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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자식들이 때때옷 입고 춤을 춘 까닭

[윤희경의 山村日記] 동지 팥죽 먹고 악귀 소탕

등록|2008.12.21 14:08 수정|2008.12.23 09:07
12월 21은 동짓날이다. 그믐께 동지를 노동지라 한다. 올해는 노동지인 셈이다. 동지(冬至) 날 아침부터 흰 눈이 나풀나풀 내린다. 세상은 살기 힘들고 시끄러워도 동짓날 눈이 내리니 새해는 상서로운 일이 많이 생기려나 보다.

▲ 해마다 붉은 팥 심어 팥죽도 쑤고 시루떡 고물도 만든다. ⓒ 윤희경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가 동지(冬至)이다. 일 년 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 날은 태양이 부활하고, 생명력과 광명이 다시 솟아나는 날로 절기 중 가장 큰 명절이다. 동지를 지내야 한 살 더 먹는다 하여 ‘작은 설’이라고도 부른다.

낮은 양(陽)이고 밤은 음(陰)이다. 이 날부터 낮은 길어지고 밤은 짧아진다. 낮이 길어진다는 것은 양기가 왕성해간다는 뜻이다. 양은 붉은색이다. 밝음과 따스함의 양기를 붉은색으로 맞이하자면 팥죽만큼 선명한 색깔이 없겠기에 해마다 팥을 심어 죽도 쑤고 팥 시루떡도 만들어 고사를 지내기고 한다.

▲ 팥색을 닮아 손도 마음도 붉어온다. 망나니가 제일 무서워하는 팥색. ⓒ 윤희경


옛날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가 죽어 외로이 하늘을 떠돌다 동지 날 땅으로 내려와 기둥에 달라붙으면 천연두가 여문다 했다. 이 망나니가 평상시에 붉은 색을 무서워해 동지 날이면 팥죽을 쑤어 대문이나 기둥에다 바르면 천연두가 사라진다고 믿었다. 새알심은 귀신의 나쁜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간다 하고, 뱀 사[巳]자를 써서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집안을 넘보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옛날에 동지 날은 ‘어머니 날’이었다. 요즘엔 카네이션 몇 송이로 끝내 버리지만, 동지 날에는 딸과 며느리는 버선을 지어 바치고 아들들은 아무리 늙고 나이가 먹었어도 때때옷을 입고 노모를 즐겁게 하기 위에 춤을 추었다.

‘엄마, 나 예뻐’ 하고 재롱을 떨면 어느 어머니가 웃음을 참았을까 싶다. 동짓날에 어머니를 깍듯이 대접한 것은 동지 날부터 해가 길어 수명이 길어지길 축원했던 것이다. 재롱을 떨지 않더라도 오늘 동지가 다하기 전에 어머니께 전화나 한 통 해 볼일이다.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 동짓날 아침 산촌에 서설이 내린다. ⓒ 윤희경


오늘 아침 팥죽을 쑤어 대문에 뿌릴까하다 참았다. 출입구에 눈 맞은 산수유와 사철열매가 저리도 붉고 맑은데 차마 악귀가 들어올까 해서이다. 비린내 나는 산귀신이 있다면 팥죽 냄새만 맡아도 도망가지 않을까 싶어 먹는 것으로 대신한다.

▲ 오후가 되자 서설이 녹아 더욱 붉어 귀신도 달아날듯. ⓒ 윤희경


팥죽을 먹지 않으면 다음 해에 잔병이 많이 생기고 쉬이 늙는다는 민간신앙이 전해오고 있다. 잔병예방과 노화방지를 위해 오늘 그 옛날처럼 보시기에 팥죽을 담아 먹고 있는데 자꾸만 하얀 눈이 내린다. 삶은 팥은 포근포근, 새알심은 매끌매끌 잘도 넘어간다. 이 정도면 올 건강도 잘 지켜낼 성싶다.

▲ 팥죽을 쑤워 조상신께 건강과 복을 빌고...새알심이 쫀득쫀득. ⓒ 윤희경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늘어난다. 실학자 이익(李瀷)은 '길어지는 해 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했다. 내일부터 해맑은 겨울 햇살을 밟으며 새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무병장수나 빌어볼 참이다.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농촌공사 웰촌 전원생활, 북집네오넷코리아,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이야기를 방문하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고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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