹시 자켓을 잃어 버리지 않았냐"고 내게 물어왔다. 반스앤노블 서점의 점원이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건망증이 심하기는 하지만, 자켓 안에 연락처를 알 만한 단서가 없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분증은 없었지만, 속주머니에 작은 영수증이 하나 있었어요. 그곳에 찍힌 전화번호를 눌러보니 카센터더군요. 직원에게 부탁해서 영주증이 발급된 날 서비스를 받은 고객 가운데 '강인규'라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지요. 다행히 카센터 컴퓨터에 전화번호가 보관되어 있었어요."

한국인들도 돕기를 좋아하지만, 많은 경우 이 도움은 '우리'라고 부르는 친밀한 관계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 한국인들에게 '남'의 반대는 '우리'이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남'의 반대는 '자신'이다. 가족도 좀 더 친근한 '남'일뿐인 미국인들에게 도움을 베풀 대상이 더 넓게 확장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개인주의와 독립성의 가치가 충만한 사회가 낯선 이에게 더 쉽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역설적이다.

▲ 19세기 후반 유행하던 서부영웅을 주제의 극장쇼 포스터. 보안관과 민병대는 미국적 영웅담의 토대를 제공했다. ⓒ 공개자료


민병대 지도자, 미국적 영웅이 되다

미국인들로 하여금 남을 돕게 만든 또 다른 배경으로, 국가 중심의 공권력보다 먼저 시작된 자치적 방어의 역사를 들 수 있다. 개인이 남의 땅을 빼앗는 방식으로 '개척'된 미국사회의 구성원들은 스스로 목숨과 재산을 지켜야 했다. 총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공동체들은 이런 개인을 모아 민병대를 구성하고 이들의 지도자인 '보안관(sheriff)'을 뽑았다. 자치적으로 선발된 보안관은 경찰이라는 현대적 공권력 조직이 성립되기 훨씬 전부터 지역방어, 세금징수, 교도관, 사형집행 등의 법집행을 도맡았다. 경찰조직이 체계화된 현재에도 보안관의 전통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사고 현장에 가면 경찰보다 먼저 달려온 민간인들이 피해자를 돕고 상황을 수습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넓은 땅에 소수의 사람들이 흩어져 사는 생활환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공권력을 기다리는 것만으로 위급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 연구는 인적이 드문 곳일수록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행인이 많은 길에 쓰러진 사람일수록 무관심 속에 방치되기 쉬운데, 그 이유는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사회는 이 심리학 이론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실험실인 셈이다.

민병대와 그들의 지도자로서 보안관은 19세기 서부소설과 극장쇼, 그리고 이후 20세기의 서부영화를 통해 완벽한 '미국적 영웅'으로 자리 잡았다. 서부극의 영웅은 국가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개인이지만 법의 집행자이고, 존경받는 지도자이나 언제나 혼자이며, 환호받는 영웅이지만 언제나 외로운 사람이다.

이 규칙을 깨고 지나치게 공동체와 가까워진 보안관은 부패하거나 무능한 존재로 전락하곤 했다. 타락한 보안관의 역할은 '더 보안관스러운' 마을의 방문객에 의해 대체되고, 임무를 마친 영웅은 공동체의 환호와 애정의 유혹을 물리친 채 석양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이런 영웅상은 망토를 걸친 슈퍼맨으로 대체되었으나, 역할은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 보안관 순찰차. 미국의 경찰공무원 기구가 확립된 이후에도 보안관 제도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치안을 담당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지만, 활동영역이나 임무의 범위, 예산 등에 차이가 있다. 보통 경찰은 '시'나 '마을'의 범위 내에서 활동하며 치안과 교통을 담당하지만, 보안관은 그보다 넓은 '카운티(한국의 '군'에 해당)'를 맡는다.(때에 따라서는 보안관이 특정 시와 치안계약을 맺기도 한다.) 보안관은 범죄의 예방과 대처 이외에 법원과 감옥 운영에 관한 업무도 폭넓게 맡는다. ⓒ 공개자료


▲ 미국의 대표적 슈퍼영웅인 슈퍼맨과 배트맨. ⓒ DC Comics



보안관에서 슈퍼맨으로

1930년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팬텀'과 '슈퍼맨' 등의 슈퍼영웅들은 보안관처럼 일반인과 구분되는 옷을 입고 있지만, 공동체를 구성하는 평범하고 약점 많은 개인으로서 등장한다. 비록 초자연적인 힘으로 정의를 실천하지만, 삶의 고뇌에 관한 한 영웅과 범인의 차이는 몸을 싸고 있는 스판덱스만큼이나 얇다. 

