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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62) 힘내자

[우리 말에 마음쓰기 502] ‘백성민스럽다-백성민답다’와 ‘백성민적’

등록|2008.12.20 16:27 수정|2008.12.20 16:27

ㄱ. 힘내자

.. 밝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현수 파이팅!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면서 역경을 참아 이겨내는 멋진 인생 살아가자꾸나 ..  《김상복(글)/장차현실(그림)-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21세기북스,2004) 141쪽

 “미래(未來)를 위(爲)해”는 “앞날을 생각하며”로 손보고, ‘열심(熱心)히’는 ‘부지런히’나 ‘힘껏’으로 손봅니다. “태산(太山) 같은 자부심(自負心)을 가지고”는 “큰산 같은 씩씩함으로”나 “큰마음으로 씩씩하게”로 다듬고, ‘역경(逆境)’은 ‘어려움’으로 다듬으며, ‘인생(人生)’은 ‘삶’으로 다듬어 줍니다.

 ┌ 파이팅(fighting) :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   ‘힘내자’로 순화.
 │  - 우리 팀, 파이팅!
 │
 └ 힘내자 / 힘내라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파이팅’은 우리가 쓰지 말아야 할 낱말임을 또렷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어사전에서 ‘파이팅’ 같은 낱말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그래, 여태껏 내가 잘못된 말을 엉터리로 써 왔군!’ 하고 깨달으면서 ‘바로 오늘부터 이런 말은 쓰지 말아야겠어!’ 하고 다짐을 할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다짐을 하면서 말매무새를 추스르는 분이 다문 한 분이라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 우리 팀, 파이팅!
 │
 │→ 우리 팀, 힘내자!
 │→ 우리 팀, 힘내 보자!
 │→ 우리 팀, 잘하자!
 │→ 우리 팀, 잘해 보자!
 │→ 우리 팀, 온힘을 다해 싸우자!
 └ …

 국어사전 뜻풀이가 아니더라도, 신문과 방송에서 틈틈이 다루고 있는 ‘파이팅’입니다. ‘화이팅’이라고 적는 분들도 있는데, 이렇게 적거나 저렇게 적거나, ‘올바르게 적는 일’보다도 ‘왜 이런 말에 매여서 우리 말을 못하느냐’를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삶에 바탕을 두는 우리 말을 못하고 있는지 곱씹어야지 싶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은 영어가 으뜸입니다. 온갖 곳에 영어 나부랭이가 판을 칩니다. 우리가 쓰는 어떤 물건이고 알파벳이 박히지 않은 녀석이란 없습니다. 회사원들이 쓰는 이름쪽에는 어김없이 영어로 함께 박을 뿐 아니라, 아예 영어로만 박는 이름쪽마저 많이 있습니다.

 달력을 보면 아예 한글을 찾기가 어렵기 일쑤이고, 학교에서는 영어를 못하면 사람이 아니기라도 하는 듯 얕보고 깔보고 우습게 봅니다. 이런 판에, 우리들이 ‘파이팅/화이팅’을 걸러내어, 아니 우리 삶으로 녹여내어 올바르게 쓰도록 한다는 일이란 김빠지는 소리가 아니랴 싶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느끼겠구나 싶습니다. 세상이 영어 세상이니 영어 쓰는 일이란 마땅하다고 여기지 않습니까. 너도 나도 다 쓸 뿐더러, ‘파이팅!’이나 ‘화이팅!’을 외칠 때 받는 느낌을 ‘힘내자!’나 ‘잘하자!’나 ‘싸우자!’ 같은 말을 외칠 때에는 못 느낀다고들 하는데, 어찌 우리 말이며 삶이며 생각이며 거듭나기를 꿈꿀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 이름이 ‘코리아’로 바뀌지 않은 일이 놀라울 뿐입니다.


ㄴ. 백성민스럽다

.. 초기 고우영의 작품 또는 김주영의 소설 《객주》로부터 받은 영향이 사이사이 향기를 뿜고 있는 이 두 작품은 필자가 보기에 가장 백성민스럽다 ..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열화당,1996) 119쪽

 “초기(初期) 고우영의 작품”은 “고우영이 처음에 그렸던 작품”으로 다듬어 줍니다. ‘《객주》로부터’는 ‘《객주》에서’로 고치고, ‘필자(筆者)’는 ‘글쓴이’나 ‘내’로 고쳐 줍니다.

 ┌ 백성민스럽다
 ├ 백성민답다
 │
 └ 백성민적이다 (x)

 만화쟁이 백성민 씨가 자기 붓질을 힘차게 선보인 만화를 이야기하면서 ‘백성민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백성민 씨가 다른 만화쟁이한테 여러모로 배웠건 안 배웠건, 다른 만화쟁이 그림투를 따라갔다면 ‘백성민스러운’ 모습이 아닙니다. 누구한테 배웠더라도 다른 만화쟁이한테는 없고, 오로지 백성민 씨한테만 있는 기운으로 멋들어지게 만화를 그려낸다면, 그야말로 ‘백성민스러운’ 모습입니다.

 ┌ 노무현답다 / 이명박답다 / (아무개)답다 (o)
 └ 노무현적이다 / 이명박적이다 / (아무개)적이다 (x)

 어떤 사람이 참 그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때, 우리들은 ‘-답다’를 뒤에 붙입니다. ‘노무현답다’라거나 ‘이명박답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라밖 사람을 들면서 말하는 자리를 살피면, ‘마르크스다운’이라 하지 않고 ‘마르크스적인’처럼 말합니다. ‘카뮈다운’이라 하지 않고 ‘카뮈적인’이라 합니다.

 우리한테 ‘-답다’라는 말투가 없어서 ‘-的’을 붙이지는 않을 텐데, 또 ‘-스럽다’라는 말투가 없기에 ‘-的’을 붙이는 셈은 아닐 텐데,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안 씁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버립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깎아내리고,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내팽개칩니다.

 ┌ 가장 한국다운 모습 (o)
 └ 가장 한국적인 모습 (x)

 한국땅에서 한국 느낌이 나는 모습을 말한다면 ‘한국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한국다운’이 아닌 ‘한국적인’을 외칩니다. ‘미국다운’이 아닌 ‘미국적인’이라 하고, ‘필리핀다운’이 아닌 ‘필리핀적인’이라 합니다. ‘티벳다운’이 아닌 ‘티벳적인’이라 하고, ‘프랑스다운’이 아닌 ‘프랑스적인’이라 합니다.

 스스로 줏대를 버리는 사람은 옷을 잘 차려입고 얼굴과 몸매를 반듯하게 꾸며도, 조금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줏대를 세우거나 가꾸는 사람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얼굴과 몸매이더라도 아름답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움은 겉치레나 겉발림으로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속에서 우러나는 모습에 따라서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거나가 갈립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모습을 갈고닦거나 추스른다면, 우리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모습을 버리거나 소홀히 여긴다면, 우리들은 더할 나위 없이 못나고 꾀죄죄한 삶이 되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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