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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80년대 드라마는 얼마나 위대했나

등록|2008.12.04 11:19 수정|2008.12.04 14:43
80년대는 위대했다. 웬 케케묵은 옛날이야긴가 하겠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그때는 그야말로 드라마의 전성기였다. 지금처럼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충실하고 알뜰한 이야기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 형식과 내용도 다양했고, 편성도 유연했다.

그 때도 역시 방송 3사간의 시청률 경쟁은 극심했지만, 누가 먼저 새로운 형식과 소재를 만들어내느냐 경쟁했고, 그 결과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태어나고 새롭게 편성되었다. PD들은 적극적으로 기획을 했고 실제로 70~80% 이상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드라마의 전성기이자 PD들의 전성기였다. 방송제작의 주체인 PD들이 얼마나 생명력 있고 창의성 있게 일하느냐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짐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 KBS <드라마시티> 한 장면. ⓒ KBS


생각해보라. 저녁 8시 황금시간대에 연속극 대신 요일마다 다른 단막극이 줄줄이 편성되었고, 장르도 얼마나 다양했는지를. 현대멜로물·사극·시대극 외에 서민들 삶에 밀착된 서민드라마·어린이극·청소년물·농촌드라마·테마드라마 등 너무나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다.

20년 넘게 장수한 <전원일기> 그리고 <암행어사>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등이 그 당시 시작됐고, 거기다 <베스트셀러극장> <TV문학관> 등 문예물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1986년에 처음으로 시도된 미니시리즈도 8부씩 한 달에 한편, 일년에 열두편의 다양한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는 의도로 시작해서 그 다양한 소재와 빠른 전개로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런데 그 뒤 16부·24부작의 기형적인 미니시리즈로 변질돼 버렸으니 ….

다양성은 사라지고 획일성만 남은 오늘 드라마 현실

20여 년 전의 옛날 일을 꺼내는 까닭은 지금과 비교해보고 오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보고자 하는 이유에서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지금의 우리 상황을 냉정히 돌아보자. 다양성은 사라지고 획일성만 남았다. 단막드라마는 다 사라지고 무한정 길기만 하고 극단적인 요소들만 모아놓은 연속극, 월화, 수목드라마, 그리고 주말드라마가 맞붙는 죽고살기식의 살벌한 편성. 네가 한다면 나도 한다는 식의 막가파식 발상. 소재주의에 빠져 자극적인 소재로 세상의 이목을 모아보자는 한탕주의. 이런 점에서는 공영 민영 할 것 없이 다 같이 동참했다. 이러다 보니 전까지는 무관심하던 고구려 소재 사극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너도나도 거액을 들인 대작을 쏟아내어 '연개소문'이란 인물이 동시에 그것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화면을 휩쓸었던 기현상도 있었다.

마치 마주 달리는 기차와 같다. 이러한 끝없는 소모전은 국민들이 식상해지기 이전에 이미 제작진이 먼저 지친다. 아니 우리 분야를 황폐화 시킨다. 우리 방송, 드라마의 역사가 얼마인데 아직도 뚜렷한 방향감각 없이 70·80년대보다 못한 이런 발상으로 제작을 한단 말인가0! 결과는 공멸.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인류의 삶이 날로 나아져야하는 게 역사발전이라는 명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지만 과연 그런가 묻고 싶다. 드라마 분야에 있어서만은 후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한류. 한동안 우리는 이 단어에 열광했고 고무되었다. 한류를 주도했던 드라마의 새 희망으로 믿었다. 우리 뿐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흥분하여 떠들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저기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물론 한류에 성과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일본, 중국, 동남아에서 놀라운 성과를 올렸고, 아직도 그 효과는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그 불빛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음을 본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한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 믿음이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들뜨게 만들고 자만에 빠지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더욱 겸손하게 우리의 콘텐츠 장점을 다듬고 키웠어야 했는데, 창의성 없이 자기복제만 반복한 결과는 아닐는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이 있다. 소리만 요란한데 막상 가보니 묵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잔 뿐이더라는. 또 차린 건 많은데 먹을 게 없다는 말도 있다. 그야말로 그럴 듯하게 차려지긴 했지만 막상 숟가락 갈 만한 곳이 없고, 먹고 나도 수입산 재료에다 인공조미료를 너무 친 탓인지 속이 느끼한 그런 음식을 누가 좋아할 것인가. 한 마디로 외화내빈. 실속이 없다는 것. 그 동안 우리 드라마가 바로 이런 꼴이 아니었을까 싶다.
   

