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덮고도 옛노래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집중서평
옛노래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의 옛 노래가 나에게 전해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것은 두 번의 죽음 때문이다. 식민지 시절 문화 말살 정책과 식민지 시대의 한국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배척하고 스스로 문화적 단절에 나서면서 옛 노래는 여염집이나 저잣거리에서 사라지고 소수의 전수자들에 의해서만 연구되고 전승되었다.
두 번째 죽음은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학교 선생님들이 제 아무리 옛 노래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입시'라는 압박 속에서 차분히 뜯어볼 여지가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학생들은 옛 노래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교감하지 못하기에 '낯선 말'로 이루어진 매우 어려운 '시험문제'일 따름이다. 조선의 영혼을 듬뿍 머금은 노래의 정수가 현대인과 만나기도 전에 '학교'라는 공간에서 유감스러운 첫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벌써 이십여 년도 훨씬 전에 국어 교과서 속에서 만난 시조는 다만 외우고 시험보아야 할 괴로운 대상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일부러 시조를 찾을 일도 또 시조를 읊어댈 일도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누리꾼 '재윤맘'의 리뷰)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인물과사상사)의 작가 김용찬 교수(순천대 국어교육과)는 이런 단절의 지점을 내내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해서든 옛 노래와 현대인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를 오랫동안 해왔다.
어디 옛노래뿐이랴? 현대시 역시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시인은 오늘날 완전히 사라졌으며, 시도 잘 읽히지 않는다. 김용찬 교수는 시 전체의 현실을 걱정하며, 어떻게 하면 세상 속에 시를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다. <시로 읽는 세상>(이슈투데이)이라는 책은 김소월, 김수영에서부터 최영미 등 근래의 시인까지 아우르며 작품세계와 현실과의 교점을 구수한 입담과 편안한 어조로 소개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글은 "조선 시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전개"(jjolpcc)된다.
일단 떠나 보자, 옛노래에 흥얼거리며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그곳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조상들의 멋스러움과 여유로움이 부럽기만 하다. 나도 모르게 추임새도 넣게 된다. 좋쿠나~! 암만~!(타오)
옛 노래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작가가 들인 공이 그대로 전달된다. 스무 꼭지 각 장의 제목은 시가의 첫 장으로 달았고, 각 주제마다 관련된 그림을 넣어서 향취를 돋우었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작가의 힘에서 나온다. 가르치는 듯한 위엄도 없고 전문가적 천착도 드러나지 않은 담백하고 평이한 해설은 무척이나 경제적이다. 옛 노래의 시대와 인물들을 짚어내면서 살짝 현재 우리들의 현실을 환기해 준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인지상정과 정치인들의 중상모략, 보편적인 인간애가 흘러나온다. 어느덧 당대인과 내가 같은 얼굴로 만나게 된다.
누리꾼 '피그말리온효과'는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지루할 것 같아서 한쪽 구석으로 치워 두었지만 잠결에 화장실에서 이 책을 읽어 보니 자신도 모르게 책 속에 푹 빠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만약 이 책을 던져둔 채 그냥 지났더라면 후회막급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옛 노래를 혐오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다만 제대로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선조들이 읊으며 놀던 가락이 숨겨져 있고 함께 놀고 싶은 욕망도 내재해 있다. 다만 심금을 어떻게 울릴 것인가가 관건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옛 노래와 만날 수 있을까? 작가는 머리말을 통해서 시조가 담고 있는 의미만을 해석하지 말고 그 시조가 담고 있는 시대의 풍경을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독자가 이러한 인식을 가지는 것을 돕기 위해 작가는 "당대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택하고 주제별로 엮어진 작품들을 한데 모아서 소개하는 번거로움"(술패랭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작가의 수고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시 속에 담긴 의미와 배경뿐만 아니라 조선의 새로운 면모와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의 쓰임새와 감상법에 대해서 리더스가이드 리뷰어들이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세 가지로 간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1. 고전운문 어려워하는 학생들한테 읽히면 좋겠다. (jade)
이 책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교에서 시조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현재 시조와 처음으로 만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분명 어른들처럼 시조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세월을 보내다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조의 새로운 면모와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확률은 무척 낮다. 말 그대로 '평생 시조와 담 쌓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조그만 짬을 할애해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을 옆에 놓고 시조를 본다면 처음부터 시조의 제대로 된 의미와 만나게 되는 셈이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특히 하나의 주제를 이루는 시조 두 수를 배치하여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고, 담백하고 편안한 어조로 시조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문체는 중고등학생이 읽기에 적당할 것이다.
