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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강단에 선 공지영 "성형하지 마세요"

인기 소설가를 불러낸 창원 신월고 학생들의 '작은 기적'

등록|2008.12.16 16:23 수정|2008.12.16 21:52

▲ 20여권에 이르는 많은 책을 집필한 인기 소설가 공지영씨. 창원 신월고등학교 학생들의 간절한 바람 덕에 작가도 생애 처음으로 고교 강단에 서게 되었다. ⓒ 조우성


‘창원 신월고등학교’ 학생들의 간절한 소원이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의 마음을 움직였다.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가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 준 것이다. 오랫동안 갈망했던 인기작가 ‘공지영씨와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공지영씨 자신에게도 일생중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고교 강단의 연사로 서게 만든 것이다. 자우림이 부른 르샤마지끄(Le chat magique)의 가사처럼 마법사의 푸른 지팡이가 조화를 부린 것이다. 마법이 일어난 것이다. 학생들의 ‘애타는 바람’이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이 연재물 게재로 바쁜 인기 작가 공지영씨를 경남 창원으로 불러 내린 신월고등학교의 ‘작은 기적의 사연’이다.

‘우리 학교는 2003년 개교하여 역사가 얼마 되지 않은 학교입니다.
그런 우리 학교에는 저희를 이끌어 주시고 격려를 전해주실 선배님이 거의 없답니다.
그런 우리에게, 역사가 긴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은 부러울 때가 많아요.
사회에서 성공한 선배님들께서 학교에 방문하시거나 격려를 전하실 때
우리에게도 그런 ‘멘토’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답니다.

그래서 열 여덟 살 우리는, 배우고 싶습니다.
더 많은 시간 세상을 살아오신,
꿈을 이루고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신 선배님의 체험담을 들으며…

학교의 선배님은 아닐지라도,
인생의 선배이자 삶을 이끌어 가는 조언을 들려주신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의 꿈을 키우는 데 격려와 희망을 안겨주실 멋진 분과 만나고 싶은, 저희의 소원.

그 중 우리가 꼭 만나 뵙고 싶은 분은 작가 공지영님입니다.’

▲ 사인회가 끝나고 작가와 남은 학생들, 선생님들이 즐겁게 단체사진을 찍었다. ⓒ 조우성


▲ 작가와의 만남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선생님들. 왼쪽에서 여섯 번째가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민영 국어선생님 ⓒ 조우성


창원 신월고 학생들은 이런 내용을 담은 플래시를 만들어 지난 7월,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 주최한 ‘즐거운 학교 만들기-알라딘의 요술램프’ 전국 인터넷 국민제안공모전에 응모를 하였다. 결국 전국의 수많은 학교들을 제치고 고등학교로서는 유일하게 창원 신월고 학생들의 ‘바람’이 선택됐다. 이런 순수하고 열정적인 재학생들의 바람은 작가의 가슴을 움직였고, 작가는 이 요청을 수락했다. 결국, ‘신월고 학생들과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학생들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공지영씨가 강단에 선 15일 오전 10시 30분, 대강당은 학생 500여명으로 꽉 찼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원했던 작가와 만나게 된다는 반가움과 설렘으로 들떠 있었다. “신월고 학생들 덕분에 평생 처음으로 고등학교 강단에 서게 됐다”는 노련한 작가도 “조금은 떨린다”면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조금은 엄하게 첫 일갈을 내 뿜었다.

“어른이 되는게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어른’이 되는가가 중요해요. 응모작품을 보니 학생들의 꿈도 다양하고 꽤 현실적인 것 같았어요. 검사, 판사, 정치인, 기업가 등. 근데 무엇이 되는 것은 두 번째 문제예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 되는가예요. 어떤 검사, 어떤 판사, 어떤 정치인, 어떤 기업가가 되는 것이 중요해요. 프랑스의 ‘아베 삐에르’ 신부님은 빈민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그런 일을 하셨지만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으로 뽑혔어요. 부자도 아니고 권력자도 아닌데.”

