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일본 항복, 잇따른 '광기의 자살극들'
[김갑수 역사팩션 163] 3부 '열두 개의 눈동자' 편
원폭 투하를 보고 받은 일왕은 도고 외상에게 전쟁 종결을 지시했다.
"전쟁은 이제 끝났다. 그런 종류의 무기가 사용된 이상, 전쟁의 수행은 불가능하다.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려고 전쟁 종결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가능한 한 조속히 전쟁을 끝내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자."
그러나 육군 대신 아나미는 끝까지 결사 항전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지도자회의에서 항전을 외치던 날 오전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오후에 속개된 회의에서도 여전히 항복을 반대했다.
"만약 이대로 전쟁을 종결한다면 우리 일본 민족은 정신적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적의 본토 상륙을 기다렸다가 일대 타격을 가한 뒤 좋은 조건을 가지고 평화 교섭에 임해야 한다."
군부의 눈치를 살피던 일왕
이미 스즈키 수상과 도고 외상은 일왕과 의견을 맞춰놓고 있었다. 거기에다 육군대신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요나미 해군 대신도 이미 항복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해군 대신은 다수결로 결정할 경우 육군 대신이 반발할 것이므로 각자 의견을 개진한 후 천황이 단안을 내리는 방식을 선택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윽고 즈즈키 수상이 입을 열었다.
"회의를 몇 시간째 진행하고 있지만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일각의 유예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극히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존하의 의견을 여쭈어 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일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료들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육군대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일왕은 입을 열지 않고 육군 대신을 이윽히 바라만 보았다. 그러자 육군대신은 왕과 마주친 눈길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렸다.
왕은 자리에 앉은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동아전쟁이 시작된 이래 육해군이 밝힌 계획과 현재의 결과는 다르지 않은가? 지금도 육해군은 승산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 참모총장으로부터 해안선 방비에 관한 보고를 듣고 시종무관을 현지에 보내어 그에 대하여 조사하도록 했다. 시종무관이 조사한 바는 참모총장의 보고 내용과 달랐다. 참모총장은 사단 장비가 완비되어 있다고 했지만, 병사들에게는 총검도 지급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본토 결전에 돌입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일본 민족이 몰살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임무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일본을 자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제는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게 하여, 그들이 다시 일어나 일본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는 일은 세계 인류에게도 불행한 짓이다. 물론 충용한 군대의 무장 해제나 전쟁 책임자의 처벌은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고통을 감수해야 할 시기다. 나는 삼국간섭 때의 메이지 천황의 심경을 헤아리고 있다."
일왕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각료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울먹이는 어조로 선언했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나는 전쟁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왕의 발언이 이렇게 긴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사실 일본이 원자탄까지 맞게 된 데에는 일왕 역시 일단의 책임이 있었다. 그는 얼마든지 원자탄 투하 이전에 전쟁을 끝낼 수가 있었다. 군부의 눈치를 보았던 일왕의 우유부단이 지나치게 길었던 것이다.
일본 군인들, 광기의 자살 잇따르다
일왕이 전쟁 종결 결정을 내리자, 일본 군부는 수상에게 다짐을 받았다.
"만약 미국이 천황제를 부정하면 다시 전쟁으로 가는 겁니다."
수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왕은 8월 12일 오후 전체 황족회의를 소집했다. 황족 회의에는 조선의 영친왕도 황실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황족 전원은 왕의 결정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황족 일동은 일치 협력하여 성지를 보익하겠습니다."
황족 중 연장자인 나시모토가 대표로 발언했다. 그는 영친왕의 장인, 즉 이방자를 장녀로 둔 모사 형 귀족이었다. 전후 그는 황족 중 유일하게 전범 용의자로 체포된다.
마침내 8월 15일 정오, 일왕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육성으로 패전을 알린다. 항복을 전후해서 일본 군인들의 자결이 잇따랐다. 육군대신 아나미는 종전 칙서에 서명을 마친 후, '죽음으로써 대죄의 용서를 구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할복했다. 그는 같은 군인으로 항복에 찬성한 해군대신을 저주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요나미 미츠마사를 죽여라!"
8월 15일 오후에는 규슈에서 해군 항공 작전을 지휘하던 우가키 중장이 오이타 항공 기지에서 발진하여 미군 함정 커티스호에 처박혀 자살했다. 그는 최후의 가미카제가 된 셈이었다. 16일 새벽에는 가미카제 창시자 오니시가 할복했고, 동부 군관부 사령관 다나카 시즈이치 대장과 전 육군 참모총장 스기야마 하지메 원수는 집무실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스기야마의 자살 소식을 들은 그의 부인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 뒤를 따라 죽었다. 전 관동군 사령관 혼조 시게루 대장은 전범 용의자로 체포 영장이 떨어지자 뒤늦게 자살한다. 자살 군인들은 그 외에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전쟁은 이제 끝났다. 그런 종류의 무기가 사용된 이상, 전쟁의 수행은 불가능하다.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려고 전쟁 종결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가능한 한 조속히 전쟁을 끝내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자."
