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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5)

― ‘엄마의 짐정리’ 다듬으면서 우리가 쓸 말을 생각하기

등록|2008.12.12 11:44 수정|2008.12.12 11:44
엄마의 짐정리

.. 아빠는 아저씨가 가신 뒤 피곤할 텐데도 엄마의 짐정리를 도와주셨단다 ..  《고정욱,이연숙-아이를 키우며 나를 키우며》(고려원,1991) 137쪽

 ‘피곤(疲困)할’은 ‘고단할’이나 ‘힘들’로 손봅니다. ‘정리(整理)’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갈무리’나 ‘치우기’나 ‘풀어놓기’로 다듬어도 어울립니다.

 ┌ 엄마의 짐정리를
 │
 │→ 엄마 짐 정리를
 │→ 엄마가 짐정리를 하도록
 │→ 엄마가 짐을 치우도록
 │→ 엄마 짐을 치울 때
 └ …

 생각해 보면, ‘피곤’이나 ‘정리’ 같은 낱말은 얼마든지 다듬어 낼 수 있습니다만, 얼마든지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아직까지도 무슨 뜻으로 사람들이 뇌까리는지 모르는 낱말인데, ‘멜랑꼴리’ 같은 낱말을 쓰든 말든, 쓰고 싶은 사람 마음이라고 내버려 둘 수 있습니다. 그냥저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남 일이라고 한다 해서 말썽이나 골칫거리가 생기지 않아요.

 언제였더라, 일산에서 인천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오는데, 제 옆에 서서 가는 여대생 둘이 수다를 떨면서 ‘존나 씨발 짜증나’라는 말을 서른 번 가까이 내뱉더군요. 이 여대생이 ‘존나’ 말밑이 어떻게 되는 줄 알까 모를까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는 셈입니다. 알면서 쓸 수 있고 모르니 쓸 수 있습니다. 저나 다른 사람이나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니 이렇게 떠들거나 저렇게 떠들거나 잠깐 귀 닫고 있으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으레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분들을 부대낍니다. 양복을 말끔히 빼입고 쉬지 않고 말씀하시는데, 이분들을 전철 밖으로 끌어낼 수 있지만, 그냥 참고 말없이 기다리면서 어서 지나가 주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산들 내 삶에 무슨 영향을 끼치겠느냐 싶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말이 우리 말과 글을 얼마나 더럽히겠느냐 싶습니다.

 ┌ 엄마가 짐 정리를 할 때 도와주셨단다
 ├ 엄마가 짐 정리를 하는데 도와주셨단다
 ├ 엄마가 짐 정리를 얼른 끝내도록 도와주셨단다
 └ …

 저는 ‘피곤’이나 ‘정리’ 같은 한자말을 우리들이 쓸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안 씁니다. 때에 따라서 고단하고 고되고 고달픕니다. 힘들고 힘겹고 벅찹니다. 다 다른 때에 다 다른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짐 하나를 놓고 어느 때에는 갈무리를 하지만, 어느 때에는 치웁니다. 어느 때에는 가지런히 맞춥니다. 어느 때에는 풀어놓고 어느 때에는 추스릅니다. 다 다른 곳에 다 다른 말맛을 살리면서 이야기를 펼치고 싶습니다.

 ┌ 엄마가 짐을 풀 때 도와주셨단다
 ├ 엄마가 짐을 추스를 때 도와주셨단다
 ├ 널브러져 있는 엄마 짐을 잘 여미어 주셨단다
 ├ 쌓여 있는 엄마 짐을 가지런히 해 놓았단다
 └ …

 말은 하기 나름입니다. 글은 쓰기 나름입니다. 삶은 살아내기 나름입니다. 사람은 어울리기 나름입니다. 똑같은 책 하나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서 마음에 스며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매한가지인 일이라도 어떤 매무새로 붙잡느냐에 따라서 온몸으로 파고드는 보람이 달라집니다.

 ┌ 엄마와 함께 짐을 추스르셨단다
 ├ 엄마와 함께 짐을 풀어놓으셨단다
 ├ 엄마와 함께 짐을 치우셨단다
 └ …

 쓰고픈 낱말을 쓰더라도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살아가면서 쓰는 한국말을 잘 여미어 줄 수 있으면 그지없이 고맙습니다. 쓰고픈 말투를 펼치더라도 한겨레가 이 땅 얼과 넋을 고이 어루만지는 마음결로 잘 북돋워 줄 수 있으면 더없이 반갑습니다. 쓰고픈 글을 쓰고 하고픈 말을 하더라도 나 혼자만이 아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기쁘게 받아들일 만한 말느낌과 글느낌을 헤아려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삶이 곧 말이고, 말이 곧 삶입니다. 삶이 곧 생각이고, 생각이 곧 삶입니다. 삶이 곧 내 매무새이고, 내 매무새가 곧 삶입니다. 한 해도 크고 한 달도 크며 하루도 큽니다. 한 시간도 크고 일 분도 크며 일 초도 큽니다. 어느 한때 우리한테 아름답거나 크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고받거나 내어놓는 말마디 가운데 아름답지 않거나 크지 않은 말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작은 하나에서 비롯하듯이, 우리 말 문화도 작은 말마디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토닥토닥 감싸고 껴안고 사랑해 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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