#2. 특히 늦은 밤 또는 새벽녘에 달을 본 후에 읽으면 그 재미가 더욱 좋다. (피그말리온효과)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시의 여유가 사라지고 산문의 질척함이 모든 지면을 채워가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사실 이것도 여유로운 이야기다. 경제사정의 악화로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일터에서 순식간에 거리로 나앉았고 하루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강물로 달리는 지하철로 뛰어드는 것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이 책을 보는 것은 어쩌면 사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현실의 사정은 잠시 덮어놓고 맹자의 '존야기(存夜氣)'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예나 지금이나 대낮에는 여러 가지 혼탁한 기운이 정신을 어지럽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밤의 기운을 보존해 대낮의 혼탁하고 어지러운 기운이 범람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영혼을 지키고 단련하는 일이리라. 더군다나 노래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쉼터를 찾은 저녁이나 아니면 모두 잠든 새벽녘, 혹은 눈을 붙이기에는 다소 아쉬운 잠자리에서 책을 펼치고 한수 한수 옛노래를 더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3. 묶음으로 소개되는 시조를 감상하는 재미와 더불어 책장 사이사이 소개되는 풍속화를 비롯한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는 호사까지 누리면서 21세기 현대에서 조선의 거리 한복판을 거닌 듯한 느낌이다.(술패랭이)
마지막으로 이 책은 시에 어울리는 그림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어쩌면 백마디 말보다 그림 한 폭에서 더욱 강렬한 느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어떤 경우에는 시의 애절함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한 그림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시가 노래되던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도나 서책 등을 만나기도 한다.
그림을 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된 사실이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시조는 하나하나가 모두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저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언어의 정수를 쓰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오롯이 담아낸 글은, 어떤 때는 한 잔 술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폭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그림이고 무엇이 글이란 말인가. 취한다. 취해!
▲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김용찬 지음, 인물과사상사 ⓒ 인물과사상사
우리의 옛 노래가 나에게 전해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것은 두 번의 죽음 때문이다. 식민지 시절 문화 말살 정책과 식민지 시대의 한국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배척하고 스스로 문화적 단절에 나서면서 옛 노래는 여염집이나 저잣거리에서 사라지고 소수의 전수자들에 의해서만 연구되고 전승되었다.
벌써 이십여 년도 훨씬 전에 국어 교과서 속에서 만난 시조는 다만 외우고 시험보아야 할 괴로운 대상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일부러 시조를 찾을 일도 또 시조를 읊어댈 일도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누리꾼 '재윤맘'의 리뷰)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인물과사상사)의 작가 김용찬 교수(순천대 국어교육과)는 이런 단절의 지점을 내내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해서든 옛 노래와 현대인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를 오랫동안 해왔다.
어디 옛노래뿐이랴? 현대시 역시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시인은 오늘날 완전히 사라졌으며, 시도 잘 읽히지 않는다. 김용찬 교수는 시 전체의 현실을 걱정하며, 어떻게 하면 세상 속에 시를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다. <시로 읽는 세상>(이슈투데이)이라는 책은 김소월, 김수영에서부터 최영미 등 근래의 시인까지 아우르며 작품세계와 현실과의 교점을 구수한 입담과 편안한 어조로 소개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글은 "조선 시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전개"(jjolpcc)된다.
일단 떠나 보자, 옛노래에 흥얼거리며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그곳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조상들의 멋스러움과 여유로움이 부럽기만 하다. 나도 모르게 추임새도 넣게 된다. 좋쿠나~! 암만~!(타오)
옛 노래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작가가 들인 공이 그대로 전달된다. 스무 꼭지 각 장의 제목은 시가의 첫 장으로 달았고, 각 주제마다 관련된 그림을 넣어서 향취를 돋우었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작가의 힘에서 나온다. 가르치는 듯한 위엄도 없고 전문가적 천착도 드러나지 않은 담백하고 평이한 해설은 무척이나 경제적이다. 옛 노래의 시대와 인물들을 짚어내면서 살짝 현재 우리들의 현실을 환기해 준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인지상정과 정치인들의 중상모략, 보편적인 인간애가 흘러나온다. 어느덧 당대인과 내가 같은 얼굴로 만나게 된다.