▲ 학생들은 작가와의 만남, 친필사인을 받는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 조우성


▲ 책을 가슴에 소중하게 들고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학생들. 즐거운 표정이다. ⓒ 조우성


학교의 선배는 아닐지라도, 인생의 선배에게 삶을 이끌어 가는 조언을 듣고 싶다는 마음에 불타있는 학생들에게 작가의 말은 금과옥조였다. 모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여러분은 우주가 만들어낸 단 하나뿐인 생명입니다. 시끄럽다고, 더럽다고 친구를 모두  없애버리다면 그 친구를 누구도 다시 만들 수 없잖아요. 어떤 사람이든지 보석보다 귀중한 존재예요. 누구도 그 자리에 다 있어야 될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옆의 친구들을 인정하라, 왕따 시키지 말라는 이야기 같다. 근데, 성형수술 이야기가 나오자 학생들의 반응이 민감해졌다.

“내 몸의 일부, 내 신체의 일부를 영혼의 교감없이 함부로 하면 30~40대가 되어서 얼굴에 막 드러나요. 성형수술을 해도 소용없어요. 몸은 한가지를 뜯어 고치면 하나가 이상해집니다. 인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마이클 잭슨’을 보세요. 할리우드의 최고 기술로 성형수술을 해도 얼굴이 무너지잖아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연예인들의 얼굴 무너진 사진이 인터넷에 많이 떠돌게 될 거예요. 성형수술 하지 마세요. 내면의 빛을 밝게 빛내세요.”

여기 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성형수술 하지 말라는 작가의 말에 외모에 관심이 많을 학생들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진다. 강연은 본론을 지나 막바지에 다다른다. 작가는 학생들에게 ‘좋은 시민’이 될 것을 요구한다.

▲ 500여명의 학생들이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바닥은 차가웠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이 초청한 인생 선배의 강의를 열심히 경청했다 ⓒ 조우성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좋은 시민이 될 수 있어요. 청소부나 가난한 사람도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좋은 시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감시할 줄 알아야 됩니다. ‘감시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깨어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깨어있음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생각하는 것에서 일어납니다. 생각할 줄 아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됩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세상 최고의 왕자, 공주가 될 지 모르는데 의미 없는 인생을 살 수는 없잖아요.”

강의가 끝났다. 학생들은 감사의 환호성을 지르고 우렁찬 박수로 작가의 좋은 말씀에 화답했다. 학생들이 미리 준비한 질의-응답시간을 가진 뒤, 작가의 사인회가 뒤따랐다.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책을 들고 길게 줄을 섰다. 다들 환한 얼굴이다. 친필 사인 받을 생각에 즐거운 모양이다.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김민영(여·국어담당) 선생은 “학생들이 7월부터 응모준비를 했어요. 이번 행사를 10월 말에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사정으로 연기가 됐어요. 행사가 잘 끝나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참 좋네요.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다들 책을 사서 읽고 그랬어요”라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이번 행사에 만족한 것 같다.

▲ 김미란을 비롯한 6명의 학생들이 공지영 작가의 모교방문을 축하하는 연주회를 가졌다. ⓒ 조우성


강의 처음부터 작가의 말에 귀기울이며 열심히 담아 적었던 임윤섭(남, 2학년 9반) 학생은 강의가 끝난 뒤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껴졌단다.

“저는 솔직히 외모를 중시하며 살았어요. 근데 작가님이 '내면이 빛나는 사람은 성형한 사람보다 몇 배나 아름답다'고 하신 말을 듣고는 참 내가 한심하다고 느껴졌어요.  이번에 인생 선배님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았어요. 아마 제 인생에 있어 두 번 다시 못 뵐 인연이 되겠지요. 하지만 짧고도 길었던 공지영 작가와 함께한 시간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할 거예요.”

모교 선배는 아니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삶을 이끌어 가는 조언을 들려준 공지영 작가의 강연이 학생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고 꿈을 키우는 데 일조한 것 같다. ‘우리에게도 ‘인생의 멘토’가 있었으면 한다’는 창원 신월고 학생들의 이런 ‘겸손한 생각’이 국민들을 이끌어 가는 정치인들의 머리에서 자발적으로 일어 난다면 좋을텐데… 무리일까?

"저도 학창시절에 잘난 척 하는 '왕따'였어요"
-학생들이 준비한 공지영 작가와 묻고 답하기

▲ 학생들이 미리 준비한 '공지영 작가님, 질문있어요' 게시판 ⓒ 조우성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한 반이 70명이었는데, 왕따 당했어요. 잘난 척하고 다녀서 친구들이 싫어했어요. 근데, 책을 많이 봐서 사람이 되었어요. 하하. 동창모임때 친구들이 저를 보고는 ‘우리반 69명을 왕따시킨 아이’라고 하면서 웃데요."