▲ MBC 설특집 드라마 <쑥부쟁이> ⓒ MBC


몇백억을 쏟아부은 대작이니 톱스타 누구누구를 캐스팅 했니 하며 요란하게 시작된 드라마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속빈 강정 꼴로 허술하기 짝이 없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도 불분명한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봐왔는가. 잔뜩 기대를 가졌던 시청자들은 실망을 거듭하다가 이젠 소문난 잔치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조용한 가운데 소박한 모습의 잔치에 더 먹을 게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인구 5천만이 밑도는 나라에서 수백억원이 드는 드라마를 이렇게 겁 없이 제작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한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 자만에 빠지게 만들다

왜 이렇게 겉치장을 하고 호들갑을 떨게 되었을까? 뒷감당도 못할 거면서 큰 소리만 쳐대는 이런 과대포장은 어떻게 해서 시작된 걸까. 아마도 이것도 과도한 상업주의·한탕주의의 산물일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더라고 혹시 내용이 부실하고 내세울 게 없으니까 더 과대포장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자. PD들은 자기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혹시나 자만하고 오만하지는 않았는가. 드라마가 근본적으로 인간을 다루는 매체라면 그 본질을 추구하는데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본질에 대한 끈질긴 탐구는 포기하고 외향적인 치장에 몰두한 나머지 그 결과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자들을 떠나보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혹시 한 순간의 인기에 편승하여 한탕주의에 빠졌던 일은 없었던가? 내 생각, 내 이웃의 이야기는 제쳐놓고 새로운 걸 한다는 명분하에 사회적인 화제를 일으킬 센세이셜한 소재만을 찾는 소재주의에 빠진 건 아닌지?  우리의 문학작품보다는 일본만화를 보느라 밤을 새우지는 않았는지?

요즘의 경제난 이전에도 드라마의 시청률은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타 매체의 증가로 인한 결과라고만 보기엔 석연찮다. 오랜 시간 거듭된 시행착오, 어설픈 장인의식, 그리고 우리의 보편적인 삶과 유리된 국적불명의 드라마들이 결국은 많은 시청자들을 떠나보내지는 않았는지. 극이 재미없고 감동이 없다면 관객은 중간에라도 일어난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일이다.

방송의 방향키는 PD가 쥐고 있다. PD들이 신념을 잃고 방향감각을 상실한다면 더 이상 믿을 게 없다. PD의 생명은 기획력이다. 연출력도 새로운 기획을 할 수 있는 창의성에서 나온다. 당연히 제작의 중심은 PD이다. 기획임무 대부분이 작가에게 넘어가고 작가가 해오는 것으로 살림을 꾸려간다면 이미 가장으로서의 임무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능력이 검증된 좋은 작가, 인기스타와 같이 작품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심지 있는 피디라면 그것에만 기대지는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새로운 방향을 창조해 내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테크닉만 승한 기능인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찾을 것이다.

얻은 건 테크닉이요, 잃은 건 정신이라면 너무 심한 말인가? PD들이 본래의 자리를 회복해야한다. 기획 제작의 중심에 우뚝 서야한다. 모든 게 PD의 책임이고 동시에 절대권한이다. PD의 카리스마는 날 무딘 칼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명실상부 제작의 중심의 서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이다. 회사경영진이 어떠니 작가·연기자가 어떠니 하며 혹시나 외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외주제작 때문이니 어떠니 하는 것도 본질에 어긋나는 논쟁이다. 본사와 외주제작사는 공생협력의 관계인데, 밥그릇 싸움이나 하는 사이로만 인식한다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언제까지 경제 탓, 구조 탓만 외치며 주저앉아 스스로 살 길을 찾지 않는다면 누가 와서 일으켜 줄 것인가.

▲ KBS <TV문학관> 한 장면. ⓒ KBS


경제난으로 인한 광고의 감소, 과도한 제작비 출혈, 전반적인 시청률 하락 등의 이유로 드라마의 퇴조는 기정사실이 되는 듯하다. 드라마가 현재보다 현격히 줄어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 동안 지나치게 드라마가 많았다는 지적도 가슴이 쓰리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곧 드라마PD들이 설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마당에 우리가 할 수 있은 무엇일까? 강 건너 불로만 보고 있을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마음을 다잡고, 신발끈을 다시 고쳐 신고, 시대와 상황에 맞는 기획을 하고, 제작비가 부족하다면 적은 예산의 알찬 내용으로 승부를 봐야할 것이다. 그런 한 편, 우리의 역사의식을 높이고 삶을 총체적으로 그리는 대작이 필요하다면 그 땐 선택과 집중의 원리로 제작하면 될 일이다. 대신 유사품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저질 불량드라마'는 우리 스스로 정화작업에 나서서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자기만의 어떤 이론이나 아집도 버리고 시장원리에 충실하면 된다는 말이다.

