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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55) 업그레이드

[우리 말에 마음쓰기 490] ‘건강관이 업그레이드된’, ‘네비게이션 업그레이드’ 다듬기

등록|2008.12.04 11:11 수정|2008.12.04 11:11

ㄱ. 업그레이드(upgrade) 1

.. 건강에 대한 관점, 즉 건강관(健康觀)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  《손영기-나는 풀 먹는 한의사다》(북라인,2001) 13쪽

 “건강(健康)에 대(對)한 관점(觀點)”이라고 적은 다음 곧바로 ‘건강관(健康觀)’이라는 낱말을 적어 넣습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셈입니다. 말 그대로 “건강에 대한 관점”이니 건강관일 텐데, 건강을 바라보는 눈이면 ‘건강눈’이 되려나요. “몸을 생각하는 눈”이나 “몸을 헤아리는 눈”으로 풀어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즉(卽)’은 ‘곧’이나 ‘그러니까’로 손보고, “업그레이드된 것이다”는 “업그레이드되었다”로 손봅니다.

 ┌ 업그레이드(upgrade)
 │  (1) ‘개선’, ‘상승’, ‘승급’으로 순화
 │  (2)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기존 제품보다 뛰어난 새것으로
 │      변경하는 일
 │   -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다
 │
 ├ 즉 건강관(健康觀)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 그러니까 몸을 보는 눈이 새로워진 셈이다
 │→ 곧 몸을 헤아리는 눈이 달라졌다고 하겠다
 │→ 이른바 몸을 걱정하는 매무새가 나아졌다
 │→ 말하자면 몸을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 …

 셈틀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습니다. 한 해는커녕 한두 달만 되어도 거의 곱배기로 나아진다고 할 만합니다. 새로운 솜씨가 늘고 새로운 재주가 덧붙습니다. 나아지는 셈틀은 ‘좋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라졌다’고 할 수 있고 ‘거듭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다
 │
 │→ 컴퓨터를 새로 바꾸다
 │→ 컴퓨터를 더 나은 녀석으로 바꾸다
 │→ 새 컴퓨터를 들이다
 └ …

 국어사전 풀이를 보면 ‘업그레이드’를 ‘개선’이나 ‘상승’이나 ‘승급’으로 고쳐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기글이 쓰인 자리를 헤아리면, 한자말 ‘성숙(成熟)’으로 으레 가리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 업그레이드 (x)
 ├ 성숙 (x)
 │
 ├ 무르익다 / 나아지다 / 좋아지다 / 거듭나다
 └ 새로워지다 / 달라지다 / 바뀌다

 한자말 ‘성숙’이든 영어 ‘업그레이드’든 써야 할 자리라면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굳이 안 써도 될 자리라면 안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결 알맞게 쓰던 말이 있으면 알맞게 쓸 말을 넣고, 예부터 넉넉히 주고받던 말이 있다면 지금이나 앞으로나 넉넉히 주고받으면 될 말을 넣어 줍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도 영어를 가르치는 판이니, ‘업그레이드’ 같은 낱말쯤이야, 더구나 요새는 누구나 셈틀을 쓰고 있으니까 ‘업그레이드’ 같은 낱말이야 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냥저냥 쓰고 있는데, ‘컴퓨터’도 나라밖 말인데, ‘업그레이드’도 이런 나라밖 말에 맞출 때가 더 나아 보이는데, 또 ‘올리기-내리기’를 하기보다는 ‘업로드-다운로드’를 하는데, 느낌이나 흐름을 ‘나아지게’ 하거나 ‘새롭게’ 하거나 ‘올려주’기보다 ‘업’한다고 하는데, 골치 아프게 이런저런 말뿌리와 말밑을 뭐하러 살피느냐고 따질 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이런 말도 쓰고 저런 말도 쓰겠지요. 가끔은 샛길로 새면서 노닥거리기도 할 테고요. ‘빵굼터’라는 빵집 이름을 ‘Bbang goon teo’로 고쳐서 쓰는 요즈음 우리들이니, ‘업그레이드’ 같은 낱말을 쓰는 일이란 아무것도 아닌지 모를 노릇입니다.

 알맞는 자리 찾기나 제 길 걷기란 부질없다고 느낄 수 있어요. 영어 한 마디라도 더 쓰면서 나라밖 나들이를 할 때에 도움이 된다고 여길 수 있어요. 새로운 낱말을 한 가지라도 더 쓰면서 자기 생각이 넓어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정작 부질없는 일이란, 참으로 도움되는 일이란, 참으로 생각이 넓어지는 일이란 무엇인가요.


ㄴ. 업그레이드(upgrade) 2

.. “여보, 내 차 네비게이션 업그레이드(어디서 주워듣긴 해가지고……)해야 되잖아요? 내 것은 오래된 거라 새로 난 길은 몰라요.” ..  《황안나-내 나이가 어때서?》(샨티,2005) 172쪽

 보기글에서는 ‘내 차’라고 말합니다. 요사이는 ‘나의 차’라고 많이들 쓰고 있는 한편, ‘마이 카’라고 쓰는 분마저 있으나, ‘내 차’라고 알맞게 적어 주어서 반갑습니다. “내 것은 오래된 거라”는 “내 것은 오래되어서”로 다듬습니다.

 ┌ 업그레이드해야 되잖아요?
 │
 │→ 바꿔야 되잖아요?
 │→ 갈아야 되잖아요?
 │→ 새로 고쳐야 되잖아요?
 │→ 새로 넣어야 되잖아요?
 └ …

 예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가 ‘어디서 주워듣긴 해 가지고’‘업그레이드’라는 낱말을 글에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예순 넘긴 할머니는 주책바가지라서 이러한 낱말을 넣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요새는 다들 ‘업그레이드’만 하고 있으니, 당신도 이 세상 흐름에 발맞추면서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고 느꼈기에 이처럼 말했다고 봅니다. 할머니가 예순을 넘기도록 살아오면서 써 온 ‘갈다’와 ‘바꾸다’와 ‘고치다’와 ‘새로하다’ 같은 낱말은, 이제부터 영어로 ‘업그레이드’ 해 주어야 한다고 느끼니 이와 같이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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