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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윗채 비우고 아랫방 쓰는 까닭

"기름값이 무서워 보일러 땔 수가 있어야지"

등록|2008.12.14 18:43 수정|2008.12.14 19:07

▲ 내가 찾아뵈었던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런 허름한 아랫방에 기거하고 계셨다. ⓒ 김주완


저는 취재차 시골마을 어르신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이 잦은데요. 요즘 날이 추워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번듯한 윗채를 그대로 비워둔 채 낡고 다 쓰러져 가는 아래채 쪽방에서 기거하시는 농촌지역 어르신들이 많더라는 겁니다.

처음엔 이상한 생각도 했습니다.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아랫방으로 쫓겨났나? 아니면, 그냥 사랑방에 있는 게 익숙해서?

그런데, 어느날 하루 해가 지고 난 뒤 어두운 시간에 경남 함양군 백전면의 한 어르신을 찾아뵈었는데, 거기도 아래채에 기거하고 계시더군요. 윗채는 아예 불도 꺼져 있었고, 할머니도 아랫방에 함께 계셨습니다.

▲ 윗방에 계시는 분들은 어김없이 아직 아궁이가 남아 있는 가옥구조였다. ⓒ 김주완


▲ 한 농가에서 저녁무렵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고 있다. ⓒ 김주완


할머니와 함께 계신 상황이라면 제가 짐작했던 이유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왜 윗채를 놔두고 여기 아랫방에 계세요?"
"아, 그거야, 기름값이 무서워서 보일러를 땔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그냥 겨울에는 아랫방에 군불 때고 여기서 사는 거지 뭐."

아하! 그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끔 윗채를 쓰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런 분의 경우 윗채에도 아직 장작을 때는 아궁이가 남아 있는 가옥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 함양읍 변두리에서 한 할머니가 살고 있는 월세 8만 원짜리 단칸방 입구. ⓒ 김주완


▲ 한 할머니의 단칸 셋방. 기름값이 무서워 잠들기 전 전기장판으로 데운 후 스위치를 끄고 잠든다. ⓒ 김주완


이처럼 아궁이가 남아 있는 집에서는 이렇게 장작이라도 때고 삽니다. 하지만, 읍내 도시지역에서 단칸 셋방살이를 하는 노인들은 아궁이조차 없어 장작이나마 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아뵈었던 한 할머니는 주무시기 전 전기장판을 꽂아 이불 속이 따뜻해지면 다시 스위치를 끈 후 주무시기도 하더군요.

도시에 계신 자녀 여러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보일러 놔드리는 것만이 효도는 아닙니다. 이왕 해드리려면 기름값까지 두둑이 보내주세요. 아니, 그러지 말고 이런 겨울에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직접 보일러에 기름을 넣어드리고 오세요.
덧붙이는 글 김주완 블로그(http://2kim.idomin.com)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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