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게 우리 방학"
[현장] 부곡초 6학년 아이들의 2008년 겨울방학나기
▲ 부곡초 6학년 화왕산 정상창녕 화왕산 정산에 오른 부곡초 6학년 아이들 ⓒ 박종국
방학이 머잖다. 아이들의 방학생활계획표를 챙겨보았다. 그런데 욕심이 지나쳤다. 온통 공부다. 게다가 책 읽고, 학원과외로 빡빡하다. 가뭄에 콩 나듯 슬쩍 끼워놓은 건 밥 먹는 시간. 여러 아이들의 방학생활 훑어봐도 어디하나 마음 놓고 '놀아 보는 시간'이 따로 계획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또 공부, 공부로 이어진다. 답답한 방학생활이다. 아이들이라면 당장에 공부하는 것보다 신나게 놀고 싶을 텐데, 더구나 방학만큼은.
"선생님, 방학이 싫어요. 엄마아빠가 밤늦도록 일 하시기 때문에 하루 종일 혼자 집에만 있어야 하거든요. 방학 때는 같이 놀 친구도 없어요. 다들 학원 다니잖아요. 생각만 해도 너무 심심하고 지루할 것 같아요."
"벌써부터 방학하면 학원 다녀야하는 것 때문에 힘이 쭉 빠져요. 이번 방학에는 세 군데나 다녀야한대요. 예비중학생이라 방학이라도 놀면 안 된대요. 우리 엄마는 오직 공부밖에 몰라요. 엄마도 초등학교 때 나처럼 공부했는가 싶어요."
방학을 앞 둔 아이들의 볼멘소리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치 아이들이 판박이처럼 똑같은 생각을 드러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더니 방학하면 학원 다녀야 하고, 공부만 해야 한다고 답답해한다. 엄마가 벌써 계획을 짜두었단다. 기분이 씁쓸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단순하게 성적을 우선시하는 삶의 가치가 어린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답습된다는 게 안타깝다.
▲ 학예회 댄스곡 발표여학생들이 브라운아이드 걸스 '어쩌다'를 열연하고 있다. ⓒ 박종국
▲ 여학생 댄스 열연 여학생들이 원드걸스 'Nobody' 열중하고 있다. ⓒ 박종국
방학은 답답한 공부를 떠나 아이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고심한 끝에 이번 방학만큼은 공부더미 속에서 아이들을 구해내기로 했다. 어떻게 할까. 해답은 간단하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하고, 실컷 놀 수 있으면 된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듯 아이들과 단박에 다짐을 했다. 다섯 가지였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좋은 생각하며, 건강한 방학생활 보내기로. 아이들은 좋다고 우당탕 책상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이런 학년 방학계획서가 통과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 반 아이들만큼은 고역스런 방학에서 살려내고 싶다.
아이들 기를 살려내는 방학을 만들자
근데 몇몇 녀석이 방학숙제가 그것이 뭐냐며 딴죽을 걸었다. 생각해 보니 녀석의 말도 옳다. 도대체 뭔가 짚이는 게 없다는 얘기다. 눈에 보이는 알맹이를 권내주지 않으니까 섭섭한가 보다. 조금 덧칠을 했다. 먼저, 자신에게 알맞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줄넘기나 걷기, 자전거를 타면 어떻겠냐고 얘기했더니 고개를 끄떡인다. 그냥 평상 걸음으로 30분 정도만 걸으면 그때부터 몸에 축척된 지방이 산화된다. 가볍게 걷는 게 운동의 기본이다.
▲ 학예회 가장발표회6학년 남여 어린이들이 가장발표회를 가졌다. ⓒ 박종국
▲ 학예회를 마치고학몌회를 마치고 반 전체 기념촬영을 했다. ⓒ 박종국
다음으로 하루에 책 한권을 읽자고 제안 했다. 독후감은 따로 쓰지 않아도 좋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책 읽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애써 책 읽는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쓰라는 것은 혹이다. 되레 역효과가 날 뿐이다. 그랬더니 녀석들, 생각도 해보지 않고 쾌히 승낙한다.
책 읽으라는 얘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힘든 일임에도 선뜻 약속하는 아이들이 여간 미더운 게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다른 습관을 들이는 것보다 평소 책을 가까이하는 버릇을 들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장차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 천만금을 주고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당장에 점수 한 점 더 받는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책 읽으라는 얘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만물보따리를 풀 듯 유적답사여행을 떠나 보라고, 요리를 해 보고, 영화를 몇 편정도 보라고 했다. 제 논에 물대기다. 이것들은 당연히 담임인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다. 아이들일수록 혼자서, 낯선 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녀야한다. 그래야 실제체험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간담이 커지게 된다.
