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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자동차산업, 예고된 비정규 퇴출

[기고]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

등록|2008.12.04 21:15 수정|2008.12.04 21:15
자동차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현대·기아차, GM대우, 르노삼성, 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잇따라 감산과 휴업에 들어가면서 26만 명이 종사하고 있는 자동차산업 전반에 고용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의 경우 협력업체의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쌍용차는 관리직사원 안식 휴가 실시 및 비정규 노동자 해고에 돌입했다. 산업 현장에서는 2009년 상반기에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이미 미국의 빅3 자동차 업체들은 올해 들어 3만8천여 명의 인원을 감축했다. 구조조정의 칼날은 우선 비정규 노동자들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을 순회하며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미디어행동네트워크' <미행(美行)>팀이 자동차산업의 현 위기와 비정규 노동자 문제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말]

차량으로 가득찬 현대자동차 수출전용야적장세계 경기불황으로 자동차 시장도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달 24일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전용 차량 야적장에 팔리지 못한 차량들이 가득하다. ⓒ 연합뉴스


최근 쌍용차에서 벌어진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유급휴직 조치와 현대차 에쿠스 단산에 따른 사내하청업체의 계약해지는 경제위기 때마다 자동차산업에서 일어나는 일의 단면이다. 원청이 어렵거나 생산이 위축되면 하청 노동자를 우선 축소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는 방법으로 정규직 고용을 지키는 행태가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어떻게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를 비정규직이라고 먼저 자를 수 있냐고 분개할지 모른다. 점잖은 분들은 노동운동의 생명은 '연대'라며 정규직 노동자와 노조에 고언할 것이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 해고, 비정규 노동자들로만 이뤄진 공장은 이미 현실이 됐다. 결국 구조적 문제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경제위기의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997년 기아자동차 부도로 본격화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완성차 공장과 부품업체  등 모든 곳에서 휘몰아쳤다. 특히 정리해고와 희망퇴직 앞에서 노조는 고용 안정에 몰두해야만 했다.

그러나 회사는 차의 하부토대를 생산하는 플랫폼과 글로벌 생산체제, 카니발 생산라인에 프라이드를 투입하는 이른바 '혼류생산' 방식을 도입하면서 유연생산체제를 갖추었다. 자동화, 모듈화, 서열화,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SCM(공급망 관리)이 바로 그것이다. 자동화는 한마디로 노동력 대신 기계를 투입하는 과정을 총칭한다. 사람 대신 기계가 일을 하면 회사는 공장 가동을 최대화하는 동시에 원하는 만큼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유연생산체제' 가동을 위해 공공연히 이뤄진 외주화

그밖에도 회사는 외주화를 통해 사내에서 하던 업무를 다른 업체로 넘겼다. 외주업체는 사내에 들어와 일을 하기도 하고 물량을 바깥 업체에 맡기기도 한다. 이로써 자동차 생산과정의 주요 라인을 슬림화하는 동시에 유연화했다. 외주화 후엔 한 업체에 물량을 몰아주지 않는다. 비슷한 제품일지라도 차종에 따라 사양에 따라 여러 업체에 나눠준다.

이를 일컬어 이원화라 한다. 최근 이원화는 글로벌화와 연계하여 해외에서 수입하는 경우도 있으며, 국내 부품업체가 해외로 진출한 경우 해외생산 부품을 역수입하기도 한다. 이것은 바이백이다.

그리고 원청 안에서는 물량이관과 전환배치가 활발해지고 있다. 시장 상황과 수요에 따라 판매량이 변동하면 적게 팔리는 차는 적게 만들고 많이 팔리는 차는 많이 만들기 위해 차종을 이 공장 저 공장으로 옮기고(물량이관), 그에 따라 사람도 옮겨다니도록 만들려고 한다(전환배치).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고용안정과 일자리 창출? 실제론 노동시장 유연화 추진

1998년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을 이미 경험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2000년 이후 자동차산업이 다시 호황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대대적인 인력 충원을 요구하지 않았다. 자동차산업이 계속 호황을 구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청년층과 여성, 노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비정규 공장을, 하도급업체들로 쪼개진 공장을 만들었다. 지역에서 사람을 모으고 지역의 평균 임금보다 조금 더 높은 임금을 주면서 신규 고용을 '창출'했다. 이 때문에 동희오토처럼 완성차를 생산하는 비정규 공장이 만들어졌고 현대모비스처럼 모듈부품을 생산하는 비정규 공장도 생겼다. 완성차 사내하청 역시 이런 구조와 과정을 거쳐서 확산됐다.

여기까지가 자동차 산업 유연생산체제의 역사인 동시에 구조이다. 이런 역사와 구조가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하고 계약을 취소하는 현실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경제위기 때마다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삼는 현실을 넘어서려면 자동차산업의 유연생산체제를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는다면 결국 정규직의 도덕과 양심에 호소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외로운 투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우선, 노동시간단축이 필요하다. 주40시간제, 주5일제보다 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나아가 교대제 개선도 필요하다. 사람을 줄여서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늘려서 더 적게, 더 편하게 일하는 생산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산업정책과 기업경영에 대한 노사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기업은 주주만의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소비자 등 이해당사자의 것이기도 하다. 더 이상 주주와 경영진에 의해 기업 경영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일을 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자본이 허락하는 범위를 넘어야 한다. 경제위기 시대, 자본이익이 감소하는 현재, 평온한 해결책은 없다.

어두운 GM대우지난달 18일 저녁, 잔업이 사라진 인천 부평구 청천동 GM대우 부평공장을 인근 아파트에서 바라본 모습. 공장의 모습이 불빛을 내뿜고 있는 주변 아파트와 달리 매우 어두운 모습이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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