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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숭늉, 아주 그냥 끝내줘요!

겨울이면 생각나는 구수한 숭늉

등록|2008.12.08 09:38 수정|2008.12.08 09:38

▲ 구수한 숭늉 ⓒ 정현순


"야, 역시 겨울엔 뜨끈한 숭늉이 최고다! 아주 구수해!"

남편이 뜨끈한 숭늉을 마시더니 속까지 녹여준다면서 감탄을 한다. 난 겨울이 되면  적당히 눌러 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따끈한 숭늉을 끓여낸다. 옆에서 아들아이도 "엄마 나도 숭늉 더 줘요"한다. 그런 아들도 처음에는 숭늉을 잘 마시지 않고 정수기물을 즐겨 마시곤 했었다. 그렇다고 숭늉을 마시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옆에 따라 놓은 숭늉을 마셔보더니 "엄마 숭늉이 생각보다 아주 맛있네"한다. 하여 난 "너도 나이를 먹어가는가 보다. 숭늉이 맛있다고 하는 거보면"하고 말했다. 그런 후 별 거부 반응없이 계속 잘 마시고 있다. 그 뿐아니라 남은 숭늉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오며가며 숭늉을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다. 이젠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아들의 몫까지도 숭늉을 주곤 한다.

국이 있어야 밥을 먹는 남편은 구수한 숭늉이 있으면 국을 더 이상 찾지 않을 정도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마시는 숭늉은 뒷정리를 해주는 것처럼 속 전체를 편안하게 해준다. 숭늉은 속이 비어 약간 배고픔을 느낄 때 한모금 마시면 든든해지기도 한다.

▲ 누룬밥 ⓒ 정현순


내가 전기밥솥을 쓰지 않은 이유는 전기 사용량이 많아지고, 누룽지도 먹을 수가 없고, 특히 요즘처럼 쌀쌀한 겨울에 따끈한 숭늉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가스불로 하는 압력밥솥을 사용하고 있다. 압력솥에 밥을 할 때는 물을 쌀과 별 차이 없이 부어야 적당히 누룽지가 생긴다.

반면 잡곡을 많이 넣은 밥을 할 때에는 물을 조금 넉넉히 부어주어야 한다. 문제는 사정에 의해서 냄비밥을 할 때다. 냄비밥에 조금 하는 밥은 압력솥보다 신경을  좀 더 써줘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넘기가 일쑤다.  냄비를 가스불에 올려놓고 다른 일을 하다보면 태울 적도 있기는 하지만 심하게 타지 않는 이상 누룬밥이나 숭늉을 먹기에 큰 지장이 없다.

숭늉을 끓이려면 적당히 누른 누룽지는 필수다. 숭늉을 끓이면서 보너스처럼 얻게 되는 누룬밥 역시 구수해서 잘 익은 김장 김치 한가지만 있어도 슬슬 넘어간다. 구수한 누룬밥과 따끈한 숭늉이 있으면 이번 주말처럼 추운 겨울에는 걱정 끝이다. 돈도 많이 들이지 않고 식구 모두 따뜻하고 푸짐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저녁 무렵 월요일 출근을 하기 위해 딸아이가 작은 손자를 데리고 왔다. 얼른 숭늉을 따뜻하게 데워왔다. "오늘 춥지. 이 따끈한 숭늉 마셔 봐라. 몸이 따뜻해질 거야." 딸이 마시더니 "오랜만에 마셔보니깐 진짜 좋다. 엄마 우린 전기밥솥에 밥을 하니깐 이런 숭늉을 먹을 수가 없어"한다. "그럼 바쁘니깐 전기밥솥을 사용할 수밖에."

작은 손자에게도 한술 떠주니 "이거 싫어 하얀 물 줘"한다. 난 "우협아 한번만 먹어봐"하곤 입속에 넣어주었다. 한번 먹어보더니 녀석도 더 달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구수한 숭늉인데.' 녀석이 별 이견없이 먹는 것을 보고는 먹거리는 주부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난 올 겨울이 끝나도록 숭늉을 계속 끓이게 될 것이다. 다른 해 겨울처럼.

적당히 누른 누룽지 숭늉..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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