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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마저 따뜻한' 사람사는 이야기

뮤지컬 <달밤 블루스>

등록|2008.12.17 11:18 수정|2008.12.17 11:18

뮤지컬 <달밤 블루스> 포스터 ⓒ 노동문화예술단 <일터>


요즘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뮤지컬’ 공연에는 비교적 관객이 몰린다고 들었다. 외국의 값비싼 대작을 그대로 올리기도 하고, 엄청난 제작비를 들이기도 하고, 유명배우를 캐스팅하는 스타마케팅 얘기도 들려온다.

그대로 말하자면 이런 ‘뮤지컬’을 본 적이 없다. 지방에도 가끔씩 이런 무대가 초청되고 또 연말연시나 이른바 대목을 노리는 장사속의 공연도 있다. 기회가 없어서는 아닐 터이고 경제적 부담이나 어쩌면 뮤지컬의 참맛을 모르는 문화치(痴)인 탓도 클게다.

지금 부산 시민회관 뒤편의 어느 소극장에서는 춤과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조그마한 공연을 하고 있다. 노동문화예술단 ‘일터’의 작은 뮤지컬 <달밤블루스>가 그것. 주로 밤에 일하는 환경미화원, 아니 청소부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달동네 서민들의 애환과 눈물, 정,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지레 짐작은 마시라. 꾀죄죄한 일상이나 궁상스런 가난에 갇혀있는 풀죽은 모습이거나 대개 티비에서 보는 껍데기 가난이나 ‘개천에서 용나는’ 식의 신데렐라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밤의 정령’들이 등장해 산동네 달밤을 놀이터 삼아 멋진 춤사위로 어우러지는 오프닝부터 무대는 코믹하고 가볍다. 밝고 경쾌한 리듬의 따스한 노랫말 속에 서정성 짙은 한밤의 정취를 전해주기도 하고 갖가지 에피소드 사이에 활기차고 역동적인 군무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달동네의 없이 사는 이들, 뭔가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말그대로 미화하는 것은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극의 재미는 배우들이 실제로 며칠 동안 청소부들의 실제 작업 과정을 쫓아다니며 익힌 사실적 상황과 자연스런 연기 속에 있다. 더하여 구청의 용역업체인 회사 사장과 비리를 들추며 싸우는 일까지 부산 어느 지역의 사례를 토대로 하고 있다.

때로 오래 전 기억을 끄집어내는 듯한 장면도 없진 않지만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와 멋진 안무, 입에 달라붙는 노랫말과 리듬을 타면서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다 보면 어느덧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에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것이 소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일 터이고.

본격적인 겨울추위와 연말연시를 맞은 지금, 세상은 반갑고 기분좋은 일보다 몸이며 마음 움츠려드는 일만 많다. 생각해보시라. 부족하고 소박한 삶 속에 따스한 정을 느끼고 어울려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 그것 말고 무엇이 삶이겠는가.

뮤지컬을 몰라도 좋고, 화려하고 눈보기 좋은 판타지에 잠시 마음을 주어도 좋겠지만 돌아와 서있는 제자리에서 ‘눈물꽃’과 ‘겨울비’ 속에 환한 정월 대보름같은 온기를 느끼고 나누는 일, 우리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내일을 살아가는 조그만 힘을 얻는 일. 필요하지 않겠는가.

동작 하나, 동선 하나, 대사 하나에 몇 번씩 같은 연기를 반복하며 훈련하던 배우와 연출자 그리고 안무, 음악, 음향과 조명에까지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낸 스태프 여러분의 열정과 노고에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 겨울 ‘찬바람 마저 따뜻한’ 한 편의 사람사는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권해본다.
덧붙이는 글 일터 홈페이지나 전화로 예약하시면 싸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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