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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을 위한 동화] 가치있는 미소란?

버림받은 누렁이, 선택받은 야옹이

등록|2008.12.02 19:38 수정|2008.12.02 19:38

처마 밑에 누렁이는 성격이 참 좋습니다. 누렁이의 목에는 언제나 목줄이 감겨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렁이는 크게 괘의치 않았습니다. 주인과 함게 사는 것만으로도 누렁이는 행복했습니다.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비록 쾌적하진 않지만 안정된 집이 있다는 것은 분명 누렁이에게 복이었습니다.

누렁이는 주인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누렁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인을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누렁이는 어떻게 하면 주인을 더 기쁘게 할 수 없을까 고민 했습니다. 순간 좋은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개가 웃으면 주인도 기분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신체적 한계를 무릅쓰고 누렁이는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웃는 연습을 시작 했습니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동물이 있었습니다. 야옹이였습니다. 야옹이는 누렁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누렁이의 행동은 개의 정체성을 망각한 미친 짓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너 완전히 미쳤구나”
양지 바른 툇마루에 앉아 햊볕을 쬐고 있던 야옹이가 누렁이를 보며 한심한 눈빛을 보냅니다.
“주인님이 요즘 너무 힘들어 하잖아. 이렇게 해서라도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어”
누렁이가 힘들게 입 꼬리를 위로 치켜세워 봅니다.
“하하하! 그건 화날 때 얼굴이고. 너 정말 웃기는 개구나”
고양이가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그런가? 이 표정은 어때? 이 표정은?”
누렁이가 오만상을 지어보이며 고양이게 묻습니다.
“안타깝다. 안타까워. 그래봐야 넌 개고 주인은 사람이야. 그럴 필요없어. 그냥 적당히 살어”
고양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고개를 파묻고 햋볕을 쬡니다.

“야! 너는 주인이 저렇게 힘들어 하는데 마음도 아프지 않니? 너도 밥만 얻어먹지 말고 주인을 위해 뭘 할 것인지 생각해 봐!”
누렁이가 야옹이를 원망스런 눈으로 봅니다.
“웃기는 소리 그만해. 나는 나고 주인은 주인이야”

야옹이는 누렁이의 잔소리가 성가신 듯 자리를 뜹니다. 누렁이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야옹이가 야속했습니다. 그날 저녁 먼발치서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워 보입니다. 대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주인의 손에 검은 비닐 봉지와 소주병이 들려 있습니다. 

주인이 누렁이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누렁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할 것 같은 미소를 지어 봅니다. 하루 종일 연습한 웃는 얼굴까지 지어 보지만 주인은 알지 못합니다. 주인이 소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계속 무슨 말을 하는데 누렁이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주인의 눈에서 소주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봐서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주인이 비닐봉지에서 오징어를 꺼냅니다. 짠 냄새가 주인의 몸에서 나는 케케한 냄새랑 어우러져 누렁이의 코를 자극합니다. 주인이 누렁이에게 오징어 다리를 건넵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바다 냄새가 입안을 가득 적십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주인은 술에 취한 채 소주병을 들고 들어옵니다. 덕분에 누렁이는 요즘 오징어랑 과자 먹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주인은 안주는 먹지 않고 소주만 들이켰습니다.
이따금씩 주인이 발길질을 해도 누렁이는 꼬리를 흔들며 주인의 투정을 받아줬습니다. 야옹이는 그런 누렁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일찍 집에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매일 차고 다니던 소주병도 없습니다.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힘들게 미소도 지어봅니다. 그런데 주인은 누렁이에게 따뜻한 미소 한번 주지 않습니다. 누렁이의 밝은 행동은 주인의 눈에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주인이 마당을 둘러봅니다. 양지 바른 툇마루에 야옹이가 나른한 단잠을 자고 있습니다. 주인이 서둘러 방안에 들어가더니 큰 가방을 챙겨 나옵니다. 아무래도 어디론가 떠날 태세입니다. 그때 낯선 사람이 철장을 갖고 마당에 들어섭니다. 누렁이는 본능적으로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았습니다.

누렁이는 낯선 사람을 향해 힘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옹이가 누렁이의 소리에 놀라 그 제서야 눈을 뜹니다. 야옹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직감적으로 주인이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눈치 빠른 야옹이가 조용히 주인 발 아래로 걸어와 몸을 기댑니다.

“아- 요놈 봐라. 애교도 부릴 줄 아네”
낯선 남자가 야옹이를 신기한 듯 안아 봅니다. 야옹이는 낯선 남자의 체취가 싫었지만 폭 안겼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눈을 봅니다.
“요 녀석. 성질도 아주 다소곳하고 귀여운 데요”

낯선 남자가 주인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야옹이가 살짝 미소를 흘립니다. 야옹이의 미소를 처음 본 주인의 얼굴이 밝아집니다. 누렁이는 계속 낯선 남자를 향해 소리지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주인이 누렁이의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발로 찹니다. 누렁이가 뜻하지 않는 주인의 발길질에 깨갱거리며 개집에 숨어 듭니다.

“저 녀석 성질 머리하고는. 아저씨 저 개 얼마에 가져가실 거에요?”
주인이 누렁이를 팔려고 합니다.
“이 고양이는요?”
낯선 남자가 고양이에게서 눈길을 못 뗍니다. 야옹이가 주인에게 다시한번 미소를 보내자 주인의 얼굴이 또 밝아집니다.
“이 고양이는 내가 가져 갈 거고요. 저 개나 좀 두둑히 쳐 주세요”

누렁이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주인이 야속했습니다. 주인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지만, 야옹이의 단 한 번의 미소에 누렁이는 내쳐지고 말았습니다. 누렁이는 주인에게 항상 꼬리 흔들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겨주는 그런 동물에 불과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매일 웃는 낯으로 대하는 사람보다 항상 화난 얼굴을 하고 있던 사람이 가끔씩 한번 웃으면 사람들은 그 미소에 환호하는 것을 가끔씩 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라면 더 하지요.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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