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49) 사방팔방
[우리 말에 마음쓰기 496] '사방팔방으로 둘러싸인', '사방팔방 펼쳐진' 다듬기
ㄱ. 사방팔방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 그는 식사를 할 때 사방팔방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외롭게 은둔 생활에 파묻혔다 .. 《베네트 서프/정혜진 옮김-내멋대로 출판사 랜덤하우스》(씨앗을뿌리는사람,2004) 150쪽
“식사(食事)를 할”은 “밥을 먹을”이나 “밥먹을”로 고쳐 줍니다. ‘음식(飮食)’은 ‘밥’이나 ‘밥풀’로 손보고, “흘려야 한다는 사실(事實) 때문에”는 “흘려야 하기 때문에”나 “흘리고 있기 때문에”로 손봅니다. “은둔(隱遁) 생활(生活)에 파묻혔다”는 “파묻혀 지내게 되었다”나 “숨어 지내게 되었다”로 손질합니다.
┌ 사방팔방(四方八方) : 여기저기 모든 방향이나 방면
│ -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다 / 사방팔방으로 주선해 주어서
│
├ 사방팔방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 여기저기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 곳곳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 둘레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
├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다 → 곳곳에 수소문하다
└ 사방팔방으로 주선해 주어서 → 여기저기로 주선해 주어서
네 쪽을 가리키니 ‘네 쪽’이고, 여덟 곳을 가리키니 ‘여덟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말씀씀이를 돌아보면, 네 쪽을 네 쪽이라 하지 않고 ‘사방(四方)’으로 적습니다. 여덟 곳을 여덟 곳이라 하지 않고 ‘팔방(八方)’으로 적습니다. 더군다나, 이곳저곳이나 여기저기를 가리키면서 ‘이곳저곳’이나 ‘여기저기’라 하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적고 맙니다.
그러고 보면, ‘곳곳’이라는 말보다 ‘각지(各地)’나 ‘각처(各處)’를 즐겨쓰는 데다가, ‘여러 곳’이나 ‘온갖 곳’ 같은 말은 그다지 즐겨쓰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말이 없어서 안 쓰지 않습니다. 우리 말로 나타낼 수 없기에 안 쓰지 않습니다. 우리 말이 있으나 안 쓰고, 우리 말로 나타낼 수 있는데에도 안 씁니다.
┌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다 → 여기저기로 알아보다 / 온갖 곳에 알아보다
└ 사방팔방으로 주선해 → 곳곳에 다리를 놓아 / 이곳저곳에 다리를 놓아
말씀씀이를 넓히거나 말테두리를 넓힐 수 있기에 쓰는 ‘사방팔방’인지 궁금합니다. 말생각을 키우거나 말느낌을 북돋울 수 있기에 쓰는 ‘각지’나 ‘각처’인지 궁금합니다.
말씀씀이를 넓힐 수 없다고 느껴서 ‘이곳저곳’ 같은 토박이말은 멀리하는지, 말테두리를 좁힐 수 있다고 느껴서 ‘여기저기’ 같은 토박이말은 뒷전으로 여기는지, 말생각을 키우는데 걸리적거려서 ‘곳곳’ 같은 토박이말은 내치고 있는지, 말느낌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면서 ‘둘레’ 같은 토박이말은 한 수 접어 놓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고이고이 아껴 두었다가 큰 자리에 한 번 쓸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ㄴ. 사방팔방으로 둘러싸인 현대문명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방팔방으로 둘러싸인 현대문명에 하나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38쪽
‘충분(充分)히’는 ‘넉넉히’나 ‘너끈히’로 다듬습니다. “하나의 활로(活路)를 개척(活路)할”은 “숨구멍 하나를 틀”이나 “살길 하나를 마련할”로 손봅니다. ‘확신(確信)’은 ‘믿음’이나 ‘굳센 믿음’으로 손질해 줍니다.
