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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함에 벽은 없다

합격의 어떤 소재(素材)

등록|2008.12.05 11:34 수정|2008.12.05 11:34

당시는 사진에서처럼 괜스레 ‘개폼’도 잡아보았습니다 ⓒ 홍경석



지금으로부터 얼추 15~6년 전의 일이다.
지인의 소개로 새로 개업하는 모 주식회사
계열 주유소의 소장 공모에 응시하게 되었다.

늘상 비정규직 영업사원으로만 맴돌다가 모처럼 정규직의 직장에
취업한다는 설렘에 집에서 거울을 보고 몇 번이나 면접 리허설을 했다.
이윽고 면접일이 도래했다.

내 차례가 되자 다리까지 후들거렸지만 당당함을 잃어선 죽도 밥도 안 되는 법이었다.
“어떻게 조속히 경영성과를 낼 수 있을까를 얘기해 보세요.”

면접 준비 과정에서 예행 연습했던 걸 주저 없이 꺼내 펼쳐보였다.
“24시간 풀(FULL) 영업 체제를 도입하고
주유원 이상으로 몸소 뛰는 소장이 되겠습니다!”
면접에 당당히 합격하여 소장이 되었다.

주말과 휴일이면 더 바쁜 주유소였다.
명절엔 장손임에도 고향에 가지 못 하면서까지 주유소 소장의 직분에 충실했다.
하루 건너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강행군의 고군분투로써 매출 향상에도 진력했다.

하지만 당시부터 나대지(裸垈地)에 대한 정부의 중과(重科) 방침에
놀란 땅임자들이 우후죽순으로 주유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가히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주유소 간의 손님 유치하기 격돌이 벌어지게 되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매출은 하강곡선을
벗어나지 못 하는 노이무공(勞而無功)의 연속이었다.
입사 때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음에
한동안 자책한 나는 결국 스스로 사표를 내고 퇴직했다.
그건 ‘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평소의 사관이 오롯이 작용한 때문이었다.

지난 일요일, 나는 모 방송국의 퀴즈 프로그램 지역예선에 나갔다.
이 방송의 하이라이트인 ‘달인’에 등극하여 그 엄청난 상금을 쟁취할 요량에서였다.
하여 당면한 빈곤의 거미줄을 기필코 걷어내고만 싶었다.

1차 필기시험을 거치자 두근거리는 2차 면접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별로 떨리지도 않았다.
평소 가슴에 담아두었던 소회와 결심을 낱낱이 드러내면 그 뿐이었다.

“반드시 방송에 출연하여 달인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달인이 된다면 그 상금의 일부를 반드시 대학 장학금으로 기부할 겁니다.
아울러 하고 싶었던 얘기도 맘껏 하고 싶습니다!”

이튿날 그 방송의 인터넷 공지에서 나의 최종 합격을 확인했다.
유추컨대 면접을 볼 적에 나의 솔직함과
당당한 자신감이 합격의 소재(素材)이지 싶었다.
이제 남은 건 그 방송에서 출제 가능한 문제에
대비하면서 나 자신의 무지(無知)에 지혜의 샘물을 마구 퍼붓는 일이다.

예전 영업소장을 할 때 신입사원을 모집하여
중견사원으로 정착시키는 일도 나의 주 업무였다.
신입사원의 면접시험과 교육도 내가 거의 주관하였다.

그렇지만 면접시험에서 당당함이 결여되거나 쭈뼛쭈뼛하는
사람치고 안착은(安着)커녕 중도에 달아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청년취업이 여전히 백척간두와도 같은 즈음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면접시험을 볼 적에 자신감을 잃지 말고
자신의 철학과 미래의 비전 제시까지를 쾌도난마(快刀亂麻)식으로
밀어붙인다면 그 또한 난제(難題)는 아니란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중앙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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