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길지 중 길지...세종 18왕자 태실이 군집을 이룬 곳

태실의 고장 성주군, 회연서원과 성주향교, 세종대왕자태실

등록|2008.12.15 09:45 수정|2008.12.15 09:45
12월 날씨가 조금은 싸늘하나 여전히 답사 가는 길은 즐겁기만 하다. 경북 성주군 일대의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오랜 느티나무와 어울리는 회연서원 

회연서원은 한강 정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제자들이 세운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짓고 회연서원이라 이름붙였다. 그 후 숙종 16년(1690)에 임금으로부터 회연(檜淵)이라는 이름과 토지·노비를 하사 받았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되었다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대부분 건물이 복원되었다.

회연서원 입구회연 서원 입구에는 2층의 누각이 있다. ⓒ 김환대


입구에는 2층 누각이 있고, 400년생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있다. 조금 돌아가면 정구선생 신도비가 있는데 거북형의 비석 받침에 잘 쓰여진 글씨로 쓴 비석과 머리 부분인 이수에는 생동감이 넘치는 용들이 조각되어 있다.

400년생 느티나무오랜 세월의 역사를 중명하듯 400년생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있다. ⓒ 김환대


신도비거북 모양의 비석 박침위로 비몸돌과 머리인 이수가 다 갖추어진 형태로 몸돌의 글씨도 아주 잘 쓰여져 있다. ⓒ 김환대


회연서원의 현판 글씨는 한석봉의 글씨라 전하나 의문이 든다. 현판을 사이에 두고 미수 허목의 글씨로 알려진 망운암, 옥설헌 등의 미수가 글씨가 여기저기 보인다.

허목글씨미수 허목의 글씨 ⓒ 김환대


미수 글씨미수 허목의 글씨이다. ⓒ 김환대


앞뜰에는 백매원이라는 매화나무가 있으나 겨울철이라 그저 황량하다. 주변에는 무흘구곡이 있어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화장실도 목조 건물로 단칸을 지어 놓은 게 특이했다.

매화나무오랜 매화나무라 전한다. ⓒ 김환대


사당이 오른쪽과 왼쪽 모두 배치되어 있어 구조면에서도 조금은 다른 서원들과 달라 보였다. 한강 정구 선생은 전국 20개 서원에 제향되어 있다. 

전국에 가장 많은 태 무덤이 있는 곳

성주군에서 요즘 가장 먼저 강조 하는 것이 태문화로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 정상에는 세종대왕 왕자태실이 있다.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앞줄에 11기, 뒷줄에 8기 총 19기의 태실이 있었다.

세종대왕자태실 전경19기의 태실 전경 ⓒ 김환대


세종대왕자태실 배치도현지 안내간판에는 배치도로 잘 설명되어 있다. ⓒ 김환대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동생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안평대군)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았다. 태비 중에 2기는 귀꽃 무늬 조각이 장식되어 있어 주목되며 수양대군의 태비는 특이히게 귀부와 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수양대군 태비수양대군의 태비는 일반 태비와 달리 귀부와 이수를 다 갖추고 있다. ⓒ 김환대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공사 때 분청인화문대접·뚜껑, 평저호 및 지석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경북대학교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가까이엔 이곳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이었던 선석사가 있다.

한 곳에 이렇게 많은 태실이 유존하고 있는 곳이어서 성주를 찾으면 꼭 들러야 하는 답사지이다. 여러 가지 긴 설명을 들었는데, 이 곳은 전국의 길지 중에 길지라 한다.

하늘 높이 솟은 석탑

성밖 숲을 지니고 도착한 곳은 도로변에 비닐 하우스 주변에 높게 솟은 동방사지 칠층석탑이다. 7층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9층이었다고 전한다. 동방사는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절이 모두 불타버렸다고 한다. 각 몸돌에는 중간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1층 몸돌에는 문 모양을 깊게 새겼다.

동방사지 칠층석탑높게 탑이 솟아 있어 도로변에서도 보인다. ⓒ 김환대


1 ·2 ·3층 지붕돌 네 귀퉁이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어 다른 석탑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며, 성주 땅의 기운을 보호하는 의미에 지기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물로 지정된 성주향교

동방사지 칠층석탑 맞은편 길을 건너면 도로변에 많은 조선시대 부윤비를 비롯하여 각종 비석들이 줄지어 있는 비석거리가 있다. 그중 철로 만든 철비가 있어 주목되었다.
골목길로 접어들어 성주 향교를 가는 도 중 길가에는 작은 단칸 건물에 돌을 모시고 있는 곳이 있는데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비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영험한 돌로 보인다. 가는 길에는 또 담벽에 큰 시계가 걸려 있어 이색적이었다.

모셔진 돌성주향교 가는 마을에 모셔진 돌이다. ⓒ 김환대


성주향교는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인지 멀리서도 바라다 보였다. 한 참 주변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보물 제1575호로 지정된 대성전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는 대소인 하마비가 있고 명륜당이 좌측에 대성전이 우측에 있다.

성주향교 대성전향교 건물로는 규모가 매우 큰 건물이다. ⓒ 김환대


대성전은 다포형식으로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드문 건물이다.

다포양식성주향교는 다포 양식이 보인다. ⓒ 김환대


성주군의 많은 문화유적 중 일부만 둘러보고 한개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