"만약 이대로 전쟁을 종결한다면 우리 일본 민족은 정신적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적의 본토 상륙을 기다렸다가 일대 타격을 가한 뒤 좋은 조건을 가지고 평화 교섭에 임해야 한다."
군부의 눈치를 살피던 일왕
이미 스즈키 수상과 도고 외상은 일왕과 의견을 맞춰놓고 있었다. 거기에다 육군대신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요나미 해군 대신도 이미 항복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해군 대신은 다수결로 결정할 경우 육군 대신이 반발할 것이므로 각자 의견을 개진한 후 천황이 단안을 내리는 방식을 선택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윽고 즈즈키 수상이 입을 열었다.
"회의를 몇 시간째 진행하고 있지만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일각의 유예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극히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존하의 의견을 여쭈어 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일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료들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육군대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일왕은 입을 열지 않고 육군 대신을 이윽히 바라만 보았다. 그러자 육군대신은 왕과 마주친 눈길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렸다.
왕은 자리에 앉은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동아전쟁이 시작된 이래 육해군이 밝힌 계획과 현재의 결과는 다르지 않은가? 지금도 육해군은 승산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 참모총장으로부터 해안선 방비에 관한 보고를 듣고 시종무관을 현지에 보내어 그에 대하여 조사하도록 했다. 시종무관이 조사한 바는 참모총장의 보고 내용과 달랐다. 참모총장은 사단 장비가 완비되어 있다고 했지만, 병사들에게는 총검도 지급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본토 결전에 돌입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일본 민족이 몰살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임무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일본을 자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제는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게 하여, 그들이 다시 일어나 일본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는 일은 세계 인류에게도 불행한 짓이다. 물론 충용한 군대의 무장 해제나 전쟁 책임자의 처벌은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고통을 감수해야 할 시기다. 나는 삼국간섭 때의 메이지 천황의 심경을 헤아리고 있다."
일왕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각료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울먹이는 어조로 선언했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나는 전쟁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왕의 발언이 이렇게 긴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사실 일본이 원자탄까지 맞게 된 데에는 일왕 역시 일단의 책임이 있었다. 그는 얼마든지 원자탄 투하 이전에 전쟁을 끝낼 수가 있었다. 군부의 눈치를 보았던 일왕의 우유부단이 지나치게 길었던 것이다.
일본 군인들, 광기의 자살 잇따르다
일왕이 전쟁 종결 결정을 내리자, 일본 군부는 수상에게 다짐을 받았다.
"만약 미국이 천황제를 부정하면 다시 전쟁으로 가는 겁니다."
수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왕은 8월 12일 오후 전체 황족회의를 소집했다. 황족 회의에는 조선의 영친왕도 황실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황족 전원은 왕의 결정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황족 일동은 일치 협력하여 성지를 보익하겠습니다."
황족 중 연장자인 나시모토가 대표로 발언했다. 그는 영친왕의 장인, 즉 이방자를 장녀로 둔 모사 형 귀족이었다. 전후 그는 황족 중 유일하게 전범 용의자로 체포된다.
마침내 8월 15일 정오, 일왕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육성으로 패전을 알린다. 항복을 전후해서 일본 군인들의 자결이 잇따랐다. 육군대신 아나미는 종전 칙서에 서명을 마친 후, '죽음으로써 대죄의 용서를 구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할복했다. 그는 같은 군인으로 항복에 찬성한 해군대신을 저주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요나미 미츠마사를 죽여라!"
8월 15일 오후에는 규슈에서 해군 항공 작전을 지휘하던 우가키 중장이 오이타 항공 기지에서 발진하여 미군 함정 커티스호에 처박혀 자살했다. 그는 최후의 가미카제가 된 셈이었다. 16일 새벽에는 가미카제 창시자 오니시가 할복했고, 동부 군관부 사령관 다나카 시즈이치 대장과 전 육군 참모총장 스기야마 하지메 원수는 집무실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스기야마의 자살 소식을 들은 그의 부인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 뒤를 따라 죽었다. 전 관동군 사령관 혼조 시게루 대장은 전범 용의자로 체포 영장이 떨어지자 뒤늦게 자살한다. 자살 군인들은 그 외에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제국주의의 실상과 이에 도전한하는 매혹적인 한국인들이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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