누리꾼 '피그말리온효과'는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지루할 것 같아서 한쪽 구석으로 치워 두었지만 잠결에 화장실에서 이 책을 읽어 보니 자신도 모르게 책 속에 푹 빠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만약 이 책을 던져둔 채 그냥 지났더라면 후회막급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옛 노래를 혐오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다만 제대로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선조들이 읊으며 놀던 가락이 숨겨져 있고 함께 놀고 싶은 욕망도 내재해 있다. 다만 심금을 어떻게 울릴 것인가가 관건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옛 노래와 만날 수 있을까? 작가는 머리말을 통해서 시조가 담고 있는 의미만을 해석하지 말고 그 시조가 담고 있는 시대의 풍경을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독자가 이러한 인식을 가지는 것을 돕기 위해 작가는 "당대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택하고 주제별로 엮어진 작품들을 한데 모아서 소개하는 번거로움"(술패랭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작가의 수고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시 속에 담긴 의미와 배경뿐만 아니라 조선의 새로운 면모와 만나게 되었다.
▲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대체로 조선 후기에 창작된 고전시가 작품들에는 사랑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면모를 가리켜 '추상에서 구체로의 하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인물과사상사
이렇게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의 쓰임새와 감상법에 대해서 리더스가이드 리뷰어들이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세 가지로 간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1. 고전운문 어려워하는 학생들한테 읽히면 좋겠다. (jade)
이 책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교에서 시조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현재 시조와 처음으로 만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분명 어른들처럼 시조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세월을 보내다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조의 새로운 면모와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확률은 무척 낮다. 말 그대로 '평생 시조와 담 쌓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조그만 짬을 할애해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을 옆에 놓고 시조를 본다면 처음부터 시조의 제대로 된 의미와 만나게 되는 셈이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특히 하나의 주제를 이루는 시조 두 수를 배치하여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고, 담백하고 편안한 어조로 시조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문체는 중고등학생이 읽기에 적당할 것이다.
#2. 특히 늦은 밤 또는 새벽녘에 달을 본 후에 읽으면 그 재미가 더욱 좋다. (피그말리온효과)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시의 여유가 사라지고 산문의 질척함이 모든 지면을 채워가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사실 이것도 여유로운 이야기다. 경제사정의 악화로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일터에서 순식간에 거리로 나앉았고 하루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강물로 달리는 지하철로 뛰어드는 것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이 책을 보는 것은 어쩌면 사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현실의 사정은 잠시 덮어놓고 맹자의 '존야기(存夜氣)'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예나 지금이나 대낮에는 여러 가지 혼탁한 기운이 정신을 어지럽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밤의 기운을 보존해 대낮의 혼탁하고 어지러운 기운이 범람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영혼을 지키고 단련하는 일이리라. 더군다나 노래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쉼터를 찾은 저녁이나 아니면 모두 잠든 새벽녘, 혹은 눈을 붙이기에는 다소 아쉬운 잠자리에서 책을 펼치고 한수 한수 옛노래를 더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3. 묶음으로 소개되는 시조를 감상하는 재미와 더불어 책장 사이사이 소개되는 풍속화를 비롯한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는 호사까지 누리면서 21세기 현대에서 조선의 거리 한복판을 거닌 듯한 느낌이다.(술패랭이)
마지막으로 이 책은 시에 어울리는 그림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어쩌면 백마디 말보다 그림 한 폭에서 더욱 강렬한 느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어떤 경우에는 시의 애절함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한 그림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시가 노래되던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도나 서책 등을 만나기도 한다.
그림을 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된 사실이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시조는 하나하나가 모두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저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언어의 정수를 쓰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오롯이 담아낸 글은, 어떤 때는 한 잔 술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폭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그림이고 무엇이 글이란 말인가. 취한다. 취해!
덧붙이는 글
'집중서평'은 리더스가이드 리뷰어들이 쓴 리뷰를 종합/분석한 콘텐츠입니다. 리더스가이드 사이트(www.readersguide.co.kr)에서 다양한 집중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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