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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 그리운 계절, 아직도 겨울이 많이 남았습니다

[포토에세이] 들꽃이 그리운 계절에 들꽃에게

등록|2008.12.16 08:19 수정|2008.12.16 08:19

봄꽃-꽃다지이른 봄 들판에 피어나는 작은 병아리를 닮은 꽃 ⓒ 김민수


만일 봄꽃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봄이 왔는 줄 알았을까? 찬바람 쌩쌩 불어도 저 들판 어딘가에 노란 꽃다지 피어나고, 숲에서 바람꽃 피어나면 봄이 오는 것이 보인다.

자연엔 그들만의 시계가 있다. 우리들도 그들의 시간을 따라 살아갈 수 있다면 조금 더 행복과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을 터이다. 그토록 풍요롭다 못해 사치스럽게 갖고도 여전히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자연의 시간을 따라 살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도시의 불빛을 따라 살아가는 부나비 같은 사람들, 자연의 빛을 잃어버린 결과 부나비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죽을 줄도 모르고 불로 날아드는 부나비는 차라리 인간에 비하면 지혜롭다.

들꽃에게.
죽은 듯하여도 죽지않은 당신들을 닮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라진 듯하여도 사라지지 않은 당신들, 동토에 꼭꼭 숨어있는 당신들을 닮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온 세상을 다 호령하는 듯하여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사람입니다.

개망초와 배추흰나비여름꽃 개망초의 아침, 그들은 쉼터이기도 하다. ⓒ 김민수


지천에 피어있는 꽃이라 한창 피어있을 때에는 관심밖으로 밀려난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지천에 피어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그들은 지천에 피어날 것이다.

개망초처럼 지천에 피어나는 꽃, 나는 그들과 같은 들꽃을 보면 민중들을 떠올린다. 지천이라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는 민중들 말이다. 어려운 시절일 수록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구호는 넘쳐나지만 여전히 그들은 착취를 당할 뿐이다.

사랑에 대한 이론이 없어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듯, 사랑한다는 말은 넘쳐나도 사랑이 없듯이 그들이 당하고 있는 아픔을 어떻게 해결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없어서 그들의 고통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진 자들이 덜 가지는 실천이 없기 때문이다.

들꽃에게.
지천에 피어있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흔하지 않게 피어난 것도 고맙습니다. 지천이라고 대충 피어나지 않고, 흔하지 않다고 잘난체 하지 않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별 것도 아닌, 지천인 꽃보다도 못한 사람이 너무 드센 세상입니다.

오이풀과 코스모스가을꽃 코스모스-이슬 속에 피어난 코스모스가 싱그럽다. ⓒ 김민수


간혹, 사람다운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나를 본다. 이미 말로 다한 사랑, 이미 말로 다한 희망, 이미 말로 다한 나눔, 비움 그리고 아름다운 수많은 단어들이 파편들이 화살촉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내 안에 들어있는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의 모습, 내 안에 들어있는 증오하는 사람의 모습, 내 안에 들어있는 가장 추악한 사람의 모습, 내 안에 들어있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만 잔뜩 품고 있는 나를 볼 때 나는 전율한다. 그리고 간혹은 자포자기한다. 그게 사람이라고.

이슬방울에 새겨진 나무며 하늘이며 달과 별, 들꽃과 구름과 산과 바다를 볼 때마다 나는 조바심이 난다. 아주 작은 떨림에도 이내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이슬의 마음은 무엇일까? 내가 만일 내 마음에 저런 것들을 담았다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쳤을까? 그래서 내 안에는 저렇게 아름다운 잔상들이 없는가 보다.

들꽃에게.
당신들은 필요한 것 이상 가질 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필요이상을 갖고도 더 가지려고 발버둥칩니다. 그래서 늘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이 늘 행복한 이유,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인데 우리에게는 너무도 어렵습니다.

수선화겨울꽃 수선화, 제주는 지금쯤 수선화가 한창일 것이다. ⓒ 김민수


문득, 그 곳이 그리워진다. 지금쯤 뜰에는 수선화가 입에 씹힐듯 진한 향기로 가득차 있을 터이다. 오늘 밤 달빛에 기지개를 켜고 내일 아침 해가 뜨기전 꽃향기 가득 머금은 꽃몽우리 터뜨리겠지.

그때처럼 피어나는 꽃보며 좋아라하는 이가 그 곳에 있을까? 없으면 어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피어날 것이다. 그들은 사실 내가 좋아라해서 피어난 것이 아니었으니.

들꽃에게.
지난 가을만 해도 이렇게 당신, 들꽃이 그리울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치, 경제, 교육할 것없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대로 돌아가버린 듯한 상황에서 누구도 나를 위로해 주질 못합니다. 그저 창고에 남아있는 시들지 않는 당신들만이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줄 뿐입니다.

겨울꽃 동백, 수선화 비파 그리고 가을꽃이건만 여전히 피어있을 해국, 갯쑥부쟁이가 그립다.  아니, 꽁꽁 얼어붙은 동토가 녹아내리고 꽃다지 피어나는 봄, 바람꽃 피어나는 봄이 그립다. 그런데 아직 겨울이 깊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겨울이 시작되었든 아니든 봄은 올 터이니, 겨울이 깊어갈 수록 봄은 가까울터이니 그리움 조금만 더 참자. 기쁨이 더 클 터이니.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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