미국의 슈퍼영웅은 고전적 신화의 요소를 충실하게 답습하면서도 미국의 현대적 이상을 효과적으로 반영했다. 신화학자인 블라디미르 프롭과 조지프 캠벨은 문화권을 막론하고 신화에는 유사한 서사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영웅이 집을 떠나 모험을 하며, 그 과정에서 초자연적 힘을 얻어 악당을 물리침으로써 특정 인물이나 공동체를 구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슈퍼영웅엔 이 기본서사틀에 기독교적 구원, 개인주의와 독립의 가치, 그리고 과학적 진보에 대한 믿음이라는 미국적 요소가 덧씌워졌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모호한 미국인 특유의 천진성은 슈퍼영웅을 주류 상업문화로 키워냈다.

'슈퍼맨,' '배트맨,' '캡틴 마블' 등의 주인공들은 '신의 능력과 인간의 약함'을 지닌 구원자 예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최근 들어 모호해지기는 했으나, 전통적으로 이들의 활동은 흔히 '선'과 '악'이라는 기독교적 이분법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슈퍼영웅을 비현실적인 공상세계의 주인공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초기의 슈퍼영웅들은 로봇이나 괴물 대신 극악무도한 범죄자나 타락한 정치인, 또는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 같은 현실적 악당들을 주로 손보았다. 전시에는 나치나 일본군 우두머리에게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비록 전시에는 애국주의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미국의 슈퍼영웅은 보안관이나 민병대처럼 국가 공권력과 미묘한 갈등관계를 형성하곤 한다. 슈퍼영웅은 정의를 위해 일하지만, 공권력의 질투를 사거나 범법자로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국가가 슈퍼영웅의 사이를 갈라놓기도 한다. 슈퍼맨이 정부를 위해 일하게 되자, '자유인' 배트맨은 그를 흠씬 두들겨 팬다. 

슈퍼영웅의 모습이 변해온 과정은 이상적 남성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추적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슈퍼맨은 본래 우락부락한 중년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미지는 점차 젊고 호리호리한 '꽃미남형'으로 변해왔다.

▲ 2차세계대전 당시 애국주의의 상징이 된 슈퍼영웅 캡틴 아메리카. 비록 비현실적인 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지만, 이들의 활동은 구체적인 사회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 Marvel Comics


▲ 히틀러와 일본군을 공격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을 담은 만화표지. ⓒ Marvel Comics


미국의 위기 때마다 찾아온 슈퍼영웅

▲ 미국의 슈퍼영웅은 고전적 신화의 요소에 미국적 특성이 반영된 인물로 그려진다. 기독교적 구원과 선과 악의 이분논리는 주인공들을 움직이는 주요 동기가 된다. ⓒ C. Knowles

크리스토퍼 놀스가 <우리의 신은 스판덱스를 입는다>에서 지적했듯, 슈퍼영웅의 탄생과 부상은 미국의 위기순간과 시기를 같이한다. 1930년대 경제공황에 팬텀, 슈퍼맨 등이 탄생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배트맨, 캡틴 마블, 캡틴 아메리카, 원더우먼 등이 등장했다.

로버트 쥬이트는 <미국 슈퍼영웅의 신화>에서 <매트릭스>의 영웅 '네오'를 'Y2K'로 대표된 세기말 불안의 징후로 해석한다. 이 분석에 따르면 슈퍼영웅은 곤경에 처한 한 사회의 집단무의식이 만들어낸 구세주였던 셈이다.

쥬이트의 책에 따르면, 세계대전 당시 성조기 의상을 입고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는 구세주 영웅의 국가적 동일시였다. 주인공은 악당을 제거하거나 무질서한 군중을 협조적인 시민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선량한 공동체를 구원한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의 '민주주의적 동기'가 '비민주적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미국정부가 국제분쟁 개입에서 일관되게 보였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모순적 태도는 부시행정부의 '선제공격론'과 고문의 합법적 승인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된 미국엔 모든 무력개입을 '숭고한 구원의 행위'로 의미화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쥬이트는 이를 '캡틴 아메리카 콤플렉스(Captain America complex)'라 불렀다.

최근 들어 미국의 슈퍼영웅이 다시금 전성기를 맞고 있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배트맨, 헐크, 헬보이가 스크린을 휩쓸었고, 그 뒤를 <와치맨>, <스피릿>, <캡틴 아메리카>, <그린 애로우>, <플라스틱맨>, <그린랜턴> 등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거나 제작 중이다. 과거의 영웅들이 새로이 조명되는 시점이 미국의 경제침체 및 국제적 영향력 하락과 겹친다는 점은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얼마 전 다시 시카고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차가 고장 났던 지점을 지날 때면 항상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 감사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생각이 있다. 톰처럼 흔쾌히 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미국인들 가운데 '돕는다'는 생각으로 이라크 침공을 찬성한 이도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적잖은 이들이 그 판단에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역시 슈퍼영웅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구원자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근육 못지 않게 의식도 깨어 있어야 하니 말이다.

▲ 이라크에서 민간인 가택을 수색하는 미군. 이라크 여성이 아기를 안은 채 군인을 바라보고 있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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