드라마 퇴조는 기정사실, 다양성 통해 돌파구 마련해야

동시에 드라마의 다양성을 되찾아야 한다. 현재의 연속극 위주의 소모적이고 퇴행적인 풍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보여줘야 한다. 어린이·청소년·농촌·서민·문학성 있는 작품 등 드라마 본래의 제 얼굴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건 바로 방송드라마가 국민에게서 부여받은 소명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폐지된 단막극을 부활하여야 한다. 방송 3사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깡그리 없애버린 단막극.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폐지를 했을 때는 나름대로의 고충도 있었을 것이다.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데다 매번 힘만 들고 그런데도 돈은 되지 않는다는 이유이리라. 그러나 그건 눈앞의 현상에 급급한 결정이었으며 득보다 실이 엄청 큰 조치였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작은 단막극 한 편 속에는 거의 무한의 가능성과 무형의 자산이 숨겨져 있음을 왜 간과하는 것일까.

단막극이 필요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다양한 내용의 단막극을 통하여 드라마 제작의 필수요건, 즉 작가·배우·연출자가 길러지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놀 마당이 없는데 어떻게 능력 있는 작가가 발굴되며 유망한 연기자가 선을 보이고, 또 어떻게 신인 연출자가 그 실력을 갈고 닦는단 말인가. 이 모두는 방송사가 일부러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키워내야 할 자산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대패질도 제대로 못해본 신참에게 궁궐 대목수를 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날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면에서도 그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것은 방송사 내부의 사정일 뿐, 시청자를 위해서라도 단막극을 부활시켜야 한다. 많은 시청자들은 주제가 뚜렷하고 영상이 뛰어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단막극을 간절히 원한다. 시청자는 좋은 드라마 한 편을 볼 권리가 있고, 방송사는 이를 제작할 의무가 있기에 이 문제는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공감은 하는데 돈이 안 된다고? 그럼 잘 팔리지 않는다고 물건을 아예 없애버리는 동대문 옷장사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돈 되는 장사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마땅히 해야할 사명감도 버리고 또 명분마저 잃는다면 얻을 게 무엇일까.

드라마에 희망이 없다. 이 체제대로 가다간 다 망한다. 너무 절망적이다. 아예 없어지진 않겠지만 앞으로 연속극 몇 개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 어렵던 IMF시절보다 광고가 절반에 미친다. 이런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장 각광받는 분야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우리들의 자존심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드라마를 천직으로 알고 사랑해온 사람이면 누구나 참담한 기분에다 자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어려운 현실은 인정하면서도 절망적인 포기를 받아들이고 싶진 않다. 위기를 절감한다는 자체가 역설적으로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증거 아닐까. 이러다 앞으로는 드라마가 없어진다고?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서민들은 무슨 재미로 살라고? 그들의 꿈을 채워줄 드라마를 없애다니?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드라마는 계속된다

드라마란 장르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의 역사와 같이 해온 장르이다. 인간에게 꿈과 용기를 주고 생의 희로애락을 가장 실감나게 전달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수단이었다. 어떤 어려운 때나 급박한 상황에도 민중들은 그들의 삶을 지키고 유지했듯이 드라마는 계속된다. 그래도 막은 오른다는 말이 있듯이 어떠한 경우에도 꿈을 포기할 수 없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장금> <쑥부쟁이> <엄마가 뿔났다> <베토벤 바이러스>.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 한 드라마에는 희망이 있다. 아직도 방송의 중심에 우뚝 서있을 것이며, 사람들의 사랑도 잃지 않을 것이며 최소한 소박데기 신세는 당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누구 말대로, 잔치는 끝났다. 좋은 시절은 다 가고 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초겨울일 뿐이고 곧 이어 한겨울이 올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혹독한 한파를 견뎌낼 수 있을까.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의 생각에 잠겨볼 일이다. PD라는 내 직업, 그리고 드라마는 왜 하는가? 내면에 시선을 돌려봐야 한다. 겨울은 길고 춥지만, 곧 봄이 올 거고 눈 덮인 땅 속에서는 이 순간에도 새싹이 움트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하지 않는가. 시련을 겪은 후에 새로 태어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울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리고 이 모든 우려가 선배 PD의 기우로 끝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MBC <베스트극장> 한 장면. ⓒ MBC


덧붙이는 글 김한영씨는 드라마 연출가(전 MBC·SBS P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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