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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소녀는 어떻게 한국의 그리움을 달랠까?

[자전거 세계일주 카리브 해 편 28 - 쿠바 28] 아바나(Havana)

등록|2008.12.11 09:45 수정|2008.12.11 10:03

그녀의 자랑스런 태극기 열 여섯살 소녀의 방에 걸려있는 건 연예인 브로마이드가 아닌 태극기다. ⓒ 문종성


"곤니찌와."
"우리 한국인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곤니찌와"쿠바 현지인이 중국전통 의상을 입고서 하는 일본말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 문종성

잘못 짚었다. 하지만 이내 어디선가 발빠르게 서툰 한국억양으로 재차 인사를 해 온다. 그리고 떡밥에 걸린 물고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메뉴를 소개하는 그들의 노력은 가상하다. 우스운 것은 처음 일본어로 인사한 그들의 옷차림은 중국풍이었다는 것.

오랜만에 고국 음식에 대한 향수로 그나마 비스무레하게 나오는 중국 레스토랑을 찾았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한국계 쿠바노인 애리(현지 이름 - 엘리자베스)를 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하기에 아바나의 중국 레스토랑은 비교적 고급 식당에 속한다. 그래서 평범한 아바나 시민들에겐 이곳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일요일 오전 예배 후, J와 애리, 그리고 나는 중심가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여느 차이나타운에 비하면야 소박한 편이지만 엄연히 음식의 대국답게 레스토랑의 결집력과 위상만큼은 다른 곳보다 단연 으뜸이다.

쿠바 속 중국 아바나의 유명한 차이나 레스토랑 거리. ⓒ 문종성


옷차림은 중국 언어는 영어와 스페인어 중국식당이 늘어선 곳에서 종업원이손님 호객을 위해 J에게 열심히 메뉴를 설명하고 있다. ⓒ 문종성

여자 한 명을 포함해 세 명이 갔는데 무슨 욕심에선지 메뉴를 이것저것 5개나 주문했다. J의 식성과 나의 허기와 꿈 많은 소녀에게 이것저것 대접하고픈 마음이 섞여졌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전 세계 어딜 가던지 그 양이 많기로 정평이 나 있는 중국 요리를 깔끔히 비워내기란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오랜만의 외식에 자신의 뿌리인 한국에서 온 오빠들과의 식사라서 그런지 애리는 살짝 상기돼 보였다.

사실 식사시간엔 식사에만 집중하느라 난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J와 애리는 스페인어로 담소를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몰고 갔다. 아는 대목에서만 고개를 끄덕이고, 보조를 맞출 뿐 역시 언어의 한계는 교제의 깊이를 얕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맛난 음식 배불리 먹은 걸로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반대로 애리네 집에서 우리를 초대해왔다. 쿠바 가족의 초대를 받았는데 빈손으로는 갈 수 없어 음료수 두 페트를 사 갔다(다음 날엔 쇠고기와 닭고기, 필요한 생활용품 등을 잔뜩 사 갔다. 같은 핏줄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뒷골목 초라한 비씨택시(자전거택시)의 무동력 페달이 힘들어만 보인다. ⓒ 문종성


넉넉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음만은 풍요로워 보였다. 자신의 것이 부족하다는 걸 부끄럽지 않게 여기고 있는 모습 그대로 손님을 맞는 것이다. 우리가 온다고 특별히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닭튀김과 샐러드, 과일 등이 푸짐하게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감동시킨 건 역시 김치. 뜻밖에도 김치를 만들어 먹고 있었다. 한국의 맛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며 만든 양배추 김치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비록 빨간 고춧가루가 보이지 않고, 한국과 맛은 조금 다른 묽은 김치였지만 향수를 달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애리네 가족 이영순 할머니와 딸과 사위, 그리고 활짝 웃는 애리. ⓒ 문종성

"한국이 그리워요?"
"네, 많이많이.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일단 우리나라와 쿠바는 국교수립이 되어있지 않다. 우리야 여권 아닌 다른 곳에 입국허용 비자를 찍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지만 아마 제도상 쿠바인들이 우리나라를 함부로 왔다갔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정부의 허락을 받아 초대한다고 해도 항공료 값은 이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못 된다.

"우와, 태극기네?"

그녀가 한국을 진심으로 그리워한다는 것은 방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 연예인 브로마이드로 수놓아지는 열여섯 소녀의 방 한 쪽 면에는 대신 거대한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거실은 태극모양의 부채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오래돼 색이 바랜 한국 모델 사진으로 장식해 자신이 한국 핏줄임을 선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CD케이스에서 뽑은 것은 반갑게도 양동근 주연의 한국 영화 <바람의 파이터>. 한국말 그대로 나오고 자막은 스페인어로 처리한 것이었는데 덕분에 오랜만에 한국 문화갈증까지 풀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매주 한 번씩 다니는 곳은 다름 아닌 한글학교. 이 정도면 그들의 한국 사랑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하겠다.

애리의 꿈은 한국에서 체계화 된 한글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단다. 쿠바라는 갇힌 공간에서 마음만은 한국을 향해 항상 열려 있다. 다른 사춘기 소녀들과는 분명 다른 그리움이자 꿈이다.

부채 한국의 가정집에서도 이젠 보기 힘들어진 전통 부채가 쿠바의 가정집에 걸려있다. ⓒ 문종성


한복 사진 단아한 자태의 모델이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 밑 포스터에는 아리랑이라는 영문글씨가 보인다. ⓒ 문종성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끝나고 밤이 깊어가자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쿠바에 있지만 꼭 한국 같았던 포근한 느낌이라서 그랬는지 더 있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김치를 먹고, 한국 영화를 보고, 대형 태극기와 태극부채와 한복 사진을 통해 내가 한국에서 누리는 평범한 것들이 다른 이에겐 얼마나 갈망하는 소중한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나조차도 한국이 다시 한 번 떠올려지는 나의 소중한 조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빠가 생긴 것 같아 좋아요."

울먹이는 애리를 다독이고 숙소로 향하면서 이들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는 정부에 대한 섭섭함과 이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에 어쩐지 미안해졌다. 지구상에 두 나라 밖에 없다는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쿠바는 공교롭게도 모두 우리와 깊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곳이다. 하루 빨리 이들 나라와의 민간교류가 더욱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젠간 애리의 소박한 꿈이 이뤄지길 바라면서….

말레콘에서 필자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오랜만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 문종성


한인 후예들 지원정책은 없는 것인가?

멕시코, 쿠바에는 1세기 전부터 노동자로 이민 온 한인 후예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듣기로는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이런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전히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는 한인 후예들을 멕시코 유카탄 반도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일본정부는 같은 시기, 노예가 아닌 경영자로 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에게 아낌없는 지원 정책을 펼쳐 현지에서 정착할 수 있게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오히려 이민 초기 약속과는 달리 점차 노예화 된 우리나라 노동자들과는 달리 막대한 부를 가지고 경영하는 입장이었던 일본인들과의 경제적 간극은 좁히지 못하고 지원정책은 서로가 오히려 반대로 간 실정이다.

물론 쿠바로 간 한인후예들은 멕시코에서의 경제적 압박과 노동 수난을 이기지 못하고 탈출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들도 명백한 한인 후예들이므로 같은 맥락에서 지원정책을 논해봐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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