┌ 사방팔방으로 둘러싸인 현대문명
│
│→ 겹겹으로 둘러싸인 현대문명
│→ 빽빽이 둘러싸인 현대문명
│→ 옴짝달싹 못하게 둘러싸인 현대문명
│→ 모든 곳이 둘러싸인 현대문명
└ …
우리 삶터는 자연에 둘러싸여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물질문명으로만 둘러 놓고 있습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물질문명에 휘감긴 채 살아갑니다. 자연이 없으면 잠깐조차 살 수 없는 사람이건만, 우리들은 자연을 무너뜨리거나 갉아먹기만 할 뿐, 자연을 돌보거나 아끼면서 우리 삶을 일구어 나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 삶뿐 아니라 삶을 이루는 말도, 삶을 나타내는 글도,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자연하고는 멀어집니다.
자연하고 멀어지니 삶뿐 아니라 글도 자연스러움이 사라집니다. 자연하고 울타리를 쌓으니 삶터뿐 아니라 말 또한 자연스럽게 뻗아나가지 못합니다. 억지스러움이 감돌거나 깊어지면서, 부드러움이 아닌 딱딱함으로 굳어 갑니다. 넉넉함이 아닌 속좁음으로 어그러집니다.
수월하게 꾸리며 알뜰살뜰 여미어 낼 삶이나 글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손쉽게 돌보면서 아름다이 엮어낼 삶터나 말로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ㄷ. 사방팔방 펼쳐진 푸른 벌판
.. 사방팔방 펼쳐진 푸른 벌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외출 .. 《이유경-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인물과사상사,2007) 16쪽
‘벌판으로부터’는 ‘벌판에서’로 고쳐 주고, ‘유일(唯一)한’은 ‘한 번뿐인’이나 ‘하나 있는’이나 ‘딱 한 번뿐인’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외출(外出)’은 ‘나들이’로 손봅니다.
┌ 사방팔방 펼쳐진 푸른 벌판
│
│→ 두루 펼쳐진 푸른 벌판
│→ 드넓게 펼쳐진 푸른 벌판
│→ 하늘 끝까지 펼쳐진 푸른 벌판
│→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벌판
└ …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아도, 앞을 보고 뒤를 보아도, 저 멀리 보이는 땅 끝까지 내다보아도 온통 푸른 벌판이었는가 봅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벌판”이었군요. 하늘 끝까지, 땅 끝까지 이어진 벌판으로 느껴지겠어요. 온통 푸른 벌판뿐이니 참 ‘드넓게’ 펼쳐졌다고 느끼겠네요.
.. 그는 식사를 할 때 사방팔방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외롭게 은둔 생활에 파묻혔다 .. 《베네트 서프/정혜진 옮김-내멋대로 출판사 랜덤하우스》(씨앗을뿌리는사람,2004) 150쪽
┌ 사방팔방(四方八方) : 여기저기 모든 방향이나 방면
│ -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다 / 사방팔방으로 주선해 주어서
│
├ 사방팔방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 여기저기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 곳곳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 둘레에 음식을 흘려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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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다 → 곳곳에 수소문하다
└ 사방팔방으로 주선해 주어서 → 여기저기로 주선해 주어서
네 쪽을 가리키니 ‘네 쪽’이고, 여덟 곳을 가리키니 ‘여덟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말씀씀이를 돌아보면, 네 쪽을 네 쪽이라 하지 않고 ‘사방(四方)’으로 적습니다. 여덟 곳을 여덟 곳이라 하지 않고 ‘팔방(八方)’으로 적습니다. 더군다나, 이곳저곳이나 여기저기를 가리키면서 ‘이곳저곳’이나 ‘여기저기’라 하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적고 맙니다.
그러고 보면, ‘곳곳’이라는 말보다 ‘각지(各地)’나 ‘각처(各處)’를 즐겨쓰는 데다가, ‘여러 곳’이나 ‘온갖 곳’ 같은 말은 그다지 즐겨쓰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말이 없어서 안 쓰지 않습니다. 우리 말로 나타낼 수 없기에 안 쓰지 않습니다. 우리 말이 있으나 안 쓰고, 우리 말로 나타낼 수 있는데에도 안 씁니다.
