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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앨범에서 사진도 빼겠답니다

일제고사 선택권 부여했다고 해임된 '유현초' 설은주 교사

등록|2008.12.18 16:48 수정|2008.12.18 16:48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 7인에게 파면 및 해임 처분 결정이 17일 최종 통보됐다. <오마이뉴스>는 징계를 받은 7인의 교사 가운데 한 명인 유현초등학교 설은주 교사가 보내온 글을 싣는다. [편집자말]
12월 16일 수요일 저녁, 농성장에 도착한 난 몸이 좋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과 만남, 나라는 사람을 말로서 드러내야 하는 인터뷰, 앉으면 이어지는 회의, 추운 농성장,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생경하기만 하고 피곤했다.

그리고. 내일 학교에 가면 해임통지서를 받을 것이란 말이 선생님들 사이에 술렁이고 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중징계 방침 이후부터 지난 주 수요일, 해임결정까지, 오늘의 이 장면을 난 꽤 구체적으로 상상해내려 했었던 것 같다. 근데 아무래도 어렵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선배언니의 차를 타고 조금 일찍 농성장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찾아온 교감 선생님이 내민 해임 통지서

▲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0월 실시된 초·중학교 '일제고사' 당시 학생들의 야외체험학습을 허락한 전교조 소속 공립교사 7명에 대해 중징계(3명 파면, 4명 해임)를 결정한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신문로2가 서울시교육청앞에서 열린 징계 철회 및 공정택 교육감 퇴진 촉구 기자회견에서 해임통보를 받은 설은주 교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집에 가면 뭘 해야 하나? 글을 써야지. 학교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 학교 선생님들의 반응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얼굴 뵐 용기가 나질 않아 편지로 대신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아이들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아니 떠올려야만 했다.  오늘 이 저녁이 내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지막을 준비할 유일한 시간인 거다.

집에 가면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아 어쩌지. 아이들 하나하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이날 모든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불가능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허깨비 같은 몸을 이끌고 선배와 함께 들어와 내일 해야 하는 일, 그래서 지금 준비해야 하는 일을 나누어 생각해봤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지?

문을 열었다. 내 앞엔 교감선생님과 부장 선생님이 서 계셨다. 한 손엔 누런 봉투. 현관에 서서 봉투를 내미신다.

해임통지서.

이건 그동안 상상해낸 장면과 너무 다르다. 10월부터 늘 이런 식이다. 조금 더 견뎌내기 위해, 덜 상처받기 위해 난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뒀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 앞에 전개되는 건 늘 그 이상이었다.

많은 말을 쏟아냈던 것 같다. 나와 이 사람을 둘러싼 이 기묘한 공기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선.

"교감선생님, 저 그다지 다른 사람 아닙니다. 우린 그냥 아이들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다른 것뿐이에요.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교감선생님 마음 할퀴려고 그러는 거 아니란 거 제발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학교를 떠나지만 전 정말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우리 조합원 선생님들, 그렇게 너무 상처주지 마세요. 모두 다 너무너무 열심히 하고 아이들 사랑하는 후배들이잖아요. 우린 그저 조금 다른 것뿐인데요. 제발 제발 알아주세요."

교감 선생님은 내일 학교에서 아이들 보는 건 어렵겠다고 하신다. 새 담임을 만나는 날인데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았으면 한단다.

새 담임을 맞을 시간은 있는데, 열 달을 고스란히 함께했던 우리 아이들과 내가 헤어지는 시간은 왜 주지 않는 거죠? 도대체 왜?

교감선생님은 이러니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교감선생님에겐 지금 이 순간도 내가 내 이야기만 하는 걸로 보이나 보다. 이것 또한 지침이라면, 난 또 부탁해야만 했다. 제발 마지막 정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짐싸는 것으로 하고 인사하고 나올 테니 모른 척하시라 했다. 이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17일, 교사가 아닌 신분으로 난 아이들을 만났다. 교문부터 막아서시는 교감선생님을 옆에 두고, 평소에 늘 출근하던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은 모든 게 그대로였다.

아이들, 협동해서 다같이 꾸몄던 판화, 일하는 손 그림, 아기자기해서 모든 이가 부러워하던 내 책상, 모든 게 그대로인데 이제 이곳은 내가 설 곳이 아니라 한다.

밤새 머릿속에 뒤엉켜있었던 많은 말들 속에서, 겨우 몇 마디를 하는데도 교감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복도에서 채근을 하신다. 아이들과 난 그냥 이렇게 헤어져버렸다.

아이들 보며 겉으로 웃었고, 속으로 울었다

학교 떠나는 설은주 교사일제고사 관련 가정통신문을 발송해 해직된 서울 수유동 유현초등학교 설은주 교사가 17일 오전 학급 학생들과 작별인사를 마친 후 교문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최재구

다시 돌아온 농성장. 아이들의 문자메시지는 이어진다.

'화이팅, 글로 갈게요, 어떠케 가요?, 선생님 곁엔 저희들이 있어여, 힘내요.'
'오늘 급식 케익 나오는데, 저희 밥 먹어요 밥 드셨어요? 카레 나왔어요 카레 제일 싫어하는데, 이제 곧 수학경시봐요 응원해줘요.'

아이들이 곁에 있는 듯 나의 손가락은 핸드폰 위로 바쁘게 움직이고, 그렇게 아이들은 계속 내 옆에서 속삭이고 살아 움직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시교육청 앞까지 찾아온 아이들은 17일,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로 들려주고.

아이들은 촛불 문화제에서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또 선생님이 유도해서 집회 나왔다고 사람들이 말할까봐, 그게 걱정이 되어 발언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을 보며 겉으로 웃었고, 속으로 울었다.

나에게 학교는 유리로 둘러싸인 성이다. 소통하고자 하지만,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내 목소리는 투명한 벽에 부딪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지금 난 그 유리벽 밖에 있다. 세상은 나와 아이들을 떼어놓았다.

아이들 졸업앨범에서 내 사진을 빼겠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다시 한 번 오열을 터뜨렸다.
그냥. 그냥 오늘(17일) 하루는 좀 많이 힘들다. 하지만 늘 그랬듯, 난 다시 기운을 차릴 거고 일어날 거다.

이 거리에 나와 함께 서있는 사람들과 내 앞에 가로막힌 벽을 부수고, 난 다시 우리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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