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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 수필가 양정열씨를 만나다

등록|2008.12.08 10:09 수정|2008.12.08 10:09
글은 그 자신을 나타낸다고 했던가. 이번 인터뷰 대상자는 글 쓰는 사람이다. 조금 더 수식을 붙여보자면 글 쓰는 공대생 양정열씨다. 어색하지만 어색할 것 없다. 뭐, 공대생이라고 글 못쓰랴.

그는 콘크리트 책을 옆에 끼고서 네이버 블로그에 자신의 수필을 올린다. 그리고 그런 그의 글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같은 느낌을 준다. 잘 세공된 보석이 더 빛을 발 할 때도 있지만, 그의 글은 원석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뷰 내내 그에게선 순수함이 뚝뚝 묻어났다.

"내 글은 고민의 결정체에요"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가 특별할 것 같아 물어본 질문이었다. 소설책 한 권 읽을 여유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학과 생활이다. 왜 그는 이러한 대학 생활 중 글쓰기를 시작했을까. 그는 '고민'이란 단어를 꺼내들었다.

"고민이란 건 공대생을 떠나 남녀노소 누구나 하는 거잖아요. 중고등학생 때 사춘기가 별 탈 없이 지나갔죠. 그땐 사춘기가 다 인줄 알았는데, 대학을 오고 보니 아주 기본적인 고민이 시작되더라구요. 자아에 대한 고민 말이죠."

그는 그 이후에 항상 머릿속에 고민을 달고 다녔다고 했다. 걸을 때도, 밥 먹을 때도, 심지어 똥을 눌 때도. 그러다 보니 어느 날 결론이란 것도 생기더란다. 그리고 그 결론을 정리하고 싶어 글을 적었다.

  처음에는 작은 노트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의 노트는 네이버 블로그라는 대중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한번 쯤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내가 고민했고 결론 내린 것을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 좋을 거라 생각했죠. 내 결론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자신과 똑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단 사실만으로 그들에겐 위로가 될 테니까요."

그의 말은 정답이었다. 나 역시도 그의 글에서 적잖은 위안을 얻었으니까.

  "정재승 교수님이 우리의 억울함 풀어주고 계시죠"
 
그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두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첫째는 타고난 사람이고, 둘째는 훈련된 사람이란다. 첫 번째는 워낙 적은 수이기에 공대생 인문대생 할 것 없고, 문제는 둘째다.

"대부분의 공대생은 후자에 속할 거에요. 논술을 안 보니까 글을 쓸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죠. 아마 저도 논술 같은 거 하라고 하면 그렇게 잘해낼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제가 느낀 건 확실히 글은 쓸수록 는다는 거죠. 공대생은 글을 쓰기 싫어한다, 못 쓴다가 아니라 기회가 없다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님같은 경우도 굉장히 글을 잘 쓰시잖아요. 쉽고, 재밌게."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엔 글 쓰는 이공계 출신들이 꽤 존재한다. 그가 말한 정재승 교수를 비롯해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공대생의 사랑이야기>란 책도 있으니까. 실제 정재승 교수 같은 경우 '꿈꾸는 과학'이란 단체를 조직해서 과학과 글쓰기를 결합한 교육을 하기도 한다고. 아마 양정열씨도 몇 년 뒤엔 이들과 같이 사회의 편견을 깬 사례로 꼽힐 것이다.

  "생활 속의 모든 것이 소재요, 이야기 밭이죠."
 
그는 작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던 <미안하면 일말의 자존심을 버려라>는 수필을 쓰게 된 계기에 관한 것이었다.

"듣고 나면 우스울 거에요. 친구가 찾아와 이런 저런 넋두리를 떨었죠. 그런데 친구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싸운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얘기를 들어주고 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죠.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이 해결책을 다른 사람들도 많이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수필이 나온거죠. 이렇듯 제가 글 쓰는 과정은 하나도 거창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스울 거라고 한 거구요."

  그는 그의 많은 글들이 이렇게 쓰여진다고 말한다. 순간순간 누군가와 겪으면서 떠오른 짧은 생각, 그렇지만 진지하고, 위트 있는 생각을 까먹고 싶지 않아 정리해 두는 거라고. 정말 듣고 보니 그리 거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히려 그의 글이 호응을 얻는 건지도 모르겠다. 거창하지 않아서, 어렵지 않아서, 그냥 내 얘기 같고 내 친구 얘기 같고 그래서.

  "글쓰기는 제 평생 취미일거에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기회가 된다면 소설을 쓰고 싶어요. 구상은 1년 전쯤부터 하고 있는데 아직 시간이 없네요."

그가 소설을 쓴다니 벌써부터 궁금증이 한가득 밀려온다. 그가 쓰는 소설은 어떤 소설일까. 솔직담백한 문체의 공지영 같은 글일까, 아니면 허무주의가 짙게 밴 하루키 같은 글일까. 무엇보다 그가 얼른 시간을 내 소설을 쓰는 것이 급선무겠지.

"내년쯤이면 외국에서 공부하게 될 것 같아요. 그 때 되면 꼭 계속 글을 쓸 거에요. 외국에 나가면 아마 또 엄청난 고민과 생각들이 튀어 오르겠죠."

  그는 그의 미래 계획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아무래도 공대생이니 그에 관련된 직업을 가지겠죠. 그렇다고 글 쓰는 걸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글쓰기는 제 여가이자 평생 취미거든요. 취미를 직업이 정해졌다고 그만두진 않잖아요."

그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을 찔러온다. 평생 취미라는 말. 시간이 흘러 좀 더 학년이 높아지고, 사회에 나가게 되면 아무리 그의 의지가 강해도 물리적인 제약이 존재하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도 항상 그의 옆에는 글쓰기가 존재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취미는 그만두는 것도, 해야 하는 것도 아닌 '취미'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공대생인 양정열씨가 글쓰기를 이어가는 비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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