┌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다 → 여기저기로 알아보다 / 온갖 곳에 알아보다
└ 사방팔방으로 주선해 → 곳곳에 다리를 놓아 / 이곳저곳에 다리를 놓아
말씀씀이를 넓히거나 말테두리를 넓힐 수 있기에 쓰는 ‘사방팔방’인지 궁금합니다. 말생각을 키우거나 말느낌을 북돋울 수 있기에 쓰는 ‘각지’나 ‘각처’인지 궁금합니다.
말씀씀이를 넓힐 수 없다고 느껴서 ‘이곳저곳’ 같은 토박이말은 멀리하는지, 말테두리를 좁힐 수 있다고 느껴서 ‘여기저기’ 같은 토박이말은 뒷전으로 여기는지, 말생각을 키우는데 걸리적거려서 ‘곳곳’ 같은 토박이말은 내치고 있는지, 말느낌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면서 ‘둘레’ 같은 토박이말은 한 수 접어 놓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고이고이 아껴 두었다가 큰 자리에 한 번 쓸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ㄴ. 사방팔방으로 둘러싸인 현대문명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방팔방으로 둘러싸인 현대문명에 하나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38쪽
‘충분(充分)히’는 ‘넉넉히’나 ‘너끈히’로 다듬습니다. “하나의 활로(活路)를 개척(活路)할”은 “숨구멍 하나를 틀”이나 “살길 하나를 마련할”로 손봅니다. ‘확신(確信)’은 ‘믿음’이나 ‘굳센 믿음’으로 손질해 줍니다.
┌ 사방팔방으로 둘러싸인 현대문명
│
│→ 겹겹으로 둘러싸인 현대문명
│→ 빽빽이 둘러싸인 현대문명
│→ 옴짝달싹 못하게 둘러싸인 현대문명
│→ 모든 곳이 둘러싸인 현대문명
└ …
우리 삶터는 자연에 둘러싸여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물질문명으로만 둘러 놓고 있습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물질문명에 휘감긴 채 살아갑니다. 자연이 없으면 잠깐조차 살 수 없는 사람이건만, 우리들은 자연을 무너뜨리거나 갉아먹기만 할 뿐, 자연을 돌보거나 아끼면서 우리 삶을 일구어 나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 삶뿐 아니라 삶을 이루는 말도, 삶을 나타내는 글도,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자연하고는 멀어집니다.
자연하고 멀어지니 삶뿐 아니라 글도 자연스러움이 사라집니다. 자연하고 울타리를 쌓으니 삶터뿐 아니라 말 또한 자연스럽게 뻗아나가지 못합니다. 억지스러움이 감돌거나 깊어지면서, 부드러움이 아닌 딱딱함으로 굳어 갑니다. 넉넉함이 아닌 속좁음으로 어그러집니다.
수월하게 꾸리며 알뜰살뜰 여미어 낼 삶이나 글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손쉽게 돌보면서 아름다이 엮어낼 삶터나 말로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ㄷ. 사방팔방 펼쳐진 푸른 벌판
.. 사방팔방 펼쳐진 푸른 벌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외출 .. 《이유경-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인물과사상사,2007) 16쪽
‘벌판으로부터’는 ‘벌판에서’로 고쳐 주고, ‘유일(唯一)한’은 ‘한 번뿐인’이나 ‘하나 있는’이나 ‘딱 한 번뿐인’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외출(外出)’은 ‘나들이’로 손봅니다.
┌ 사방팔방 펼쳐진 푸른 벌판
│
│→ 두루 펼쳐진 푸른 벌판
│→ 드넓게 펼쳐진 푸른 벌판
│→ 하늘 끝까지 펼쳐진 푸른 벌판
│→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벌판
└ …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아도, 앞을 보고 뒤를 보아도, 저 멀리 보이는 땅 끝까지 내다보아도 온통 푸른 벌판이었는가 봅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벌판”이었군요. 하늘 끝까지, 땅 끝까지 이어진 벌판으로 느껴지겠어요. 온통 푸른 벌판뿐이니 참 ‘드넓게’ 펼쳐졌다고 느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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