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마을에 메주가 익어간다
[윤희경의 山村日記] 내고장 12월은 메주 쑤는 달
▲ 통가마솥에 메주를 쑤고 있다 ⓒ 윤희경
산골 마을에 메주 쑤기가 한창이다. 메주를 쑤려면 콩부터 골라내야 한다. 콩을 잘 고르려면 흰콩들을 소반에다 한 줄로 세워놓고 눈에 불을 밝혀야 한다. 벌레 먹은 것, 썩은 것, 반쪽자리, 쭈그러진 것, 작은 돌 부스러기들을 고르다 보면 겨울해가 짧기만 하다.
부녀회원들이 회관 가득 모여 콩을 고르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여인들이 모이면 입방아가 돌아갈 법도 하건만 이따금 콩 굴러가는 소리만 콩콩거릴 뿐이다.
"아줌마, 지루한데 텔레비전이나 보며 고르면 안 될까요?"
"무슨 소리여, 예부터 말 많은 집에 장맛은 쓰다 했어, 메주 쑤는 동안은 말을 삼가야 혀."
이제야 조용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 으깨진 콩반죽 범벅 ⓒ 윤희경
콩을 씻어 물을 삔 다음 무쇠 가마솥에 안치고 두 배정도의 물을 부어 열을 올리기 시작, 이제나저제나 콩 삶아지기를 기다린다. 그 때마다 가마솥 뚜껑사이로 새어나온 삶은 콩 냄새로 콧속이 구수해온다.
메주콩을 쑤는 작업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평생 동안 콩을 쑤어왔다는 부녀회장님 몫이다. 콩을 푹 삶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한 소금 부르르 끓으면 뭉근할 정도로 불길을 조절하며 뜸을 들이고 또 들인다. 콩이 잘 무르도록 위아래로 여러 번을 저어 댄다. 들기름 찌꺼기를 조금씩 붜 줘야 콩에서 비린내가 나지 않고 물이 끓어 넘치지 않는단다. 참, 신통한 사실에 감탄하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 메주틀에 넣고 정성을 다해 다독여내는 아름다운 손 ⓒ 윤희경
물기와 불기 조절하랴, 콩 저으랴, 가마솥 뚜껑을 여닫으랴 잔손이 많이도 간다. 불살라 넣은 지 몇 시간이 꽤 지나서야 뜸이 들어온다. 콩을 손으로 비벼보고는 잘 뭉그러진다며 불을 끊으란다. 가마솥 뚜껑을 여는 순간, 구수한 콤 냄새가 배어나 코를 찌르고, 솟아오르는 콩 김으로 얼굴에 김이 서린다. 그때마다 천정에 매달려 있는 거미줄들도 덩달아 너슬 거린다.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다음 삶은 콩을 찧기 시작한다. 옛날엔 절구에다 찧어냈지만 지금은 자동 믹서 기가 대신한다. 믹서 기를 돌려가며 한두 번 뒤적거려 완전히 으깨어야 토종 메주가 된단다. 콩밥이 튀어 달아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부녀회장님의 잔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어야 한다.
▲ 꾸덕해질 때가지 짚을 깔고 바닥에 말려내야 한다. ⓒ 윤희경
으깨진 콩 반죽을 메주 틀에 넣어 다독거려도 보고 이리 다듬고 저리 두드려 그럴듯한 메주를 찍어낸다. 달라붙지 않게 짚을 깔고 간격을 맞춰 방바닥에 나란하게 펼쳐 놓으니 보기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하루저녁을 재워내면 꾸덕꾸덕해진다. 벼 짚으로 묶어 바람받이에 걸어 놓는다. 정성이 들어간 것일수록 귀엽고 소중한 법, 모두들 대견스러워 쓰다듬고 또 다독거려 본다.
▲ 메주가 깊은 숨을 몰아 쉬며 노르스름하게 익어가고 있다. ⓒ 윤희경
콩은 '땅에서 나는 쇠고기'라 하여 예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뿐이랴, 메주에는 항암효과와 뇌졸 증, 치매예방, 해독제와 혈압에도 뛰어난 효험이 있다한다. 또 <본초 강목>에는 '콩을 많이 먹으면 안색이 좋아지며 머리카락이 검게 변한다' 했으니,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을 발효시켜 새롭게 태어나 아미노산과 단백질 덩어리로 변하는 메주, 힘들게 만들어낸 메주덩이에 건강한 에너지가 매달려 있다. 긴긴 겨울밤, 산골 마을 메주들이 깊은 숨을 몰아쉬며 노르스름하게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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