-어떤 계기로 작가가 되었나요
"할 줄 아는게 이것 밖에 없었어요. 이것을 잘 할 것 같아서 작가가 되었어요."

-글의 소재은 어떻게 발굴하나요
"일상 전체에서 구해요. 신문, 인터넷을 유심히 보다가 머리를 ‘팍’ 치는 것에서 얻기도 해요."

-작가를 지향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것은 뭔가요
"개화기 때에는 폐병이 걸리면 약이 없어 단명했어요. 그래서 20대에 빨리 좋은 작품 쓰고 죽으면 유명작가가 되었어요. 근데, 지금은 수명이 길어져 20대에 좋은 작품 쓰면 백수되기 쉬워요. 저는 30대 이전에 작가가 되지 말라고, 젊을 때는 돈을 많이 벌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세상을 움직이는 현실적인 동력이 돈이잖아요. 좋든 싫든 이것을 받아들여야 되요.

10만원을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팔아야 될 때도 있어요. 치사하다고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도 하고,  따스함을 받아볼 수도 있어요. 돈을 벌면서 이세상의 아픔을 알고, 세상을 읽어내야 되요. 소설은 사람과 부대끼고, 돈을 벌고, 돈을 쓰고… 필히 돈을 벌어봐야 세상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책을 죽도록 읽어야 됩니다. 제가 <토지>를 열심히 읽을 때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는데 그 말이 경상도 사투리로 들리더라구요. 모든게 경상도 사투리로 들리고 보였어요. 소설을  많이 읽으니까 그런 현상이 생기데요."

-어려운 시기도 있었는데,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좀 쉬었다 하려니 머릿속에는 들어 있는데 그게 손으로 안 써지데요. 그렇지만 돈이 없어 글을 써야 했어요. 아이들과 먹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열심히 썼어요.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돈만을 위해서 글을 쓰지는 않았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이가 셋인데, '누가 최고 이뻐?'라고 물어 오면 '다 이뻐!'라고 말해요. 근데 ‘최근에 사귄 사람을 제일 못 잊는 법’이라고 하데요. 저도 최근에 쓴 작품을 못 잊어요."

-다른 작가의 작품을 추천한다면
"황석영씨 초기단편집을 봤으면 좋겠네요. ‘입석부근’과 ‘아우를 위하여’ 2개를 꼭 읽었으면 좋겠어요."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배우 강동원씨 잘 생겼죠.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온다) 강동원씨랑 만나고 이야기 할 수 있어 좋았어요. 하하.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이 영화를 보면 영화가 시시하고,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는 사람은 소설이 재미가 없어요. 이것은 장르상의 특징이겠죠."

-작가에게 자녀들이란
"어저께까지 아이 낳지 말라고 말하며 다녔어요. 아이들은 나에게 고통의 의미, 인간이 무엇인지 가르쳐 줬어요. 요즘은 ‘부모님도 나 키울 때 이렇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식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마음이 어떤가요
"자식이 미울 때 가슴 한 쪽이 너무 찢어지게 아파요. 선생님들에게 사랑하는 제자도 마찬가지 일 거예요. 미운 강도만큼 내 마음도 너무 너무 아파요.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것이 이런 것인가 봐요."

-어떤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세요
"돈을 많이 벌었다고 성공한 것인가요. 그럼 로또가 당첨되면 성공한 것인가요. 유산을 받아서 빌딩을 갖고 있으면 성공한 것인가요. 성공에는 조건이 두 가지가 있어요. 그 첫째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어느 분야에서 탑클래스가 되면 성공한 것 맞아요.

두 번째는 더불어 사는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되요. 컴퓨터 바이러스를 보고 치료법을 나누어 주는 사람, 아이들 소아마비 증세를 보고 치료제를 개발하여 낫게 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에요. 자신이 잘 하는 것으로 남들에게 혜택을 줄 때 그게 진짜 성공한 것이에요."

-작가의 목표는
"남에게 따뜻하고 희망을 주는 사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이에요. 여러분과 만나 이야기하고 좋은 말 나누고.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여러분들이  제일 예뻐요."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에 학생들은 "와~"하는 기쁨의 함성을 외치고, 힘찬 박수소리로 응답했다.
첨부파일
.image. 새로운학교 프로젝트.ppt
덧붙이는 글 다음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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