▲ 용인 에버랜드수학여행으로 용인 에버랜드에 다녀왔다. ⓒ 박종국
▲ 수학여행 공주부여수학여행으로 공주 부여를 다녀왔다. ⓒ 박종국
자주 여행을 떠나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하는 일마다 야무지고, 당차며, 끈기가 있다. 답사를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분명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나 역시도 이번 방학만큼은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떠나려한다.
"전 이번에 순천만에 갔다 올 거예요. 지난 번 우리 형 학교에서 갔다 왔는데, 바닷가 갈대밭이 너무나 넓대요. 또 그곳은 겨울에 가면 우리 고장 우포늪처럼 철새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했어요. 아빠 휴가 때 가족과 함께 다녀올 거예요."
"우리 가족은 이번에 대마도에 갑니다. 엄마아빠가 결혼해서 그동안 한번도 여행을 가 보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저희도 함께 가는 거예요. 신나요. 특히 저는 쓰시마섬에 가면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로 전해진 고추와 담배에 대해서 조사해 보고, 조엄이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가면서 대마도에 들렀을 때 가져왔다는 고구마에 대해서도 알아볼 거예요. 1학기 때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덕분에 인터넷으로 자료검색도 많이 해뒀어요. 또 대마도에서는 낮 12시가 되면 확성기를 통해 '나의 살던 고향'의 노래가 나온다는 데 빨리 가 보고 싶어요."
"저는 아빠의 고향 강원도 속초에 갈 거예요. 거긴 벌써 눈이 많이 내렸대요. 어제 사촌들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스키장에 가자고 했어요. 나는 왕초본대 사촌들은 선수예요. 그곳 아이들은 누구나 스키를 다 잘 탔어요. 그게 참 부러웠어요. 올해는 꼭 초보코스를 마치고 중급코스를 탈거예요."
평소 아이들과 요리실습을 자주한다. 그만큼 요리에 밀착된 이야기를 자주한다. 왜냐? 요리는 그것을 먹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물론, 만드는 과정을 통하여 또 다른 삶의 조화를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요리를 하면 얼마나 잘할까 속단하지 마시라. 아무리 고사리 손끝이라도 앙금지게 손을 모으면 산해진미로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여행과 요리, 또 다른 삶의 조화 느낄 수 있는 계기
특히 사내아이들을 둔 학부모님은 명심해야 한다. 남자가 부엌에 드나드는 것이 체신머리가 없다는 얘기는 벌써 빛바래고 땟국 절은 먼먼 시절의 체면치레다. 지금 시대는 남자도 팔 걷어 부치고 자신 있게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 아름다운 때이다.
▲ 수영교실수영교살에 참가한 아이들 ⓒ 박종국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힘주었던 것은 여러 캠프활동이다. 누구나 적극참여하라고 권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일들은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럴 때일수록 더불어 사는 맛을 아는 아이들은 아무리 숱한 어려움일지라도 능히 견뎌내고 이겨낸다. 그런 아이들은 세상을 사는 데 곁가지를 인정하지 않고, 요령을 피거나 남을 헐뜯지도 않는다.
자연과 친화 교감하는 겨울방학나기
때문에 자기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아첨하거나 권모술수를 부리지도 않는다. 자연과 친화 교감하면서 호연지기를 배운 아이들은 어른으로 자라 사랑을 할 때도 결단성 있게 처신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제 모든 것을 다 던질 수 있다. 비록 그게 바보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 즐거운 산행부곡초 6학년 아이들은 그 동안 덕암산과 화왕산 등 창녕의 인근 산을 올랐다. ⓒ 박종국
이번 방학은 우리 반 아이들이 나의 바람대로 기가 살아나는 방학이 될 것 같다. 기우는 차라리 아니함만 못하기에 아이들의 의지를 믿고 싶다. 아이들은 스펀지다. 그들의 심성의 잔가지들이 마치 스펀지처럼 물을 뿌린 대로 빨아들인다. 흡습성이 무한하다. 아이들의 가소성을 믿고 있는 담임의 바람을 학부모들은 이해하리라. 아무튼 이번 방학만큼은 우리 아이들을 다 다른 행동특성을 발현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 늘푸른 소나무겨울이 되어야 솔잎이 푸른 것을 안다고 했다. 부곡초 6학년 아이들의 겨울방학은 그렇게 건강하게 보낼 것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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